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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생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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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장애우 운동의 세계적인 흐름은 정상화를 뛰어넘어 자립 생활운동으로 이어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용어인 자립생활운동을 쉽게 말하면 사회에서 당연히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중증장애우가 시설로부터 궁극적으로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홀로 자신의 삶을 선택해 살 수 있게 해주자는 운동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중증장애우에게 잃어버린 삶의 주권을 되찾게 해주자는 게 자립생활운동이며 이 운동은 장애우의 완전한 사회통합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리고 과정이 무척 험난하더라도 장애우 운동이 반드시 쟁취해야 할 중요한 목표로 인식되고 잇습니다.

  생뚱한 얘기지만 역사는 꿈을 꾸는 사람의 것이라고 누군가 말한 것을 상기하고 싶습니다.
  비록 지금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도무지 가능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것이 중증 장애우의 자립생활이지만, 장애연금이 지급되지 않고 있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시설위주의 복지정책 시행과 중증장애우가 제대로 된 직업을 갖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게 중증장애우의 자립생활입니다. 그렇다고 장애우의 완전한 사회 통합과 중증장애우가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장애우 운동의 대전제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만약 우리 나라에서도 선진국처럼 자립생활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실제로 중증장애우의 자립생활이 지역사회에서 가능해진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장애우 삶의 모습이 현실에서 가능해질 것입니다. 장애우 수용시설이 없어지고, 부모는 장애우 자녀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중증장애우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비장애우와 동등한 인격체로서 자신의 삶을 선택해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수천 수만 번의 인식 개선운동 보다 실제로 장애우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 장애우에 대한 사회의 인식 개선도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강조하지만 이런 장애우의 유토피아는 결코 불가능한 게 아닙니다. 비록 우리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예지만 일본만 해도 중증장애우의 자립생활은 매우 구체화돼서 현실에서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중증장애우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것을 우선 순위에 놓고 장애우 복지정책을 시행하는 나라도 여럿 있습니다.

  이렇게 장애우 운동 뿐만 아니라 복지의 세계적인 흐름도 중증장애우의 자립생활인데 우리 나라의 경우 지금 자립생활 애기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뭡니까? 냉정하게 따져보면 그 이유는 첫 번째는 아무래도 중증장애우들의 소득보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다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증장애우들의 소득보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자립생활운동을 시작해본들 결과는 수용시설을 사회로 옮겨 놓은데 불과하기 때문에 지금 자립생활 운동을 시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중증장애우의 자립생활이 가능하려면 소득보장 외에도 체계적인 자원활동 프로그램과 자립생활이 가능하게끔 도와주는 자립생활지원센터의 설립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보조적인 장치 보다 우선하는 것이 소득보장이라는 것은 아무리 장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립생활이 활성화되고 있는 외국에서도 장애 연금과 수당을 통한 소득 보장이 자립생활의 전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에서 중증장애우들이 지역사회에서 사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정부로부터 연금과 수당을 지급 받는 것은 과연 언제나 가능하겠습니까? 아직은 먼 얘기입니다. 그야말로 획기적인 복지정책의 변화가 없는 한 가까운 시일 내에 연금과 수당 지급을 통한 중증 장애우의 자립생활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박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연금과 수당을 통한 소득보장이 어렵다면 중증 장애우에게 직업을 갖게 해주는 것이 소득보장의 한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작을 달리해 보면 연금과 수당을 통한 시혜적인 복지보다는 중증장애우에게 직업을 갖게 해서 자립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는게 자립생활의 목족인 장애우의 완전통합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 나라 현실에서의 자립생활운동은 어떤 식으로든 중증장애우에게 직업을 갖게 해주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게 지름길이 될 수 있지 않나 라는 주장을 이참에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중증장애우에게 직업을 통한 소득보장이 가능하려면 우선적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잇는 직업재활법의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는 게 저희 주장입니다.

  또 다시 직업재활법 애기를 해보면, 이 법이 중증장애우들을 위한 법이라는 사실은 이미 공인된 사실입니다.


  따라서 장애우 운동의 목표가 자립생활이라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중증장애우의 자립생활을 가능하게 하는데 한 걸음 다거서 있는 법이 바로 직업재활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한번 강조 하지만 직업재활법은 현 고용촉진법에서 소외되고 있는 중증장애우에게 직업을 갖게 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비단 중증장애우의 자립생활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직업재활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중증장애우 복지를 우선으로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장애우 중에서는 법과 제도가 없어도 사회통합이 충분히 가능한 장애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아니면 복지와 사회통합이 가능하지 않은 장애우가 있고, 이들을 광의적 개념에서 중증장애우로 분류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법과 제도를 만드는데 있어서 우선적으로 중증장애우 입장에서 사고하고 이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이런 전제하에 현재 직업재활법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혼돈의 한 자락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직업재활법은 중증장애우에게 직업을 갖게 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법입니다. 무엇보다 직업재활법의 정신이 장애우 운동의 세계적인 흐름에 부합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관심을 갖고 자세히 살펴보면 장애우 운동이 활발한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애 연금 확보 운동도, 그리고 자립생활운동도 모두 공통접이 있습니다. 바로 중증장애우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중증장애우의 열악한 현실을 외면하고 장애우 운동을 논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장애우 운동의 세계적인 흐림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중증장애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장애우 운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우선은 직업재활법 제정에 힘을 모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직업재활법 제정 과정에서 핵심은 노동부와 복지부의 밥그릇 싸움이 결코 아닙니다. 장애우 입장에서 보면 중증장애우들이 자립생활은 가능하지 않더라도 생존권을 확보하느냐 못하느냐의 여부가 이 법의 제정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직업재활법이 제정돼 비로소 중증장애우가 직업을 갖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꿈으로 여겨지는 중증장애우의 자립생활도 현실에서 가능해 질 것입니다. 그 희망을 저희는 마지막 까지 버리지 않고 싶습니다.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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