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사랑방] 눈물조차 닦아줄 수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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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추운 겨울, 난생 처음으로 항도 부산에서 수도 서울로 가 며칠을 머물다가 다시 부산행 통일호열차를 타려고 서울역 대합실에서 열차시간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때, 들으면 알만한 종교단체에서 종교인 두 분이 전도를 하고 있다며 다가와 내게 열심히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출발시간이 많이 남았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손해볼 것이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그들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등. 그런데 마침 우리들 앞에 지팡이를 더듬으며 시각장애우 한 사람이 나타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시계를 내밀며 사달라는 것이었다. 얼핏 보기에 눈동자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 분명한 시각장애우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그걸 왜 팔려고 하냐고 묻자, 그 사람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해운대가 집인데 일하기 위해 서울로 와서 어느 시설에서 생활을 해 왔는데 갑자기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돈을 관리하고 있던 시설원장이 돈을 주지 않아 할 수 없이 몰래 빠져 나왔다고 했다. 그 사람이 팔아서 돈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 유일하게 시계뿐이라 시계를 팔아 부산가는 기차표를 사려고 한다고 조금은 절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그 시계를 봤다. 보호 유리가 없고, 초침이 없으며, 시침과 분침이 일반시계보다 상당히 두꺼운 시각장애우용 시계. 볼 수가 없으니 손가락으로 만져서 시간을 확인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분명 그 시계는 시중에서 손쉽게 구할 수 없는 특수한 것이어서, 그 사람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상당히 소중한 물건이라는 사실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을 팔려고 할 정도면 정말 이 사람의 사정이 절박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행히도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현찰이라고는 2천원 정도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때까지 나와 얘기하고 있던 두 종교인에게 사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서울역 주위에는 원래 이런 식으로 돈을 뜯어내는 사람이 많다며 거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걸 보고 할 수 없이 지갑을 다시 뒤져보니 잔액이 좀 있는 전화카드가 보였다.
그래서 그럼 전화카드를 돈으로 바꾸면 안되겠냐고 했고, 그 중 한 사람이 공중전화박스에 가서 남은 액수를 확인한 후 내 전화카드를 샀다. 나는 그 시각장애우와 같이 매표소로 가 표를 샀는데 마침 우연히도 그 시각장애우와 같은 기차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부산역의 개찰구를 나가는 도중에 그 장애우가 마중나온 듯한 가족과 만나는 모습을 멀리서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 때 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가혹한 세상을 본 듯 했다. 그 시각장애우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의 아픈 눈물을 따뜻하게 닦아줄 수 없는 이 사회가 안타까웠다.
이한창/미국 블룸버그금융회사 근무
나의 슬픔 - 친구는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했다.
먼 거리를 거닐면서도 / 삼층이나 되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 자신을 지탱하고, 보좌하는
목발이 부러져 쓰러져도 / 의지하려 들지 않았다.
"괜찮아, 일어설 수 있어" / 힘겨이 일어나면서도 / 아무렇지 않은 듯 / 웃음을 잃지 않는 친구
태어나면서부터 / 옆사람의 도움 없이는 / 목발 없이는 걷지 못하는 친구지만
언제나 겸손하고 인간적이었다.
그런 나의 친구를 애처로운 눈빛과 / 측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싫다.
그는 떳떳하려 애쓰는데 / 지극히 당당한데 / 왜 그런 눈빛으로 내려다보는지
다리가 없으면 어때 / 팔 하나가 없으면 어때 / 말더듬이 벙어리가 특별하냐고
박종희님이 샛노란 편지지에 이 시를 보낸게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던 지난 봄이었는지, 요즘같이 추운 겨울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1년은 훨씬 더 됐을거라고만 생각됩니다. 당시에는 함께걸음에 이 시를 소개할만한 꼭지가 없어서 그냥 독자편지를 모아놓는 화일에 담아뒀는데 이번에 독자참여란을 신설하면서 다시 꺼내보았습니다. 노란 편지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편지지 끝에 삐삐번호가 적혀 있어서 혹시 아직도 사용하고 계실까해서 호출을 해보았는데 없는 번호라고 하네요. 그래서 박종희 님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그냥 이렇게 독자란에 실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게 되면 함께걸음 편집부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나
바람에도 굳세게 마주하고
비에도 견줄 수 있는 나의 굳건함이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않는 건강한 마음과 몸을 소유하며
욕심없고 결코 화내지 아니하며 조용히 울고 있다
하루에 빵 한 조각과 우유 한 컵에 몸을 의지하며
모든 것을 계산하지 않고
잘 보고 듣고 행하며 이해하며 그것을 결코 잊지 않고 살아간다
동쪽에 내용을 모르는 아이가 있으면 가르치고
서쪽에 늙은 아비가 있으면 희망을 심어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이가 있으면 가서 두려워 말라 하고
북쪽에 소송이나 싸움이 있으면 사소한 일이니 그만 두라 하고
자연의 재해 앞에 눈물 흘리며
모두에게 멍텅구리라 불리며
천희님은 지난해부터 함께걸음 편집부에 자주 찾아오는 단골독자이십니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지체장애우가 된 후 현재는 공공근로를 하고 계신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시와 수필을 써서 함께걸음에 가져오십니다. 천희님이 그 동안 함께걸음에 가져오신 시를 묶으면 아마 시집 한 권은 족히 낼 분량인 것 같습니다. 시의 작품성을 떠나서 생활하면서 느낀점을 시로 풀어내는 천희님의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시인과 같습니다. 그 동안 보내주신 시 중에서 가장 최근에 완성하셨다는 시 ‘나’를 독자란에 실어보았습니다.
이한창/미국 블룸버그금융회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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