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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연재] 아프리카에서 장애우로 산다는 것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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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장애우들의 자립생활 가능성은 깊은 사고와 분석을 요구하는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장애우에 관한 기록이 거의 돼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복합적이고 전문적인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사회과학관련 일반 텍스트북들과 유행병에 관한 지역 건강의 원리들에서 자료를 발췌했다. 이 글은 아프리카 잠비아인 펠릭스 쉴윔바의 아프리카 신체장애우들의 자립생활 가능성에 관련된 것으로 식민지 이전 시대, 식민지 시대, 독립 시대 3개 부분으로 나누어 역사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식민지 이전의 시대에서 산다는 것은 전쟁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가장 적합한 생존방식이었다. 부족전쟁이 일상사로 일어나는 시대였고 야생동물들 또한 커다란 위협이었다. 식민지 이전 시대에는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나 중증질환자들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찌감치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장애우들은 매우 드물었다. 다만 범죄에 대한 형벌로 눈을 뽑히거나, 손, 귓불이 절단된 장애인들은 존재했다. 이런 이유로 장애우들은 심하게 배척 당해야만 했다.

 민속에서 그다지 많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다른 원인들로 시각장애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내반족, 팔다리나 팔다리 일부의 기형 등 선천적인 조건들이 민속에서 언급되어졌다. 대부분 그것들은 인문학적 용어들로 기술된다. 벰바족 역사에 한 가지 유력한 사례가 있는데 추장의 여동생이 유일하게 손이 없는 남자아이를 낳았다. 여추장은 추장의 아이들은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매에게 아이의 양육을 넘김으로써 아이를 거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이는 나중에 자신의 부족의 최고의 부족장 중의 하나로 밝혀졌다. 그러므로, 그 시대에조차도 어떤 장애우들은 매우 익숙하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할 수 있다.

 식민주의 정책은 전쟁중인 부족들 간에 정전을 가져왔다. 평화와 안정은 점차 현실이 되었다. 튼튼한 남성들은 광산으로 가 직업을 구했다. 의료 서비스들과 지역 보건은 차츰 개선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중증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나 만성질환, 결핵환자들은 생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결과 사망의 원인이 되었던 상황들이 이제는 장애를 낳았다. 2차 세계대전 또한 장애우들을 발생시켰다.

 선교사들은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유럽에서 자신들이 얻었던 이전 경험들을 활용하여 장애우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장애를 가진 남성을 돌보는 대부분의 역할이 선교사 사회에 맡겨졌다.

 독립 투쟁은 민족자결주의 운동과 식민지 정부 권력 사이에 충돌을 빚었고 그 결과 새로운 형태의 장애우들을 발생했다. 최근 독립 국가들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장애우의 발생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이는 잠비아 사회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독립 후 잠비아의 정세는 지역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잠비아에서는 사회에 대한 서비스 제공에 분명한 개선이 이루어졌다. 지역 사회의 위생이 개선되었고 유아 사망률이 감소했으나 이번에는 소아마비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소아마비의 발생은 오늘날 대부분 개발도상국의 절반 이상의 젊은이들과 성인들에게 신체 장애를 가져다주었다.

 전통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남자는 병든 남자로 간주되고 있고 그것은 다른 가족들과 친척들이 부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들이 장애우를 괴롭게 하는 것은 조상의 영혼을 노엽게 한다는 믿음을 사람들은 강력하게 믿어지고 있다. 장애우들이 불행하게 죽는다면 주문이 그 가족들에게 걸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존경심으로 장애우들을 수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장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장애우들에게 주변 환경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게 한다. 자연스럽게 우리들은 장애우들로부터 받기보다는 오히려 주는 데에서 기쁨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장애우들은 주변 환경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도록 한다. 자연스럽게 우리들은 장애우들로부터 받기보다는 오히려 주는 데에서 기쁨을 얻는 경향이 있다.

 체력보다 지성을 중시하는 도시는 장에우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다.

 개발도상국의 주민 대다수는 농촌 지대에 산다. 이들 지역에서 생활 양식은 충분한 곡식을 재배하고 가족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신체적인 힘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청각장애우와 정신장애우들은 신체장애우나 시각장애우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대부분의 청각장애우들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자립적인 삶을 보내고 있고 육체 노동에 있어서 부지런한 일꾼으로 인정받는다. 그들은 결혼을 해서 가족을 늘린다. 몇몇 시각장애우들은 좋은 숯가마를 갖고 일꾼을 부리고 결혼을 했다. 그러나 아직 농촌지역에서는 기술적인 지원을 신체장애우들에게 지원하는 것조차 어렵다.

 도심지 생활은 신체 능력보다는 머리에 더 의존하게 된다. 이는 도시에서의 생존은 지성, 창조력, 사람들을 조직하는 능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신체 장애우들에게 이상적인 장소이다. 도시에서는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커다란 신체적 노력 없이도 돈을 모을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

 자립하기 위한 장애우의 욕망과 능력의 성과는 거의 극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인들에 달려있다. 이러한 요인의 몇 가지는 부모의 영향력, 장애가 시작되는 나이, 장애의 유형, 개인적인 교육 수준과 주위의 환경적인 장벽 등이다.

 부모의 태도들을 고려하면서 나는 장애아를 위해 잘 준비를 해 주는 가정 같은 이상적인 장소를 이용한다. 가난한 부모들은 명백한 이유로 장애를 가진 자식을 그런 집에 맡기고 싶어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보수적인 부모들은 특별한 보호를 주고 싶어 아이들을 소위 전문가에게 맡기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학교육을 받은 진보적인 부모들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의 아이를 맡기는 것을 내켜하지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들은 아이들을 스스로 양육하려 할 것이고 다른 누구나 처럼 아이들을 대할 것이다. 진보적인 부모는 진지한 마음, 비판적인 분석을 갖추고 장애아를 성공시키기를 원한다.

 그 아이들은 잘 적응하고 훈련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사회의 선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보적인 부모들은 권위적이지 않고 은으로 만든 큰 쟁반에 모든 것을 제공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장애 아동들이 자신의 환경을 배우고 자신만의 표준을 세우고 공손하게 정중한 자립 방법으로 한계와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도록 한다.

 장애가 시작되는 시기는 개인의 자립 성향에 특별한 연관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은 잘 적응하는 경향이 있고 자립 성공에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들은 환경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한정된 자원에 적응했다. 대부분의 장애우들이 어린 시절 감염으로 장애를 갖기 때문에 이것은 아프리카에서는 의의가 있다.

성인기에 장애를 입는 사람들은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기 때문에 사회적인 충격의 단계에 있다. 어떤 이들은 직업을 잃고 가족들은 그들을 비난한다.

 그들은 장애를 입기 전에 지녔던 모든 미덕을 갑자기 잃어버렸을 뿐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이제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라는 현실 때문에 우울증의 단계에 빠진다. 그들은 제공자 프로바이저의 역할에 익숙해져 있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들이 부양을 받게 된다.

 여성의 경우에는 아름다움에서 벗어난다. 이들 그룹의 의의는 우리 사회가 남성적인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강건한 신체를 이상으로 삼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남성은 일반적으로 열등하고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이 그룹은 높은 이혼율을 나타낸다. 그리고 의존하게 된다는 것과 사회에 부담이 된다는 사실에 운다. 이는 이 그룹의 재학습을 돕기 위한 연관된 재활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장애우의 탓으로 여기는 부정적인 것들에 대해 커다란 책임을 지고 있다.

 아프리카 전통사회에서는 장애우를 괴롭게 하면 조상의 영혼이 노여워한다는 미신을 갖고 있다. 만일 장애우가 불행하게 죽는다면 가족들에게 주문을 건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장애우를 존중하며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식민지 이후에는 아프리카 개도국 젊은이의 절반이 소아마비의 피해를 입었다.

작성자이현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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