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사랑방] 사랑을 전하는 것은 말로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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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하이텔내 교사들의 동호회(go pedagogy)에 일반학교에 다니는 은경(가명)이라는 청각장애 제자를 지켜보며 통합교육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 한 교사의 글에 대해 아이디가 ‘babo85’인 한 교사가 답신한 글이다. 필자의 허락을 얻어 이를 게재한다.
청각장애 제자를 둔 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고 떠오른 생각 하나 있었다. 청각장애우인 한 급우를 위해 같은 반 친구들이 수화를 배우고 나중엔 그 학교 모든 학생들이 전부 수화를 배운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 영국의 어느 초등학교 이야기였다.
우리네 열악한 교육 현실에서, 장애우에 대한 배려라든지 복지는 부끄러울만큼 형편이 없으면서도 장애우에 대한 편견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강한 우리네 사회에서, 저런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기대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단 한 사람이라도 청각장애우인 은경이의 장애와 어려움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은경이는 많은 힘과 용기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움과 싸우고 고통과 싸우고, 답답함과 외로움과 싸우면서 자신의 삶과 씨름할 것이다.
나는 생각해본다. 지금 은경이와 은경이 부모님이 얼마나 눈물겨운 분투를 하고 있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고통과 얼마나 힘겹게 싸우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혹시나 은경이를 특수학교로 보낼까봐 걱정한 나머지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빵을 사고 상품권을 사서 줄 때의 그 절박하고 가슴 미어졌을 은경이 부모님의 심정과 옆에서 보며 불안했을 은경이 심정을...
그래서 바래본다. 은경이가 힘든 가운데도 씩씩하게 잘 버텨내기를.
그리고 그런 은경이에게 작은 도움과 위안이 되어줄 가슴 따뜻한 벗들이 생기기를. 제자의 어려움을 가슴 아파하며 뭔가 도움될 일이 없나 고민하는 선생님이 생기기를.
지금 은경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마 ‘소통의 통로’가 생기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 ‘글‘로라도 그가 소외될 지 모르는 여러 가지 일들과 상황에 대해 짧게라도 전해주는 따뜻한 나눔일 것이다. ‘편지’나 ‘글’로라도 그가 느끼는 이런 저런 생각과 고민과 생활들 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일상적인 수다들을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대화의 벗’, ‘소통의 벗’을 가지는 일일 것이다.
그 사람은 또래여도 상관없고, 선생님이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청각장애우가 느끼는 비애와 슬픔 중에 가장 크고 일반적인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섞여 있고 생활하면서도 다른 이들의 이야기와 대화에서 자신이 소외되는 일이다. 자신도 다른 이들이 주고 받는 대화의 주제에 대한 느낌과 생각이 있지만 단지 그 대화가 어떤 내용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그림처럼 막막하게 자리만 채우고 있어야 할 때의 그 소외와 속상함과 비애를 건청인(정상적인 청력을 가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해서, 주위 선생님이 가끔이라도 ‘은경’이가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글’이나 ‘편지’로라도 은경이와 자주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은경이 주위에 ‘속 깊고 따뜻한 제자’가 있거든 그런 제자들에게 ‘은경’이의 좋은 친구가 되어 은경이가 조금이라도 학교 생활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도와주도록 ‘만드는’, ‘보이지 않는 지혜와 배려’를 발휘해 보는 일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은경이와는 상황과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나 역시 전화통화가 불편해서 못할만큼 청력이 약한 청각장애우다. 대학 때 어떤 일 때문에 청신경을 손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현재 큰 불편함이나 어려움 없이 직장 생활을 하며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말이다. 물론, 당연히 불편한 점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조그만, 아주 조그만 주위 사람들의 이해와 배려만 있다면 말이다. 아이들과의 수업, 소통, 그밖의 여러 가지에서 내 청각장애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진 않는다. 아주 가끔, 정상적인 청력을 가진 사람들 보다 조금 불편할 때가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은경이 스스로가 자신의 장애에 대해 건강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과 보다 잘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하는 일 역시 중요한 일이지만, 옆의 친구나 선생님들의 작은 이해와 배려와 나눔은 은경이가 은경이 자신의 삶을 보다 건강하고 씩씩하고 아름답게 사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사랑은 말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말은 입으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듯한 손길로도, 눈빛으로도, 글로도, 마음으로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글/ 함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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