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박수
본문
4월 화창한 어느 날, 경기도 일산 신도시 한 아파트 단지 옆 공원에서 잔치가 벌여졌다.
봄꽃으로 둘러싸인 잔디밭에서 한 동(棟) 아파트 주민들이 함께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경로 잔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 동에 사는 46세 주부들이 한가지씩 음식을 정성껏 준비했고, 할머니 할아버지 열여섯 분도 화답이나 하듯 빠짐없이 참석했다. 음식을 잔디 위에 펼쳐 놓으니 웬만한 야외 뷔페는 뺨칠 정도로 푸짐했고 메뉴 또한 갖가지였다. 집집마다 주부들이 다른 음식을 솜씨 자랑이라도 할 양 만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너나 가리지 않고 멋을 잔뜩 부렸고, 할머니들은 소녀 시절로 되돌아 간 듯 수다를 떨었다. 할아버지 세 분은 압도적으로 많은 할머니들의 기세에 눌린 듯 한 켠에 모여 점잔을 피웠지만 기회만 있으면 할머니들에게 농이라도 걸려고 기웃거렸다.
이 곳을 지나치는 사람들도 무슨 일이 벌여졌는지 궁금한 양 기웃거리다 한동안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당초 점심 식사를 겸한 잔치를 계획했으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찌나 좋아하든지 어둑어둑해서야 파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는 술도 없었고 흔한 고스톱판도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음식을 즐기며 이웃집 며느리의 음식 솜씨를 칭찬해 주었고, 주부들은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며 덕담을 나눴다. 짓궂은 할아버지가 진한 농을 던지자 할머니들은 맞 받아치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지지난 해 겨울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오른쪽 몸을 거의 못 쓰게 되었던 할아버지 한 분이 참석했다. 그 할아버지는 당시 퇴원하자마자 성치 않은 몸으로, 늘 혼자서 지팡이만을 의지한 채 아침저녁 걷기 운동을 계속했다. 그 할아버지가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2분은 족히 걸렸다. 누군가 열림 단추를 눌러주지 않으면 할아버지는 10초면 가차없이 닫히는 자동문에 끼어 샌드위치 꼴이 되고, 만약 엘리베이터가 움직인다면 크게 다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엘리베이터에 누군가가 있어야만 탄다. 주민들은 한 동안 할아버지의 불편함을 이해하는 듯 했으나 점차 엘리베이터 함께 타기를 꺼렸다. 특히 이 할아버지의 인상이 좋지 못한 데다 뇌졸중으로 언어 기능을 잃어 무슨 말을 하려 할 때면 괴성을 질러대, 어린이들은 더욱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럴수록 할아버지는 어린이들에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고,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은 할아버지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듯 했다.
더 더욱 할아버지의 아침 운동 시간이 종종걸음을 하게 되는 등교와 출근 시간과 겹쳐, 이럴 때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주민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래 씹은 표정을 지었다. 주민들은, "가족들이 할아버지 외출할 때 도와주든지 아니면 휠제어를 이용하도록 해야지"하는 원망을 노골적으로 내보였다.
이런 일이 1년 남짓 지속되었다. 그 분은 지팡이 없이 걷기 시작했다. 간혹 자동문에 끼이는 경우도 있지만 엘리베이터를 10초 안에 타고 내릴 만큼 나아졌다. 그러나 그 분의 표정은 예전과 변함 없었고 주민들도 여전히 엘리베이터에서 그 분과 부딪치지 않았으면 했다.
눈치 탓이었을까, 한 동안 보이지 않던 그 할아버지가 경로 잔치에 참석하였다. 이제는 거의 정상에 가까운 몸으로 의젓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말씨는 약간 어눌했지만 농담도 나누고 간혹 웃었다. 주민들은 그 분의 웃는 표정을 처음 보는 듯 신기해하였다.
그 할아버지는 이 화창한 봄날에 소녀처럼 수다를 떠는 할머니와 함께, 그 동안 눈치를 주었던 주민들이 마련한 갖가지 음식을 먹으며 자신을 되찾았음에도 틀림없다.
이날 주민들은 그 분을 보면서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절실히 깨달았을 성싶다. 그 분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 가족의 도움을 기꺼이 뿌리치고 지팡이만을 의지한 채 망가진 절반의 몸을 되찾았다. 주민들의 눈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요즘 그 분의 표정은 달라졌다. 주민의 도움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보낼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진정, 성한 사람들이 옹졸함이 그 분이 의지와 재활 앞에 부끄럽다.
그렇다. 아무리 건강해도 장애는 언제든 생길 수 있다. 평소 그렇게 생각해도 막상 현실에 부딪치면 장애에 대한 편견의 벽을 쌓기 쉽다.
경로 잔치는 이 아파트 주민들을 한 가족으로 묶었고, 또한 장애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부들이 며칠 뒤 다시 만나, 내킨 장애우 시설을 찾아 새로운 이웃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고 한다. 박수를 보낸다.
글/ 박중환 (언론인, 함께걸음 편집자문위원)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