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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전쟁에서 이긴다고 정의와 평화가 가능한가?

목숨을 담보로 한 게임 코소보 사태

본문

  내가 기억하고 있는 서양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웃는 모습과 여우 있는 가족나들이 장면이다. 그런데 최근 발칸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식을 전하는 외신은 이와는 정반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오열하고 있는 젊은 어머니들. 주름 깊게 잡힌 노인의 먼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넋 나간 모습. 어머니를 찾는 어린아이의 애절한 울음소리, 그리고 수십 구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가득 담기고 있다.
  이러한 그림은  3월 14일 열린 파리 근교 "랑부예" 회의가 결렬되고 3월24일 미국과 나토가 유고를 공습하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외신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지금 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이 전쟁으로(미국의 위선과 간교한 밀로세비치 때문인지 아닌지) 새로운 천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지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코소보에서 죽음과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1백30만여 명이 넘는 알바니아인들은 대량 난민 상태에 놓여 있다. 한 소식통은 "2백만 명에 이르는 알바니아계 주민들 모두가 탈출해 올 것"이라고 현지 상황을 전하고 있다.
  지금 코소보가 있는 발칸반도는 크로아티아등 게르만계 가톨릭과 세르비아계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정교회, 보스니아를 포함한 남부권의 이슬람교도들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 인종간에, 종교간에 싸움이 그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나토의 유고에 대한 공습은 인도주의를 앞세운 범개르만계의 공격이라는 추측과(나토는 범게르만계가 주도하고 있는 국가로 구성하고 있다) 군수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우파 논리가 서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추측이 공존한다.
  1914년 6월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한 세르비아 청년의 오스트리아ㆍ헝가리 제국 황태자 암살이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곳이 바로 발칸지역이다. 이후 2차 세계대전시 독일 나치에 협력한 크로아티아인이 세르비아인 60만 명을 학살했다. 1980년 티토 사망 이후 유고연방이 무너지면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91년 6월 독립을 선포했고, 사흘 뒤 이들의 독립을 막기 위해 유고연방군 탱크가 두 공화국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경험한 최악의 유혈사태"로 불리는 유고내전이 있었다.
  92년 2월 보스니아가 독립했고, 이후 세르비아계에 의해서 보스니아 내 이슬람교도들과 크로아티아인을 상대로 소위 "민족청소"를 방불케 하는 학살과 강간을 자행했고, 이 과정에 20만 명이 숨졌다. 그리고 지난 2월 세르비아가 알바니아계 주민의 독립투쟁을 막기 위해 2천여명을 살해하면서 코소보 참극은 세계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코소보 사태 원인이 누구에게 있든 나토 공습의 피해자는 "피해자" 라고 여겨지고 있는 알바니아계 난민들이다. 그리고 전쟁발발 이후 세르비아 군경의 코소보 알바니아계에 대한 보복행위는 더욱 강화되고 있고, 난민이 양산되고 있다.
  "부모 찾는 수백 명의 코소보 미아, 고아들"  "인종청소 사망 자 수만 명에 달할 수도"  "코소보인은 살아 있는 혈액은행" "세르비아군,  코소보 주민 10만 학살" "20세기 첫 인종청소는 아르메니아인 학살" 등등 코소보 사태 관련 신문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그리고 "나토공습으로 유고 민간인 17명 사망" "나토, 전쟁 승리 불구 인종청소 저지 실패 시인". 이 소식은 타토 공습 한 달이 훨씬 지난 이후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나라 신문들이 서방 언론을 인용하고 있어 한쪽 입장이 전달되고 있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팔, 다리가 잘려나가는 등의 심한 부상을 당했고, 죽었으며 살아서 국경을 넘은 난민들은 대부분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고 현지에서 취재 중인 종군기자들은 전한다.
  사람의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사실에 이견(異見)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게임이 현재 발칸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유고전역에 떨어진 미사일과 폭탄의 파괴력은 2차 세계대전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원폭과 맞먹는다고 한다.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천하보다 귀한 사람이 마치 전자게임방에서 처럼 온 몸이 찢겨나가고, 죽어가고, 인간성 파괴가 자행되고 있다. 천하를 잃고,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정의와 평화가 가능할 것인가.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모두에게 묻고 싶다.

 

 

글/ 김정열 (편집주간)

작성자김정열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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