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제일 좋은 것은 부모와 같이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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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따르면 국내입양에서 장애 아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98년 6명, 99년 14명, 2000년 상반기 3명으로 채 1%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장애아의 해외 입양이 30%를 넘는다는 입양 기관의 통계에 비교하면 장애아의 국내 입양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버려진 장애아는 어디로 가야 할까? 대안으로 수양부모제도가 관심을 끌고 있다. 입양이 아닌 일정기간 동안 아이를 위탁받아 키워주는 수양부모제도가 정착되면 버려지는 장애아 문제도 일정부분 해결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런 이유로 함께걸음은 수양부모 제도 정착에 온 힘을 다하고 있는 한국수양부모회 박영숙 회장을 만났다.
수양부모제도 활성화 되고 있는 선진국
▲한국수양부모협회 박영숙 회장 |
외국에서는 아동복지 시스템 100%가 수양부모제도, 즉 호스트 홈과 케어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거의 백년 전에 이런 제도가 생겼는데 우리 나라에는 없다는 사실에 대해 경악했죠. 선진 외국은 우리 나라처럼 아이들을 버리는 부모들은 별로 없어요. 단지 방임하죠. 부모가 마약중독이거나 범죄로 감옥에 있는 경우 아이가 방임 상태에 있게 되는데 친척들이 데려갈 수 없는 경우 무조건 호스트 홈에 데려다 줘요. 쉽게 말해 시설이 없는 거죠. 외국의 시설은 정신지체 아니면 마약중독, 알콜 중독자만 수용하고 있어요.
그밖의 아동은 거의 다 수양부모협회를 통해서 가정에 위탁이 되어 양육됩니다. 호스트 홈은 우리 나라 에서 그룹홈으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 문제 있는 가정의 아이들을 키우는 조그마한 집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호스트 홈도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유지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서 지방정부가 없애기 시작했어요.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아이는 태어나서 행복한 가정 분위기에서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죠.
- 외국에서 아이들을 버리는 행위를 방지하는 법은 없었나요?
영국의 경우 상류층 의사인 바나도스가 런던 뒷거리를 돌다 드러누워서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의식주를 해결해 주기 위해 고아원을 처음으로 만들었어요. 1870년경에 만들었는데 1910년쯤 되어서 아이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커다란 문제점이 발생했어요. 아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일할 생각을 않는 거예요. 받을 줄만 알죠. 사회에 나가서 자기 스스로 벌어서 사회에 이바지하거나 도움을 줄 생각은 안 한거죠.
이걸 시설병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영국에서는 1920년에서 30년대 들어 점차 고아원이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아동인권이나 아동복지에 있어서 영국이 가장 앞선 나라인데, 고아원을 없애고 전부 수양부모제도로 바뀌었어요. 그런데 10년 전부터는 수양부모제도조차도 나쁘다는 얘기가 영국에서 나오고 있어요. 될 수 있으면 아이를 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만일 직장이 없는 부모, 예를 들어 미혼모에게는 트레이닝을 시켜서 직장을 갖게 하고 편모 편부 슬하에 있는 아이들도 그 친부모가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국가가 지원을 해서 버려지는 아이들이 생기는 것을 예방하자는 거죠. 그러나 예방으로도 안 된 경우는 결국 수양부모제로 보호를 하고 있죠.
- 수양부모제도를 우리 나라처럼 민간이 아니라 직접 국가에서 지원한다는 얘기군요.
아동복지에 쓰여지는 국가재원의 80~90%가 수양부모와 아동에게 지원되고 있죠.
가정운동복원도 펼쳐
- 지금 수양부모협회에서든 아이들을 어디에서 데려오고 있습니까?
신문 잡지보고 혹은 114를 통해 수양부모회를 안 사람들이 연락을 해와요. 특히 여성의 전화에 전화하면 모두 우리쪽으로 오죠. 예를 들면 얼마 전에 거제도에서 세 살, 여섯 살 두 아이가 비참하게 산다고 연락이 왔는데, 엄마가 특정 종교에 빠져서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었어요. 어떤 정도였냐면 이 아이들을 우리는 타잔이라고 불렀는데 걸을 수 있으면서도 기어다니고 방에다 오줌 똥 다 싸놓고 해서 동네 사람들이 가서 치워줬어요. 먹는 것도 주민이 라면이나 떡볶이를 만들어 주면 몇날 며칠 먹고 있었죠.주로 이런 아이들이 수양부모에게 보내지죠.
특징을 보면 95년부터 98년까지 5년 동안은 주로 미혼모나 부모가 이혼하고 아이를 맡기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IMF 이후에는 주로 아버지들이 버렸는데 엄마는 가출하고 아이를 데리고 돈을 벌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죠. 요즘은 학대받는 아내들이 남편을 피해 쉼터에 들어가고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많아요.
- 수양부모가 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어떤 기준이나 원칙이 있는지 얘기해 주시죠.
당연히 원칙이 있죠 남자아이가 있는 가정은 남자아이를 들이고, 여자아이가 있는 집은 여자아이를 들이죠. 그리고 수양부모가 되려면 아이가 셋 이하, 남편이나 아내가 직업이 있어야 하고, 65세 미만이 기본적인 기준입니다. 여기에 위계질서 유지를 위해 자신의 아이보다 동생뻘 아이들만 들이는데 왜냐하면 자신의 아이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 엄마가 없을 때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우리 협회는 어쩔 수 없이 남자아이가 있는 집에 여자아이를 들이게 되면 7, 8세 터울을 두어 가정에서 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있죠. 어느 나라든 남의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일은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국가에서 재정 지원을 하고 있죠.
영국은 지역에 따라 한 아이에게 1백만원에서 4백만원까지 지원하고 있죠. 미국도 1백만원 정도를 지원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 아이 당 6만5천원을 지원합니다.
- 시설의 경우는 1인당 20만원에서 30만원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너무 적은 지원이군요.
그래서 지난해 1999년과 재작년 1998년에는 공동모금에서 각각 3천만원과 4천만원을 지원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원받은 금액의 80% 이상을 아이들 의료비로 지출했어요. 의료비가 상당히 많이 든다는 얘기죠. 현재 우리 협회에는 2백명 정도의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수양부모가 대기하고 있지만 재정이 없어요. 의료비 등을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다면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의료비 다음으로 아이들 교육비도 상당액을 차지하고 있는데 현재 교육비는 초등학생의 경우 4만원 점심값 정도를 겨우 지원하는 정도입니다. 아이들 학원비 부담이 엄청난데 3세에서 6세 종일반을 다니려면 월 25만원이 소요돼요. 지금까지 이 비용을 모두 협회에서 지원했습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부가 말씀드린 비용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수양부모 확보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죠.
- 수양부모 현황과 지원 증가율은 어떤지 궁금하군요
98년에는 수양부모 평균 연령이 평균 45세였는데 현재는 35세로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자원활동겸 아이를 키우는 재미도 누리려는 목적으로 여자아이들을 데려간 수양부모들은 중도에 다 포기했습니다. 처음에는 수양부모 층이 중산층이었는데 지금은 중산층 이하가 수양부모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특권층이나 상류층 가정은 아이를 통해 나누려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경우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기본적으로 수입의 10%를 십일조로 떼내 어려운 곳에 기부합니다. 저희 시어머니 시아버지도 연금을 받으면 꼬박꼬박 내놓습니다. 이 사람들은 기부를 도덕이자 의무로 생각하고 있는 거죠. 사회 일원으로서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일을 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교육을 받습니다.
한마디로 선진국은 자기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계발하여 스스로의 행복추구 능력을 기르고 나중에는 사회에서 추구한 행복을 사회에 되돌려주고 남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교육의 최종 목표입니다. 우리처럼 혼자 잘 먹고 남 도움 받지 말고 살라고 교육하면 사회경쟁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혼자 잘 먹고 살면 된다는 생각이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더군다나 요즘 아이들은 전부 공주, 왕자로 자라서 어른이 되면 남들이 희생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만 사회에 나오고, 사회가 필요한 일꾼은 나오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수양부모 운동보다 먼저 시작한 것이 일꾼 만들기 운동, 즉 남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자는 운동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 아이들 현황은 어떤지요?
현재 약 2백여명이 대기 중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키운 아이가 2백명, 친부모에게 돌려보낸 아이가 2백여명 되고 지금 60명 정도가 수양부모 밑에서 양육되고 있습니다. 말씀드렸지만 2백여명이 대기 중에 있는데 혹가다 부모에게 연락하면 벌써 버렸다고 하는 부모들도 많아요. 부모들이 버린 아이들은 경찰서를 거쳐 시립아동상담소로 가고 그 다음에는 고아원에 보내집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을 버린 부모들이 아이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아 그것이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어요. 수양부모가 아이를 키우다 부모가 친권 포기를 하면 키워준 가정에 입양을 시키는데 6개월 간 겨우 6명 정도가 입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입양기관 역할도 하는 셈인데 아이를 키우다 부모에게 돌려줄 때 수양부모가 아이와 헤어지기 싫어 아이를 안고 늘어지고 울음바다가 되죠. 아이는 더합니다. 정이 들어 수양부모들과 떨어지려 하지 않습니다. 특히 3세에서 5세 정도의 아주 어린아이들은 친부모에게 가지 않으려고 하죠.
- 앞으로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올해 4월이면 저희 협회가 생긴 지 3년째를 맞이합니다. 저희는 지금 가정복원 운동도 하고 있는데 별거 가정 재결합율이 70% 정도 됩니다. 친부모에게 의도적으로 아이를 만나게 하는데 아이하고 놀다 보면 정이 새롭게 들어 재결합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 아이를 버리는 부모는 대부분 저소득층, 저학력층이 대부분이예요. 그래서 수양부모에게 가있는 아이의 30%부모가 친권을 포기하려고 하는데 그럴 경우 우리는 아버지가 일자리가 없으면 수위직이라도 알아봐 주고 어머니는 베이비시터로 소개해 줍니다. 그렇게 해서 부모가 돈을 벌면 4백만원 짜리 삯월세 방이라도 얻어서 아이를 데려가도록 권유합니다. 수양부모회는 이렇게 수양부모만 소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종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거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좋은 것은 아이가 부모와 같이 사는 것입니다.
버려지는 아이들은 국가 책임
- 가장 궁금한 사항인데 수양부모가 키우는 장애아도 있습니까?
서너 명 정도 있었습니다. 아주 중증은 키우기 어렵고 경증 아이들이었죠. 한 아이는 몸에 화상을 입고 한 쪽 다리를 쓰지 못했는데 아는 사람을 통해서 두 번 수술을 받고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또 한 아이는 화상으로 손가락이 다 붙어 급하게 수술하고 현재는 떼는 수술이 남았습니다. 또 한 아이는 세 살 때 왔는데 염색체 이상으로 근육이 제대로 발달이 안된 장애아였습니다. 장이 보통 사람의 절반 정도밖에 안돼 장 수축작용을 해야 겨우 변을 볼 수 있어서 매번 관장을 시키는 일이 힘겨웠죠. 결국 2년 정도 키우다가 수양부모가 아파 다시 부모에게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죠.
- 수양부모가 아이들을 키우다 친부모에게 돌려보낸 경우 연락은 오나요?
수양부모들이 만나기도 하죠. 제가 수양부모에게 하는 말이 있는데 아이들이 지금은 모르겠지만 30, 40세가 되었을 때 수양부모에게 고마워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친부모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생각도 말라고 얘기합니다.
- 말씀을 듣다보니 수양부모 제도에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죠. 일단 버려진 아이들은 이유야 어찌됐건 모두 국가 책임입니다.
- 지금까지 일 얘기만 했는데 개인적인 얘기도 좀 해주시죠. 어떻게 사시다가 이 일을 하게 됐습니까?
저는 76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춘천에서 영어교사를 하다가 유학을 결심하고 미국에 가서 영화제작 분야를 1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교수가 너는 그렇게 좁은 식견을 갖고 영화를 할 수 있겠느냐고 해요. 나름대로 생각도 많고 소설도 쓰고 경험도 다양하게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분 말씀이 광산촌에 가서 일을 해봐라 그리고 20층 높이 건축 현장에서도 일을 해보라고 권하더군요.
영화감독을 하려면 험한 일을 해야 고소공포증도 이겨내야 하고 담력이 필요하다는 얘기였어요. 그래서 여행을 다녔습니다. 80년대 초 배낭여행 1인자로 불릴 만큼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며 지금까지 80여개 국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한국에 돌아와서 무언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을 살면서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고 대신 죽을 때 떳떳한 일을 하자는 게 제 인생관입니다.
- 국제결혼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국제 결혼이 흔치 않았을 땐데.
그 얘기도 할 얘기가 많은데, 미국에는 메리트 하우징이란 게 있는데 돈이 없는 대학원생들이 방을 바꿔가며 룸메이트로 같이 살다가 친해지면 결혼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현재 남편을 만나 결혼해서 여행하다 돈이 떨어져 같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82년부터 영국대사관을 다녔는데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제가 대사와 호텔에서 나오면 혀를 차면서 대낮부터 저것들이라는 식의 눈길을 보내더라구요. 세미나하고 보따리 들고 나오면 몸팔고 물건 훔쳐 나오는 줄 알더라구요.
그래서 남편과 걸을 때도 조금 떨어져서 모르는 사람처럼 다녀야 했어요. 같이 가면 양공주라고 침을 뱉거나 소금을 뿌리거든요. 한번은 파티가 있어 원피스를 좀 화려하게 입고 신촌을 갔는데 한 젊은이가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더군요. 이런 식으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 얼마전 영국대사관을 그만두셨는데요. 사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많지는 않고 퇴직금으로 9천만원 정도를 받아 그 돈으로 쉼터를 마련했습니다. 이전에는 우리 협회 사무실이 6평 오피스텔이어서 아이가 셋이 들어오면 방이 꽉찼었는데 이제는 쉼터 아래에 사무실을 차리고 수양아이들을 모아놓고 주말 영어 캠프를 할 정도로 넓은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더러 수양부모회를 운영할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고 하죠. 여기까지 오기까지 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사기 치려는 사람도 있었어요. 아이를 내가 유괴해 갔다면서 2억을 요구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변호사를 사서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하면 돈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놨죠. 그리고 한번은 내가 외국에는 고아원이 없다고 하니까 전국의 고아원원장들이 보건복지부 앞에서 박영숙이가 시설을 죽이려 한다고 데모를 하더군요. 제가 공보관에 있어서 기자들을 많이 만나는데 기자들의 상당수가 우리 협회 후원자들이어서 우리 협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훤히 알고 있어요. 그래서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었죠.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음 말이 있다면 해주시죠.
제가 계산을 해보니까 재정지원 즉 의료비와 교육비 지원만 있으면 1년에 1에서 2억 정도로도 버려지는 2,300명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희 협회 재정으로는 60명 정도만 가능합니다. 저희는 수양부모제도가 제도화되기 전까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사회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줄어들 수 있도록 함께걸음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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