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람만이 희망의 불씨다. > 대학생 기자단


21세기, 사람만이 희망의 불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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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장애우는 위기 속의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이 처하는 최대의 위기는 가장 든든한 보호자인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없을 때 닥쳐온다. 형제, 친척이 있다한들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보호역을 대신해 줄 것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마땅한 생계대책도 없고 몸 하나 어디 의탁할 곳 없는 중증장애우들은 그때를 전후로 자신의 삶을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중대한 결단이란 장애우 시설에 입소하던가 무슨무슨 집이라고 명명된 장애우 공동체, 그룹 홈, 혹은 기타의 방법으로 자신을 의탁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성년이 된 후 자신의 여건에서 가장 적절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 그들의 선택은 자신의 발전을 위한 선택이지만 장애우들의 선택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이때부터는 삶의 질을 따진다는 것은 사치스런 생각에 불과하다. 가난해도 양심적인 사람들과 함께 여생을 보람있게 보낼 수 있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자칫 비양심적인 자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나락의 인생을 산다 해도 헤어날 길이 없다.


  얼마 전 오사카에서 열린 한일장애교류대회의 일원으로 일본의 장애우 공동작업소와 그룹 홈을 견학하게 되었다. 일본의 경우 전국적으로 그룹 홈과 공동작업소 설립이 대단히 활성화되어 있다. 오사카의 경우, 건물을 보유하고 공동작업소가 결성되어 있고 운영위원회가 바람직하게 운영이 되면 시에서 매년 1년간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자생의 노력 여하에 따라 시가 지원하는 방법이다. 그룹홈과 공동작업소가 일본 장애우들의 삶의 형태로 굳어진 것은 이러한 제도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일본 장애우들에게 공동체는 우리의 경우처럼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선택만은 아닌 듯하다. 일본의 장애우들은 태아에서부터 유아, 노년기까지 장애우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거의 전반에 있어 국가가 지원을 한다. 기본적으로 장애우 연금 혜택이 중어지고 최대 월 8만엔의 장애우수당을 받으며 언제든지 헬퍼와 의료적인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므로 굳이 공동체를 선택하지 않아도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룹 홈의 새로운 모델, 카논의 집


  그룹홈 카논은 여러 면에서 인상적이었다. 겉보기에는 주택가의 고급빌라와 달라보이지 않았다. 시원하게 트인 풍광좋은 천장, 그 위로부터 원과 직선의 기하학적 구조가 아기자기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간을 따라 햇빛이 은은히 흘러내리는 실내, 현대 감각이 물씬 풍기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오사카의 찌는 듯한 더위를 달래며 여유있게 점심식사를 즐기고 차 한 잔의 여유를 부릴 때까지만 해도, 스탭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 좋은 카페 내지는 레스토랑으로 착각을 할 정도였다. 우울한 기분도 한 순간에 씻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아름다운 건물은 정신지체 장애우 5명과 스탭 2명이 함께 생활하는 그룹 홈이었다.


  카논의 집의 미덕은 드러내지 않음에 있었다. 동네방네 자랑할 만도 한데 카논의 집은 문패를 크게 달지 않았다. 단지 우체부가 겨우 알아볼 만큼의 통상적인 조그마한 문패가 한켠에 붙어있을 뿐이었다.


  카논의 집은 정신지체인들을 고려해서인지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공동체이기는 하지만 개인 프라이버시를 생각해 각자의 방과 생활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주중에는 이곳에서 생활하지만 주말에는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간다.


  물론 식사준비, 청소, 빨래 등의 역할 분담이 되어 있어 헬퍼의 보조를 받아 자기 직분을 수행한다. 건축비가 8천만 엔으로 일본에서도 적지 않은 돈이 투자되었다. 5천만 엔은 지역모금으로 3천만 엔은 바자를 통해 확보했다. 올해부터 신축하는 건물은 시가 9백만 엔을 지원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도 큰 도움이 되었다.


  건물이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스탭은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며 자랑스럽게 대답을 했다. 카논은 79년 결성된 "출발하는 친구모임 (   のなかまの)"주도해서 오사카생야구에 다섯 번째로 설립한 그룹홈(올 6월 5일 개소)으로 장애우들을 위한 집이라면 편리한 생활을 위해 이 정도 시설과 편의시설을 설치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최고의 건축전문가, 디자이너, 인테리어 전문가들이 모여 최고의 집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3층까지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를 설치 한 것도 이들의 연로해졌을 때를 대비한 섬세한 배려였다.


  흔히 장애우 공동체 하면 도시 변두리지역의 철거 위기의 비닐하우스나, 낡은 건물, 햇빛도 잘 들지 않은 어두침침한 비좁은 장소를 연상하기 쉬운데 카논의 집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장애우일수록 더욱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실천하고 있었다. 공동체의 운영 방침에 있어서도 출발하는 모임은 자율과 개인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


  이 모임이 운영하는 또 다른 공동작업소를 들렀을 때 우리의 장애우 공동체를 연상하며 규율도 엄격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스탭은 질문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재차 질문을 하자 공동체 구성원이 날짜별로 식사, 쓰레기 수거 정도의 역할 분담을 하는 외에 별다른 룰은 없다고 했다. 공동체 생활이라는 틀 속에서도 개인의 삶은 분리되어 있었기에 취침이나 기상, 외출, 일상생활에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고 있었다. 외출시에도 귀가나 외박은 각자의 선택사항이었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메마른 사회


  그러나, 외형상으로 부러워할 만한 장애우 복지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이자만 장애우에 대한 국민의식이나 당국의 복지이념에 있어서는 전근대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출발하는 친구모임의 지난해 11월 소식지에 의하면 최근 오사카시가 장애우 지원 플랜을 발표했는데 말로는 장애우 통합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장애우를 지역에서 분리, 격리하는 시설을 더욱 늘리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플랜 책정 단계에서, 당사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아 출발하는 모임을 오사카 시청에 강경한 반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시설위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설득력을 얻을 만큼 일본의 장애우 시설 관리에는 허점이 많아 보였다. 우리가 들렀던 공동작업소에서는 지난해 5월 사망한 근육디스트로피 장애우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는 장애가 심해서 24시간 링겔을 단 채 헬퍼 세명의 도움을 받으며 지냈다. 의사가 그가 이대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다고 지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굳이 공동체 생활을 고집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18년간 요양소에서 생활했었는데 화장실 가는 일을 도와주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옷을 모두 벗긴 채 화장실 문 앞에 앉혀지는 등 참을 수 없는 굴욕을 지속적으로 당해왔다고 한다.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공동작업소 생활을 결단했던 것이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장애우 정책의 이면에는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일본 사회의 건강성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은 메마를 국민의식이다. 코리아볼룬티어협회 회장인 강수봉 씨는 아파라트헤이트보다 더욱 지독한 편견이 한인들에게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사회는 일에만 몰두해 있을 뿐 인간에 대한 배려, 이웃에 대한 배려, 더 나아가 장애우와 같은 약자에 대한 배려에 있어서 극단적으로 메말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볼런티어 운동의 역할을 봉사활동 뿐만 아니라 메마른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단비를 뿌리려는 목적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수봉 씨의 지적은 일본사회에 대한 지적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메말라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도 일본사회에 비해 나을 게 하나도 없다. 21세기의 진정한 경쟁력은 경제력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사고방식이고 21세기의 진정한 희망은 사람이다. 일본 방문 기간동안 일본 자원활동가들의 선한 모습 속에서 자그마한 희망의 불씨를 볼 수 있었듯이 우리 사회의 희망의 불씨는 약자를 배려하며 약자와 함께 하는 수많은 선한 이들이 활활 지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성자이현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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