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강한, 너무나도 완강한 > 대학생 기자단


완강한, 너무나도 완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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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푹푹 찌는 초여름 날이었다. 콘크리트 건물인 교사는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5교시는 체육이다. 점심 도시락을 까먹은 녀석들은 체육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더위에 나가 뛸 생각에 혀가 저절로 입 밖으로 빠져 나왔다.
  동구는 늘 그렇듯 점심을 먹고 화장실까지 힘겹게 다녀와 책을 폈다. 원래 체육시간에는 그 주의 주번이 남아서 교실을 지키게 되어 있었지만 동구네 반 주번은 그런 혜택을 한 번도 입지 못했다. 소아마비 장애인인 동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구가 영어책을 펴고 단어를 외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대부분 체육복을 갈아입고 교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교실이 조용해질 무렵 허겁지겁 다른 반에 놀러 갔던 녀석이 들어와 황급히 체육복을 갈아입으며 부러운 눈치로 동구에게 말했다.
  "너는 좋겠다. 이렇게 더운 날 우리는 나가서 뺑이치는데 시원한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고..." 그 날 동구는 과연 장애란 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체육시간을 땡땡이치고 공부한 덕분인지 동구는 성적이 그런 대로 괜찮았다. 자신이 원하는 학과인 의대를 갈 만했다. 동구의 집 부근은 대학이 많은 대학촌이었다.
  그러나 청천벽력은 그때 떨어졌다.
  "장애를 가진 학생은 의대를 못 간단다." 담임 선생님의 이 한 마디가 동구의 운명을 뒤바꿨다.
  "아니 그럼 무슨 과를 가야 하나요?"
  "글쎄? 학교마다 달라서."
  그 날부터 동구는 갈만한 대학마다 찾아다니며 입학 여부를 물었다. 의대는 물 건너 갔다고 쳤다. 그러면 공대는 어떤가. 공대는 기계를 만지면서 실습을 해야 한단다. 이빨도 안 들어갔다. 자연계 순수과학은 어떤가? 실험을 했다 하면 밤을 새면서 서있어야 한단다. 당연히 불가였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공부해온 모든 노력이 수포였다. 미술에 재능이 있던 동구는 미대에라도 가보려고 기웃거렸다. 그곳조차 입학불가였다. 체육시간에 땡땡이친 보람도 없이 동구는 아무 쓸모 없는 이공계 공부만 죽어라 한 셈이 되고 말았다.

  동구는 대학생이 되었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원서를 넣은 문과에 합격한 것이었다. 팔자에도 없는 과에 합격해 생각지도 않은 공부를 해야 하는 운명이 기구했다. 그러나 이도 어디냐는 장애인 특유의 잡초 같은 근성으로 버티기 시작했다. 살아남기 위해 적성이고 취미고 무시하고 어떻게든 배겨내야 했다. 다행히 공부는 할 만했다. 취미도 붙었다. 대학 생활도 그런 대로 행복했다. 그러나 졸업을 할 때가 되자 불안이 엄습했다. 취직을 해서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모 광고회사에 넣었더니 서류심사에 통과되었다. 서류 심사 통과자에 한해 필기시험을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들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단다. 그러나 동구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필기시험에 만점 가까이 맞았음을.

  사회 진출을 미룬 동구는 대학원을 갔다. 그곳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공부도 하면 할수록 재미있었다.
  석사학위를 받자 이번에는 박사과정에 입학해야 했다. 하던 공부를 그만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사과정을 마칠 무렵 드디어 대학원 학생들에게 강의가 한 강좌씩 배당되었다. 지금까지의 학생 입장에서 이제 바야흐로 선생이 되는 순간이었다. 모두들 기대에 부풀었다. 교수님 소리를 듣는 명예로움이 가슴 부풀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용히 동구를 찾아온 조교는 무척 안 되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동구야. 너만 강의 배정이 안 되었다. 너무 섭섭해하지 마라."
그랬다. 한 마디 의사도 물어보지 않았다. 기회를 줘보고 못하니까 다시 강의를 취소한 것도 아니었다. 알아서 그들은 동구에게 강의를 주지 않았다. 대단한 친절이고 배려였다.
그 날부터 동구는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동구는 10년이나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고참 강사가 되었고 박사 학위도 받았다. 책도 여러 권 써서 제법 이름을 아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생활은 여전히 부초 같았다. 공부한 사람의 귀착점인 대학에서 그에게 자리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던 그에게도 어느 날 기회가 왔다. 지방의 모 대학에 딱 그를 위해 만든 것 같은 자리가 났다. 득달같이 서류를 보냈더니 심사에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되어 면접을 했다. 총장은 그를 좋게 봤다. 밝고 명랑한 성격이 충분히 교수로 채용해 쓸 만하다고 여겼다.
인사권을 가진 재단 이사장은 병원을 해서 돈을 번 사람이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인사였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그는 면접에서 자신의 조카도 동구와 같이 지체장애인이라고 했다. 서광이 비쳤다. 이제 긴긴 방황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들려온 소식은 그것이 아니었다. 재단 이사장이 면접을 마친 뒤 학교의 비서실 직원을 호되게 야단쳤다는 거다. 다음과 같다.
  "명색이 의사이고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내가 장애인을 차별해 탈락시켰다고 하면 우리 병원과 학교가 얼마나 평판이 나빠지겠나? 이런 사람은 자네들이 알아서 서류심사에서 탈락시켰어야지. 내가 손써야만 해?"
  완강한, 너무나도 완강한 어조였다고 한다.

 

글/ 고정욱 (소설가, 함께걸음 편집자문위원)

작성자고정욱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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