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에구~ 에구~ 창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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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느낄 수 있는 들녘을 지나 청주에서 강의가 있었다. 수강생 중에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과 10월에 1박2일 프로그램을 하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어 강의 후에 회의가 있었다. 회의는 청주여성장애인회 회장 영미 씨와 상근자 3명이 함께 하였다. 손발이 척척 맞는 회의 결과를 가지고 꽁보리밥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에서 영미 씨는 내게 어떤 계기로 여성장애우에 대한 공부를 하였는지 물었다.
나는 그 답으로 자신 있게, 내가 만나고 있는 그 누구든 동일시하는 것이 나와 상대를 편하게 연결 해주는 것 같다,라고 얘기했고, 수화를 통해서 전해들은 그 친구는 환한 웃음으로 끄덕였다. 우리는 보리밥으로 다져진 친밀함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얘기를 나눈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낯선 도시에서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영미 씨 일행이 나는 너무나 고마웠다.
감사한 마음으로 뒷자리에 앉은 나는 무심결에 “들리지 않는 친구가 어떻게 운전을 하나요?”하고 물었더니, 옆자리에 있던 척추장애를 가진 친구는 웃으면서, “그래서 회장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목숨을 내놓고 타야하고요. 벽에다가 그대로 직진도 하고, 차 옆구리로 남의 집 담벼락도 여러 번 부수었답니다” 하였다.
웃으면서 나도 긴장하고 앉아 있어야겠다, 하고는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이 차에 탈 때 운전석 옆문이 찌그러져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마도 나는 그때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이 친구가 운전미숙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들.
운전석에 앉은 친구는 말을 잘 하였다. 옆자리친구에게 얘기하고, 그 친구의 말하는 입모양을 보기 위해 자주 쳐다보았다. 뒷자리에 앉은 나는 불안함을 이기기 위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퇴근차량 행렬이 가지고 있는 똑같은 거리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낯선 도시에 있다는 상황만으로 전혀 색다른 느낌이었다.
바로 그 때, 검은색 승용차가 내가 탄 차와 거의 한 뼘 차이도 나지 않게 나란히 달리고 있었고, 백미러가 닿을 듯 하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어어… 어떡해!”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목소리에 앞자리 친구는 어이 없어하면서, “그 정도는 아니에요, 내가 너무 많은 겁을 줬나봐요. 죄송해요”하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청각장애우 친구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을 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내리면서 고맙다는 인사도 다정스럽게 하지 못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믿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불행한지 실감할 수 있는 큰 교훈을 얻었다.
“영미야! 너무너무 미안해. 너는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호들갑 피운 것 몰랐으면 한다.”
글/ 함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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