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통장 중단, 발달장애인의 금전관리 교육 포기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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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통장기반 금융거래 관행 등 혁신방안
발달장애인 통장 출입금 내역을 통해 돈의 흐름 파악
교육 기회 박탈로 발달장애의 중증화 양산 우려
지난 7월 29일 금융감독원은 ‘통장기반 금융거래 관행 등 혁신방안’을 발표하며 2017년 9월부터 2020년까지 종이통장발행을 단계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금융소비자는 물론 금융회사 모두에게 불편과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해 왔기 때문에 중단한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는 통장재발행으로 소비자들에 연간 60억 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은행에 지급하고 있고 통장 분실 시 인감 및 서명 등이 악의적으로 도용되어 추가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종이통장 분실의 경우 소정의 수수료를 징수하고 있는 반면 신규발행 및 이월 재발행의 경우 무상으로 발행되고 있어 원가에도 못 미친다는 판단이다.
특히 장기간 미사용 계좌가 대포통장으로 악용되는 등 범죄에 이용되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금융회사가 미사용 계좌를 관리함에 따라 비용이 유발되고 있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올해 9월부터 2017년 8월까지 1단계로 종이통장을 발행받지 않은 고객에게 금융회사가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금융소비자 스스로 무통장 거래를 선호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2017년 9월부터 2020년 8월(3년간)까지를 2단계로 설정, 60세 이상이나 금융거래기록 관리 등의 사유로 종이통장을 희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융회사가 원칙적으로 종이통장을 발행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특히 2020년 이후부터는 종이통장 발행을 희망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은행이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통장발행에 소요되는 원가의 일부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종이통장 발행 중단은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것처럼 금융회사의 비용절감은 물론 고객들의 불편이나 분실에 의한 사고위험 방지 이외에도 환경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일정 부분 필요한 부분일 수 있다. 또 인터넷뱅킹이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의 종이통장 발행 중단 계획은 예사롭게 넘길 부분은 아니다. 종이통장 발행 중단은 발달장애인에게 엄청난 파장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이들의 잠재적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종이통장 발행 중단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이다.
발달장애인은 종이통장에 기록된 입출금 내역을 통해 돈의 흐름은 물론 앞으로 얼마나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지를 파악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의 흐름을 아무리 수백 번 수천 번 설명해 주어도 이해되지 않는 발달장애인도 통장에 기록된 내용을 ‘눈’으로 확인하는 훈련을 반복하면서 무형의 ‘돈의 흐름’을 이해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또 종이통장의 입금과 출금을 통해 사칙연산의 ‘덧셈’과 ‘뺄셈’을 학습하기도 한다.
이처럼 발달장애인에게 ‘종이통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학습하는 중요한 매개체이자 현존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또 발달장애인 중에는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통장에 쌓여가는 숫자의 변화를 ‘행복’으로 삼고 있는 이들도 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관없이 이들은 매일 은행에 들러 통장을 정리하고 확인하는 것을 삶의 재미요, 낙으로 여긴다.
종이통장의 발행 중지는 누군가에게는 ‘비용 절감과 편리성 확보’가 될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에게 더하기와 빼기를 학습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는 현존하는 유일한 수단과 행복을 빼앗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결국 발달장애인의 능력을 저하시켜 장애를 더욱 중증화 시키는 동시에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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