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장애우가 원하는 대로 해줄 뿐입니다"라는 그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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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에서,
민원실에 들어서니 커다란 홀에 썰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직원이 서너 명 뿐이니 누구한테 물어보나 하고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구석으로 다각 질문을 했다.
"나는 한국에서 온 사람입니다. 우리 아이가 정신지체라는 장애가 있는데 부모의 입장에서 이 나라의 장애복지정책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교육을 마친 후 성인이 되었을 때 취업과 결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개념부터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물었더니 우선 반갑게 악수부터 친절히 청하면서 자신의 가족들이 복지시설에 자원활동을 많이 해서 그 분야는 많이 안다면서 호들갑부터 떤다. 그리고는 장애우 협회 데스크로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안도의 한숨을 돌리면서 진지하고 어설픈 대화가 시작되었다.
우선 우리 나라의 제도를 설명하고 복지선진국인 이곳의 시설을 직접 방문하여 비교해 보고 싶으니 주선을 부탁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애매한 표정으로, "우리 나라에는 한국과 같이 훌륭한 시설이나 복잡한 법규는 별로 없습니다. 있다면 단 하나의 원칙만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하도 의아하여 계속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았더니 "우리는 그냥 장애우가 원하는 대로 해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시설을 종류별로 그 장단점을 세세히 알려고 했던 나의 마음은 이미 허공을 날고 있었다. 여기는 시작부터가 다르구나.
그러면서도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많은 법규정보다는 철저히 지켜지는 단 하나의 원칙 -장애우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공동체 의식만이 필요하다고, 훗날 주변 상황이 바뀌면 좋은 법들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특수학교에서,
아이를 입학시키려고 서툰 영어로 교장선생님의 면담을 신청했다. 곧바로, 교장실로 안내되어 소파에 앉아서 조금 기다리니, 체격이 건장한 교장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인사를 드리고 나서 조심스레 우리아이의 장애를 설명하면서 우선 질문을 던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인데, 우리 아이는 여기 들어오면 어떤 과목을 배울 수 있습니까? 영어와 직업교육을 중점적으로 배우고 싶은데요."
그랬더니, 가만히 나를 응시하면서 피시시 웃는다.
어제 밤새도록 다듬은 영어 발음이 틀렸나? 아니면 너무 무례한 질문을 했나? 낯선 서양인의 표정 읽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당황하고 있는데 , 늦게나마 이해를 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어서서 책상머리로 가 서류를 한 묶음 가져다 내놓는데 그 안에는 백 여가지 과목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 학교는 특별히 지도하는 과목은 없습니다. 다만 학생 본인이 배우고 싶어하고 부모가 원하는 과목을 제시해 주시면 바로 그 과목에 대한 학습지도 계획서를 보내드릴 테니, 그걸 보고 나서 결정해 주시지요."
주입식 교육에 20년 이상 찌들어 온 나로서는 의외의 답변이었다. 처음으로 접해보는 소비자 중심의 교육 현장에서 장애우가 소비자의 대접을 학교에서 받게 되다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가정에서,
그 후 가정에서 조그만 파티가 있었다. 그런데 학부형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고, 선생님과 자원활동자들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학부형을 초대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어떤 것이 올바른 사도(師徒)이며, 학부형의 도리인지 혼란스러웠다. 습관이 되지 않아 어색해하는 우리 가족 옆으로 한국인 학부형이 조용히 다가와서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장애우를 참 잘 대우해 줍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말입니다. 지난번에는 선생님이 우리 아이가 자페 증세가 심해 어머니가 무척 힘드시겠다고 하면서 방과후에 자청하여 아이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서 돌봐주겠다고 해서 말리느라고 혼났어요. 그리고 장애 자녀 때문에 힘들 때 언제라도 연락을 주면 아이를 보살펴 주겠다고 해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장애우에 대한 배려와 함께 그 가족에게 무심코 던진 한 마디의 말이 우리를 감흥시키고, 사회 전체를 대변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아들 재인이는 정신지체아 3급으로 중학교는 특수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96년도에 특수교육진흥법에 의한 특수교육 대상 지정 및 배치신청에 따라 일반 고등학교로 통합교육을 희망하여 대전예고 미술과를 99년도에 졸업한 후 사회적응 및 직업교육을 받기 위해 현재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는 한 특수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자식을 먼 외지로 보내야겠다고 결심하기까지의 마음 고생을 우리 사회의 장애아 부모라면 모두들 이해하리라 믿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의 관공서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도 외국에서 내가 경험한 이러한 일들이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장애우가 소비자가 되어 함께 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글/ 유병우 (정신지체인전국부모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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