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생존을 위해 해야 할 일과 희망 없는 영원한 투쟁 > 대학생 기자단


[붓소리] 생존을 위해 해야 할 일과 희망 없는 영원한 투쟁

세대교체를 통해 전열을 다시 정비하는 것만이 장애우운동의 불씨를 살리는 길

본문

본지 10월 호 기획 기사를 보면 미국 ADAPT라는 장애우단체가 소개돼 있다. 단체가 너무 투쟁 위주로 활동을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단체 관계자가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대해 우리는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다.” 라고 대답한 대목이 나온다. 그 전 9월 호에는 유병주 씨의 정신지체 장애우 이야기 말미에 독일 정신지체인부모회가 소개돼 있다. 독일 장애우 부모들은 자신들을 ‘희망 없는 영원한 투쟁자’로 자처하면서 자녀들을 위해 끊임없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에게 미국과 독일은 장애우복지의 선진국이라고 알려진 나라다. 우리 나라와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그래서 장애우의 천국이라는 찬사가 붙어 장애우와 부모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나라다. 그런데 장애우의 천국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부모들이 처연하게 자신들을 희망 없는 영원한 투쟁자로 자처하고 있다니 도대체 이게 있을 법한 얘기인가, 혹시 우리에게 알려진 미국과 독일의 장애우복지는 허상이 아니었을까? 차라리 허상이라면 동질감을 느끼면서, 장애우의 사는 형편은 어느 나라나 다 똑같지 라며 체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과 독일이 말 그대로 장애우의 천국은 아니더라도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장애우들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고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과 독일의 선진화된 장애우 복지는 결코 허상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질문해 보자. 장애우의 입장에서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 나라에서 왜 장애우들이 여전히 생존을 위해 싸우고 부모들은 희망 없는 투쟁자를 자처하는 것일까. 이런 가설이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 우리가 부러워하고 있는 미국과 독일의 장애우복지는 그냥 가능했던 게 아니라 어느 시인의 말처럼 피를 먹고 자라왔다. 선진화된 복지는 장애우 자신들의 지난한 투쟁과 희망이 없지만 싸우지 않으면 하나도 가능한 게 없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는 부모들이 투쟁의 결과로 얻은 쟁취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어느 정도 전리품을 챙겼지만 여기서 멈추면 누가 알아서 복지를 챙겨줄 것도 아니고, 또 그나마 있는 복지마저 빼앗길 것이 두려워 미국과 독일의 장애우와 부모들은 영원한 투쟁을 결코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 현실을 돌아보자. 우리 나라는 외형적으로는 장애우복지의 틀을 갖춘 나라에 속한다. 장애우 관련법이 네 개나 있고, 수당과 그룹홈 등 선진화된 복지정책을 일부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장애우들은 심한 고통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면 그건 미국과 독일처럼 우리 나라 장애우와 부모들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있는 장애우 관련법만 하더라도 장애우들의 투쟁 없이 정부가 알아서 법을 제정해 줬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하다못해 전화요금 할인과 장애우가 지하철을 무임승차할 수 있는 것도 모두가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복지시책이다. 이렇게 다른 나라에 비해 일천한 장애우복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간의 경험을 통해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과 싸움 없이 가능한 복지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장애우와 부모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존을 위한 장애우와 부모들의 투쟁이 정체돼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의 복지에 만족해서 싸우지 않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뭘까?


장애우 운동이 지지부진한데는 여러 가지 이유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 중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싸움에 나서는 젊은 세대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장애우 운동은 어느새 노령화돼 버렸다. 지금 소위 장애우들의 지도자라고 나서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라. 열 중 일곱은 환갑을 넘기거나 가까운 나이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장애우 단체의 회장 지부장 지회장을 다해 먹고 있다. 이래가지고 도대체 장애우운동이 어떻게 가능할 지 암담할 뿐이다. 결국 세대교체를 통해 전열을 다시 정비하는 것만이 꺼진 장애우운동의 불씨를 살리는 길일 것이다.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것과 희망없는 영원한 투쟁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선택해야 할 생존을 위한 방식이다.


 

작성자함께걸음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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