[창을 닫으며] 내가 만난 친구들에게서 얻은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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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한 해다.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도 많았고 새로운 일들도 꽤 많아서 다소 어수선한 정신머리로 살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 일상 중에서 2003년을 가장 인상적으로 만든 것은 아마 장애우들과 한해를 보낸 경험일 것이다. 전에는 별 관심도 없고 특별한 감정도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는데….
처음에는 한 케이블 방송사에서 장애우들이 직접 출연하는 퀴즈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 인연이었다. 참으로 퀴즈 프로그램이 많은 세상이었고 상금이나 상품들도 적지 않은 방송 환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들을 TV에서 보면 여기저기서 온정의 손길을 뻗는 협찬사들은 얼마나 많아 보이던지... 그런데 우리의 퀴즈 프로그램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애초에 제작비도 초라한 규모인데다가 상금이나 상품도 보잘 것 없었다. 때로는 상금이 너무 적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가끔은 협찬하겠다고 흔쾌히 나서는 기업이나 재단이 하나도 없음을 한탄하기도 했었다. 세상의 인심은 그러했다. 장애우 프로그램이 오히려 더욱 화려하고 멋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객관적 상황과 여건은 그렇지 못했다. 는 그렇게 어렵게 출발한 ‘대한민국 최초의 장애우 퀴즈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열악하고 힘든 제작 여건이 아니었다. 그걸 깨닫게 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대단하다면 대단한 방송이고 별것이 아니라면 현실 그대로 별것 없는 방송 프로그램이지만 참가 장애우들의 뒷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의 보잘 것 없는 방송이 그들에게 작지만 소중한 기회와 생활의 또 다른 계기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난 그것이 마냥 기쁘고 고마웠다. 우승자를 포함한 여러 퀴즈 참가자들에게 좀더 많은 혜택과 실질적 도움을 주고 싶지만 많이 퍼주지 못하던 미안해하던 가난한 PD에게 “우리학교를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또 오면 다시금 멋지게 도전하겠다”고 희미하게나마 말하는 목소리들엔 진지하고도 솔직한 기쁨과 도전의 마음이 움트고 있었다고 난 느꼈다.
그들은 목말라하고 있었다. 자신들에게도 동등한 기회와 기쁨을 누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경험들은 방송쟁이인 나에게 또 하나의 화두로 바뀌어 다가온다. 세상에 있을 것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어떠한 모습으로 있던지 간에….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떠한 화려함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과 있어야 한다고 느끼는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환경이라는 것.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충족되어지는 세상이라는 것.
아무리 세상의 음지에서 작은 목소리로 존재하더라도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소중하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마음으로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난 올 한해 내가 만난 친구들에게서 얻었다.
글 서재권(EBS 퀴즈! 죽마고우 연출자)
한국 방송 최초로 장애우들을 주인공으로 참여하게 만든 프로그램, 바로 . 그동안 방송에서 장애우들을 소재로 다루거나 대상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했던 것과는 다르게 장애우들을‘직접 참여’하게 만들어 당당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임을 자연스럽게 일깨워주고 있다. 서재권 피디는 MBC <출동! 6mm현장속으로> <심야스페셜>, KTV국립방송 <퀴즈게임 무한도전> 등을 연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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