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기술력 철저한 고객서비스가 오토복의 성공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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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복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장애우 보장구 생산 기업이다. 오토복이 걸어온 길을 보면,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는 몇백 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해 의족의 수요가 급증했다. 이를 계기로 오토복은 오토복(OTTOBOCK)그룹을 창설, 1919년 베를린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대퇴의족을 삼등분하여 각각을 조립이 가능한 파트로 나누어 공업생산한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얼라이먼트방식’을 확립하여 순식간에 전세계 의족 제작에 영향을 미쳤다.
그 후 금세기 최대 비극인 제2차 세계대전과 동서 독일의 분할이라는 사태 속에서 한 때는 회사가 소련에 몰수되는 고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현 회장으로 있는 마르크스 네다는 창업자의 의지를 이어받아 연구개발에 노력을 집중해 오늘날 모듈러 의지에 없어서는 안되는 피라미드식 연결시스템 등 근대 의지 기술의 요점이 되는 사고방식과 기초적 체계를 구축했다.
현재 오토복 그룹은 듀다스타드에 그 본점을 두고 전세계 50여개 자회사를 통해 각각의 지역과 국가의 실정에 따른 개발·제조·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오토복은 의지, 보장구 분야에 더해 휠체어 등 재활 분야와 메디칼 분야로 급속하게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등 복지의료 종합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장애우용품 컨퍼런스에 참석차 독일을 방문한 함께걸음 김정열 편집주간은 컨퍼런스 진행으로 여념이 없는 오토복 부사장 칼 하인즈 버카드 씨를 인터뷰했다.
김정열- 오토복에서 초청해주셔서 좋은 기회를 갖게 되어 감사합니다.
오토복- 저희 오토복도 와 주신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김정열- 여기와서 보니 오토복 코너가 다른 업체보다 품목이 월등히 많은데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오토복- 먼저 저희 오토복은 단일 회사가 참여한 것이 아니라 보장구, 휠체어, 스타킹, 전동휠체어 등 8개 분야에서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본 컨퍼런스는 아시다시피 세계 최대의 컨퍼런스입니다. 3년에 한번씩 열리는 행사이기 때문에 오토복에서도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한 지역이 아닌 독일 전지역 계열사들이 참여하고 있고 고객들이 모두 오기 때문에 다른 회사보다 규모가 큰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정열- 참여한 회사들마다 특징이 있을텐데 특별히 오토복이 갖고 있는 다른 특징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오토복- 말씀하셨다시피 전세계에는 수많은 보장구업체들이 있습니다만 저희 오토복만이 유일하게 고객들에게 컨퍼런스 프로그램, 다양한 워크숍, 세미나, 트레이닝, 교육, 클리닉, 멀티미디어 프리젠테이션 등과 전문 분야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식을 공유하고, 지속적인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오토복의 노력입니다. 그리고 제품에 있어서도 거의 모든 제품을 망라하고 있고 지역별로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세계 여러 나라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물론이고요.
김정열- 아까 전동 휠체어를 관람했는데 각 부분이 분해되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특히 보장구와 기술이 잘 결합한 것 같은데 뛰어난 기술력이 다른 회사들과 차별적이고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같은데요?
오토복- 보장구에 이른바 모듈러 시스템을 갖춘 것은 3,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아이디어는 휠체어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제품들에도 실제로 영향을 미쳤고 적용하고 있습니다. 모듈러 시스템의 특징은 언제고 수시로 교체할 수 있고 분해할 수 있는 컨셉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기본적으로 휠체어를 사고 나중에 스탠딩 휠체어로 바꾸려면 따로 새로운 휠체어를 구입해야만 하지만 오토복 제품은 더 이상 비용을 안 쓰고도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오래전부터 모듈러시스템을 도입 산업화에 성공
김정열- 회사에 대한 소개를 살펴보니 1919년에 설립이 되었다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해서 보장구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오토복- 오토복은 1919년 베를린에서 20명의 직원으로 출발했습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대략 3천5백여 명의 직원들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많은 이들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토복은 자연스럽게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오토복 설립 이전의 보장구 시장의 상황은 순수하게 손기술만을 사용하는 수공업 형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발에서부터 손, 관절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오토복이 처음으로 산업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모듈러시스템이라 부르는 기술이 보편적으로 정착되어 있지만 그 이전에도 오토복은 모듈러시스템으로 손목, 발목, 인공관절 등을 만들어왔습니다.
김정열- 산업화를 발달시킨 것이 특징이라고 했는데 장애우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수입이 적은 편인데 어떻게 산업화로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까? 다시 말해 소비자로서 장애우들이 구매 능력이 있어야 산업화가 가능한데 비결이 있습니까?
오토복- 오토복은 보장구와 의수족 등 보철 분야에서 대량 생산의 원리를 개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철저히 개인에 맞추어 사용이 가능하도록 표준화를 이루었고 최소 비용에 최대 만족을 주기 위하여 보장구와 보철장치의 기술력을 지속적으로 높여왔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높은 질의 제품을 만들어 낸 게 첫 번째 비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일은 잘 발달된 기업사회라 말할 수 있는데, 사회적 관계가 잘 정립되어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오토복은 제품만 팔고 끝나는 기업이 절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기술지원이라든가 모든 것을 소비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서비스하는 회사입니다. 이것이 고객들에게 만족을 주는 것 같습니다.
김정열- 모듈러시스템에 투자를 집중적으로 했다고 하셨는데 모듈러시스템은 현재 어디까지 발전되어 있습니까? 앞으로 육백만불의 사나이라던가 소머즈 같은(웃음) 수준까지도 가능한 것인지 미래에 대해 전망해 주십시오
오토복- 모듈러시스템 부품 기술은 현재로서는 전자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앞으로 인조인간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할 것이란 것은 명백합니다. 팔이 없는 사람에게 손기능만 주는 것이 아니라 미관까지도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기능적일 뿐만아니라 미관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도 훌륭한 제품들이 개발될 것입니다. 특히 저희가 8년 동안 개발한 시렉(C-leg)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최초로 채용한 제품입니다.
김정열- 따로 연구소를 설립해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오토복- 물론 용도 결정이라든지 주된 제품 기획은 오토복이 합니다. 그런데, 시렉 같은 경우는 캐나다 연구소의 켈리 제임스란 사람이 처음으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하지만 실제 제작에 들어가서는 오토복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합니다. 왜냐하면 기계적으로도 훌륭해야 하겠지만 인간공학적으로 인간에게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성용일 경우 작게 제작을 해야만 합니다. 몸에 맞춘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8년이란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김정열- 오토복의 노력에 대해서는 잘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보장구 발전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어떠한 것들이 있습니까? 제작을 위한 경제적 지원이라던가 아니면 보장구를 소비하는 장애우들에 대한 지원이 있습니까?
오토복- 오토복은 철저히 독립적으로 운영을 합니다. 국가로부터 전혀 지원을 받지 않고 기획, 시장확보 등을 독립적으로 하는데 다만 사회보장법에 의해 1천3백 곳의 대리점에 제품을 배포하고 있습니다. 장애우들에 대한 지원은 사회보장법에 따라 보험에 의해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지원은 100%입니다.
김정열- 독일의 장애우에 대한 사회보장 수준에 대해서 독일 장애우들은 만족하는 편입니까?
오토복- 정치적인 얘기지만 독일은 세계적으로 보아 사회보장이 가장 잘 되어 있는 나라이고 비용지출도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현재는 전액 보장하고 있지만 아마도 가까운 장래에는 80% 아니면 일정 선만을 국가가 지원하고 나머지 비용은 각자 부담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전망합니다. 바로 이것이 첫 번째 방향이고 두 번째 방향은 장애우에게 어느 보험회사건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고 그에 따라 보험사도 경쟁체제로 가는 방향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김정열- 사회보험이 경쟁체제로 전환하고 있다는 뜻입니까? 사회보험에서는 수입이 얼마가 되든 의무적으로 보험료를 내게 되어 있는데 만약 수입이 일정 수준 이상이라면 각자가 스스로 보험회사를 선택해 민영보험에 가입하게 됩니다.
독일정부 장애우용품 구입자금 100% 지원
김정열- 잠깐 쉬어가는 기분으로 시사적인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처음으로 성사되었는데 기대반 우려반의 시각이 있습니다. 독일의 사례에서 무조건 통일만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교훈을 주었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통일 후 대책을 고민하고 있는데 통일이라든가 남북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한지 독일사회의 오피니언리더로서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오토복- 아주 흔치 않은 경험일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을 했습니다. 소장님이 오신 이곳 라이프치히를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도저히 상상이 안되시겠지만 라이프치히는 10년 전만 해도 파괴되고 훼손된 지역이었습니다. 10년 동안 라이프치히를 복원했고 엄청난 돈을 들여 지금도 복원중입니다. 전독일이 아니라 라이프치히만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국경에서 3백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독일이 분단되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제가 뭐라 말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충분한 의견교환과 충분한 계획이 바탕이 되어야 충격에서 헤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궁금한 것은 통일비용이 될텐데 아주 복잡한 문제입니다. 먼저 분단된 두 나라가 통일을 할 때 경제력으로 동등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다음으로 법적인 제도, 세무, 연금, 월급 하다못해 초등학교의 경우 어느 지역은 국가지원을 받고 어느 지역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문제들 등등 해결해야 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수요와 비용을 고려해 한국에 오토복 공장 설립할 터
김정열-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가벼운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한국의 경우 소비자의 소득이 적었기 때문에 보장구가 중요한 것은 알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욕구가 높아져 외국 보장구가 수입되는 경우도 많은데 한국 장애우의 체형이나 정서적인 측면에 잘 맞는지는 의문입니다. 한국은 아직 보장구 산업이 낙후되어 있는 편인데 마침 오토복 한국지사가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보장구산업이 발달할 수 있도록 오토복이 동참해 지원할 계획도 있습니까?
오토복- 가벼운 질문이 아닌데요?(웃음) 회사 내부적으로 그 얘기도 토론된 적이 있습니다. 저희는 80년 간 제품을 개발해 오는 동안 보장구기술 교육에도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많은 전문가들을 키워냈습니다. 우리는 제품만을 생산하고 모든 것을 끝내지 않습니다. 기술적인 지원들을 훨씬 많이 했다고 자부합니다. 현재 오토복은 2만여 개 이상의 보장구를 생산해 내고 있는데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고 많은 노력들을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특별히 환자하고 긴밀한 관계를 위해서는 가능하면 클리닉 기능을 같이 하며 보장구를 만들어 내는 샵이 많이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생산공장을 지을 경우 많은 경비가 소요되기 때문에 일단 클리닉이라든가 가지고 있는 첨단기술을 공유하는 따위의 가능한 것부터 할 생각입니다. 앞으로 필요하다면 수요와 경비를 고려해 추진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외국에 공장을 세울 경우 시장성을 우선 고려합니다.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여러 요소를 충분히 고려한 후에라야 진출을 결정할 것입니다.
김정열- 이것은 부탁이 되겠는데 우리나라도 고령화가 되어감에 따라 나이가 들면서 장애우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져 보장구에 대한 욕구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이를 고려해 기술자를 키울 목적으로 조만간 장애우전문학교를 세우는데 여기에 보장구학과가 설치될 예정입니다. 보장구를 가르쳐 주는 곳이 거의 드물기 때문에 국내 장애우복지 관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오토복이 이런 기관과 협력한 경우가 있는지, 이런 경우 함께 동참할 계획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토복- 오토복이 도울 수 있는 부분을 말씀드리자면 기술교육이라든가 세미나, 아니면 제품을 대 줄 수도 있고, 브로우셔, 비디오테이프 등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다음 단계로 교육프로그램을 공유한다거나 예를 들면 독일의 보장구학교와 한국의 보장구학교가 자매결연을 하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부연하자면 제가 말씀드린 교육프로그램이란 1차적으로는 비디오자료 제공, 세미나 개최 등 정보제공으로 바로 기술교육을 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말한 것이고 보장구학교라는 것은 마스터딜리 박사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보장구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가서 박사과정을 밟는 형태입니다.
<편집자 주 : 실제 한국보훈병원 의지창의 경우 독일 오토복과 5개년(95~2000년) 기술협정을 체결하고 96년부터 보훈병원 기사들이 매년 3명씩 3개월간 독일 오토복에서 교육받고 있으며 독일 기사가 매년 10주간 보훈병원에 상주하며 첨단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김정열- 한국에서 장애우 접근권에 대한 관심이 일어난 것은 90년대 초 시민단체들이 접근권 운동을 하면서부터이고 이것이 사회 이슈로 떠올라 법 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현재 제도적으로 보장이 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장애우들이 집밖으로 나오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이제 운동을 통해 장애우들을 사회로 나오게 해야 하는데 요컨데 영국에서는 샵모빌리티(Shop Mobility) 운동이 일어났고 일본으로 건너가 타운모빌리티(Town Mobility)라는 개념으로 발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런 사례들을 조사하고 있는데 한국 사회에서 장애우들이 밖으로 나와 혼자 다닐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한 운동에 오토복에서 지원 같은 것이 가능합니까? 간곡한 부탁이기도 합니다.
오토복- 대여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고… 이는 지금으로서는 확답을 하기가 어려운데 프로젝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지원이 가능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체, 시각, 청각 모든 장애우들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전체적인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지원이 가능할 겁니다.
(이 부분에서 한국 오토복 윤충 사장은 하노버에서 엑스포2000 이 열리고 있는데 필요한 샘플을 제공해 주었고 회사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시드니 장애우 올림픽에 링크를 해 주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이런 식의 지원을 말한 것 같다고 부연 설명해 주었다.)
김정열- 장시간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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