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민의 테마에세이] 아주 오래된 메모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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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계기’라는 게 있다. 그것이 큰가 작은가 하는 비교는 중요한 게 아니다. 왜 내가 지금 이것을 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는 ‘무엇무엇 때문에’라든지 ‘누구누구의 얘기나 부탁 때문’이라는 답이 항상 따르게 된다.
왜 공부를 하는가. 왜 신문을 보는가. 왜 이 시간에 외출하는가. 왜 그 사람을 만나는가. 왜 난데없는 심각한 표정인가. 오늘은 왜 그리 즐거워하는가. -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에는 반드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계기’라는 말을 ‘원인’이라 표현해도 좋을 듯 싶다. 인과(因果) 관계를 따져 보는 일, 그것은 모든 현상을 재정립시켜 놓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된다.
혹시 이런 경험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다. 분명히 뭔가의 기억이 있는데, 그것이 언제 어디에서 있었던 일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 경우 말이다. 달리 말한다면, 어떠한 일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분명 내게 있을 텐데, 도대체 그 내용을 찾을 방법이 없는 경우 같은…. 그건 누군가의 주소나 전화번호, 소중히 간직해야 했을 사진이나 잊어선 안 될 언약이 담긴 메모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얘기로 잠시 돌아가고자 한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 물건들을 정리할 때마다 찾고 또 뒤졌지만, 끝끝내 발견되지 않던 흔적이 내게 있었다. 퍼즐 게임을 할 때 마지막 조각 하나가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내게는 반드시 간직했어야 했던 의미가 한 가지 있었던 것이다.
그건 누군가가 내게 적어 주었던 메모 한 장이었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당시엔 생소한 명칭이었던 ‘애덕의 집’이라는 곳에 봉사 활동을 나간 적이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시설이었는데, 재활 치료를 위한 운동 기구를 작은 뒷마당에 설치하는 일이 우리에게 맡겨졌다. 당연한 도움이라고 생각했기에 우리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한데 어울려 하루를 보내며, 뙤약볕 아래에서 운동 기구 설치 작업을 마무리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방에 몰려 앉아 대화를 나누던 시간이었다. 내 곁에 계시던 한 분이 부정확한 발음으로 자꾸만 뭔가를 물으셨다. 전신마비 때문에 기본적인 행동조차 불편하던 분이었다. 주의 깊게 들으려 해도 정확한 뜻을 알기엔 역부족이었지만, 잠시 뒤엔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그 분과의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 분의 말을 종이에 적어서,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한 시간을 넘기며 계속 이어졌다. 그 분은 당시 나이 23세였고, A대학 공대를 2학년까지 다녔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학교에서 귀가하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을 쓸 수 없게 되어버렸고, 1년여 동안 자신을 돌보던 가족들은 자기를 시설에 맡긴 다음 미국 어딘가로 이민을 가버렸다는 얘기가 아주 천천히 이어졌다.
잊혀지지 않는 건 그런 사연을 힘겨운 발음으로 전달하던 그 분의 눈망울이다. 행동으로 보여 주거나 말로써 세세하게 설명할 순 없다지만, 털어 내지 못할 수많은 사연들이 자신 안에 간직되고 있음을 남몰래 알려 주던 그 눈빛…
우리의 방문이 마무리돼야 할 시간에 이르렀을 때, 그 분은 나를 붙잡고 종이에다가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연필을 쥐는 자세조차 어려운 손길이었지만, 무언가를 적는 과정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내게 읽어보라고 했다. 내가 천천히 읽자, 제대로 읽지 못한 단어를 일일이 수정해 준 다음에 그 종이를 내게 건네 주셨다. 자작시(自作詩)라고, 즉흥적으로 쓴 거라고, 두고두고 잘 간직해 달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내가 긴 시간 동안 찾아 헤맸던 ‘그 무엇’은 바로 그 원고 종이였다. 분명히 내 공간 안에 있을 게 확실한데, 책과 용지로 가득한 사방 어디에서도 그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찾다가 포기하고, 그러다가 문득 떠올라 뒤적거리기를 반복한 게 어언 20여 년…
내가 왜 그 원고 얘기를 난데없이 이 자리에 언급하고 있을까. 그 원고를 엊그제서야 비로소 찾아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보다도 더욱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게 만들던 그 자작시 원고가 결국엔 내 손길에 쥐어진 것이다. 물론 그 분의 원본이 아닌 내 글씨로 옮겨 적은 내용이었지만, 그때의 느낌은 당시 그대로 내게 전해져 왔다.
기회가 된다면 꼭 활자화시키고 싶었던 원고였다. 어떤 방법을 쓰든 간에, 독자의 투고를 통해서라도 신문이든 잡지든 간에 공개하고 싶었던 그 글을 이제서야 이 자리를 통해 적어 본다. 아주 오래된 마음의 빚을 덜어내는 느낌으로, 또한 기억 속의 그 눈망울에 작은 위안이 담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옮기련다. 그 분이 정했던 자작시의 제목은 ‘그 시절’이다.
문득 그리움이 짙어진다. 그 분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여기에 담겨진 이 글을 읽어 볼 수 있을까. 그때 썼던 자신의 글을 지금까지 간직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걸 담담하게 받아들여 줄 수 있을까…
성묘를 위해 벽제로 향할 때마다 ‘애덕의 집’이 그 인근에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를 오랫동안 스치며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혹시 그 곳에 아직도 계신 건 아닐까? 단 한번의 만남이었기에 묻혀질 수도 있었던 일이 스무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활자로 남겨지고 있다는 건 새삼 가슴이 뭉클해지는 일이다.
혹시 모르는 일이다. 과거의 어느 순간에 남겼던 나의 흔적을 남 몰래 간직하고 있는 이가 어딘가에 있을지 누가 아는가. 그것이 작은 메모일지, 좋은 기억일지 나쁜 마음인지, 아련한 그리움인지 버리지 못할 실망감인지 알 순 없지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라며 단정지을 순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혼자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 그 동안 만났던 모든 사람들의 영향이 조금씩 남고 모여져서 만들어진 하나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모든 순간에 진지함을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어느 날 젊은 친구 한 명이 불현듯 내게 다가와서, “선생님의 그 작품을 청소년기에 읽고 감동 받아서 지금의 제가 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반대로 “고교 시절에 읽었던 그 작품 때문에 제 인생이 이렇게 엇갈린 길로 접어들고 말았습니다.”라고 한숨짓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극히 작은 우연과 만남이 운명과 필연을 안겨 주는 법이다.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서 그 한쪽 끝에 내가 있고, 그 책임 아닌 책임을 마음으로 짊어져야 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둘러볼 수 있지 않은가. 생각 없이 행한 행동이나 가벼운 몇 마디로 인해 누군가의 발걸음이 뒤바뀐다면 그 ‘계기’는 어쩔 수 없이 ‘나로 인한’ 일로 결론지어지게
된다.
모든 일에 진지해야겠다. 모든 이들에게 진실해야겠다. 한 통의 전화에도, 한 글자의 메모에도, 한 번의 스쳐 감에도, 한 순간의 마주침에도 거짓 없는 진솔함과 열정을 가지고 움직이며 살아야겠다. 단순한 다짐으로 잊어버리기엔 너무나 많은 우연과 인연과 필연이 우리 주변에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소주 한잔을 앞에 놓고 친구와 담화하면서 쓴지도 모르고 마냥 술병을 비우던 그리운 지난 시절’이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추억은 아련하게 피어나고 기쁨보다는 아픔이 먼저 떠오르지 않았던가. 언젠가 가슴을 치며 가장 후회할 일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미리 생각해 봐야겠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먼 어제’가 되어버리고 마는 게 우리네 인생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글 채지민(소설가)
저 하늘에 있는 수많은 은하
그 중 한 별이 이곳에 머무노라 아니 방황하노라
저 멀리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듯한
그 다정한 님의 음성과 님의 숨결이
가냘픈 나의 청각을 자극하고 있어라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겨워 나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있어라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지난날의 일들이
이제는 아련히 솟아났다 멀리멀리 사라지고 있어라
그것을 잡으려는 내게서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져 가고 있어라
나 팔을 한없이 넓게넓게 벌려 그것을 잡으련만
그것은 내 생각뿐이어라
소주 한잔을 앞에 놓고 친구와 담화하면서
꼼장어니 닭똥집이니, 이런 것들을 앞에 놓고
청춘과 인생과 계집아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잔과 잔을 마주치던 날
그리고 쓴지도 모르고 마냥 몇 병씩인가의 술병을 비우던
지난 시절이 몹시도 그리워지는구나.
- 1982. 8. 14. 애덕의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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