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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선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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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거의 십 년만에 한 후배를 만났다. 전에 같은 서클에서 함께 활동하던 그이와의 만남이 그렇게 오랜만에 이루어진 것은 그이가 결혼과 함께 남편을 따라 지방에 내려가 살았기 때문이다. 반가운 마음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던 중이었을 것이다.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동안 언니 생각 종종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마다 언니가 했던 이야기 하나가 생각나서 콧등이 찡해지는 거예요. 그때는 배를 잡고 웃으면서 들었는데...."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대체 어떤 이야기가 그토록 오랫동안 그이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것일까.
  그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오래 전 일이었다. 그날 따라 어머니는 소지품들을 정리하고 계셨다. 옆에서 보고 있노라니 그 중에 아버지가 젊어서 끼고 다니시던 짙고 까만 선글라스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집어들고 말했다.
  "엄마,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데 이걸 끼고 다닐까봐요."
  그러자 무심한 얼굴로 손수건을 개던 어머니가 한 말씀 하셨다.
  “그러면 네가 눈까지 먼 줄 알고 더 쳐다 볼 거다.”
  "맞아, 맞아, 그 생각을 못했네....."
  나는 박장대소를 했다.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 이런 정도의 농담은 보통이다. 아마도 가족들이 내가 가진 장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고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친구들 중에는 그런 이해가 가능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 그들 중에는 어느 날 아주 쑥스럽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자신은 내가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늘 잊어버리고 대하는데 그것 때문에 서운했던 적은 없었는지를 물어오곤 했다. 아마 그때도 편한 마음으로 서클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었을 것이다. 모두 다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십 년이 넘도록 그이의 머릿속을 떠돌았다니,
  나는 그날, 그이와의 만남에서 두고두고 내 아픔을 측은히 여겨준 마음씀씀이에 대한 고마움의 뒤켠에, 나와 장애가 그이의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 다니는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누구에게 랄 것도 없는 서운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타인의 기준에서는 한없이 가엾은 존재였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들.
  횡단 보도가 없는 길을 건너기 위해 지하도 계단을 느릿느릿 오르는 내가 힘겹게 보였던지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나에게 던지 친절한(?) 말 한마디가 귓전에 박혔다.
  "택시 타고 다니시우, 색시....."
  나는 택시를 탈 필요가 없었다. 자동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다 지하철을 탈 때가 있다. 그때마다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앉아 있는 비 장애우들의 시선에서 멀어지기 위하여 출구 쪽의 쇠기둥에 기대어 선다.
  물론,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언제나 나는 자리를 양보 받아야 할 특권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앉을 자리를 필요로 하는 그 누군가가 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알아보기 위해 주변을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십년 전 어느 날처럼 아버지의 검은 색 선글라스를 빌려 끼고 외출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글/ 심성은 (빗장을 여는 사람들 운영위원 함께 걸음 편집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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