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주적" 인권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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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인권법 제정과 인권위원회안은 당정협의 절차까지 마쳤지만 사회인권단체에 의해 거부되면서 제정ㆍ설치가 지연되고 있다. 주체와 절차에서부터 일반 국민들에 대한 무관심이 잔뜩 드러나고 있는 현대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인권단체나 정부가 다시 한 번 그것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민주적으로 인권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강경선 교수의 주장을 들어보자.
국가인권의원회의 설치를 골자로 하는 인권법의 제정은 이미 96년 이래 논의되어 왔던 것이다. 작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서는 국가정책 100대 과제 중에 이것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작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 방문 첫날 인권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인권위원회 설치 및 인권법 제정 방침을 밝혔다. 애당초의 계획에 따르면 인권법은 작년 12월 10일 제정 공포식을 가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인권법은 국회에 상정도 되지 못한 채 표류하기 시작하였다. 99년 들어서 법무부가 준바한 인권법 시안이 당정협의 (3월22일)를 거쳐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3월30일). 이제 인권법은 국회로 넘어가 통과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인권단체들과 시민사회 지도자들은 이 법안을 비판하면서 철회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에 있다. 해방이래 처음 정권교체에 성공한 현 정부가 야심작으로 추진하던 인권법이었다. 그리고 법안의 내용도 상당히 진취적인 것을 많이 담고 있는 인권법이 정작 법제정을 가장 바라고 있는 인권단체들에 의해서 거부된 것은 웬일일까? 나쁜 독재정권이 좋은 법을 만든다고 할 때는 그 법의 제정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겠지만, 비교적 좋은 정부에 의해서, 비교적 좋은 법이 만들어진다면 구태여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보이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독립성 보장 어려운 특수법인 형태의 인권기구 구상
인권법은 제1조와 제2조에서 모든 사람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차원에서 인권에 대한 교육 및 홍보, 인권에 관한 법제와 정책 및 관행의 개선,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와 구제 등을 시행하도록 하였다.
제8조에는 "누구든지 합리적인 이유없이 성별(출산 또는 임신을 포함), 종교, 연령, 장애, 사회적 신분, 인정, 피부색, 출신국가, 출신민족, 출신지역, 출신학교, 용모 등 신체적 조건, 혼인여부, 가족의 상황, 정치적 견해에 기여하여" 차별이나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아니한다. 이 규정은 현행 헌법 제 11조 제 1항의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차별의 영역을 직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진일보한 인권규정이라 할 수 있다.
제 11조 이하에서는 국민인권위원회의 조직과 활동에 관해서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국가인권기구의 명칭을 "국민인권위원회"로 정하고 이것을 독립적인 특수법인으로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바 로 이 점이 많은 인권운동가와 인권단체의 반발을 가져왔다. 그 이유는 인권법의 실행주체인 국가인권기구는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법무부위 안에 따른 특수법인형태는 첫째, 조직의 법적인 독립성 및 운영상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둘째 그 예산의 편성, 집행 및 결산에서 행정기관의 사전 및 사후 감독을 받게됨으로써 제정적 독립성도 저해될 것이며, 셋째 인권위원회의 임면절차에서 독립성이 보장되지 못할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너무나 타당한 말임에 틀림없다.
국무회의 심의를 통과한 정부의 최종안 역시 독립성을 없다. 국민인권위원회는 여전히 법인으로 되어 있으며, 변한 것이 있다면 종전 안에서는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임명하기로 된 인권위원 선출방식을 이제 "국회의장과 대법원장, 대통령이 각 3인씩 추천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법인의 성격을 가지는 한 법무부의 사실상 감독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독립성 보장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서 현정부는 인권법 제정을 통해서 법국민적인 인권의 축제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인권법 제정과정에서 정부와 인권단체들간의 불신만 가중시키는, 다시 말해서 서로가 상처만을 남긴 일로 되어 버린 것이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권법이 법무부의 것도 아니요, 인권단체의 것만도 아니요. 국민의 것이라고 한다면 인권법의 제정을 지체시키는 것은 온당한 일이라 할 수 없다. 물론 잘못된 법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지간히 납득할 만한 정도를 빨리 찾아내어 우선 인권법을 제정, 시행에 옮기고, 그 다음부터는 그것을 실효성있게 운영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법무부의 인권법 제정에 대한 태도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인권법은 사실상 헌법에 준하는 법이나 헌법은 국민의 인권 보장을 위한 기본법이기 때문이다. 인권법에서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국민인권위원회"도 따라서 헌법적 차원의 기구로 평가되어야 한다. 다만 현재 상태에서 인권법 내용보강을 위해서 갑자기 헌법개정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기에 현재는 인권법으로 만족하고 후일, 예를 들면 정부형태 변경을 위한 개헌시기나 혹은 통일헌법의 제정시기에 국민인권위원회를 헌법상의 최상위기구로 자리매김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때가 오면, 이 위원회를 현재의 감사원이나 국가정보원 정도의 지위로 하여 예컨대 "국민인권보호원"으로 격상시켜 규정한다면 가히 우리 나라는 인권국가로서의 위신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국민에게 더 가까이 가는 인권법이 돼야
아무튼 인권법이 이 정도로 준헌법적인 성격의 것이라면 헌법 개정시에 헌법의 공고기간이 필요하듯이 인권법과 관련해서도 국민들에게 충분한 공시기간을 주어야 마땅하다. 공고 기간도 주어짐이 없이 어느 날 문득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제 아무리 인권법 내용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그 법은 반민주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권법은 "민주적으로"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인권법을 제정함에 있어서 오랜동안 밀실작업을 통해서 준비했다는 것은 인권법제정과정에서 가장 큰 실수였다.
현재 인권법의 내용을 아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심지어 대학의 법학교수나 법연구자들도 거의 그것을 모르고 있는 현실이다. 법학교수나 법연구자들은 국민들의 법적 권리와 의무를 보호하는 것을 자신의 책무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들 조차도 모르는 인권법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후일 인권법을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전파하는데 큰 문제점으로 등장할 것이다. 더군다나 일반 사람들은 인권법이 무엇에다 쓰는 것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 있는 것이 현 실정인 것이다.
이렇듯 국민을 의식하지 않는 법무부라면 그들이 아무리 놓은 인권법을 만들려고 해도 훈련되지 않은 비민주적 자세로 인하여 결국 문제의 내용을 노정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대표적으로 표출된 것이 "국민인권위원회"의 조직과 인선 등에서였다. 법무부가 온통 주도하고 감독하는 인권위원이 선출이나 특수법인으로서의 인권위를 만든다는 것을 집요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인권단체들과 첨예한 대립을 초래한 것이라고 본다. 그 후에 대법원장, 국회의장, 대통령이 각각 3인씩 추천하는 형식으로 바뀌었지만 관 중심적인 사고를 탈피하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다.
또한 인권법은 주로 자유권적 기본권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회경제적 권리에 관한 부분이 소홀하게 취급되어 있다. 당연히 인권에 관한 기본법이어야 할 인권법이 크게 손상된 부분이다. 따라서 장애우 차별에 관해서도 구체적이질 못하다. 장애우의 편의시설에의 접근권이나 고용에 있어서의 차별에 대해서는 별도로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보면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라면 인권이 대단히 성숙한 사회라면 인권이 대단히 성숙한 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오랜동안의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길들여져 왔고 또 물질만능적인 사고에 젖어 있기 때문에 사람을 경시하는 풍조가 극도로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기관의 권위주의 사고는 여전하며 경찰이나 정보기관의 반인권적 형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일반 사람들의 형태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성숙되어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없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회경제적 권리보장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선 인신에 관한 자유의 보장이라도 철저히 한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타인의 신체와 영역에 대해 존중할 수 있는 것부터 훈련이 되면 다음에는 내가 가진 물질을 남과 공유해야 한다는 복지사회의 인간형으로 나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런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사회경제적 권리가 국가차원에서부터 재정적 지원이 생존권부분에 우선적으로 배정되어 사회적으로 민간인들의 자발적 부조도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다.
인권법의 제정을 계기로 해서 국민들에게 인권의식을 고취하고 사람을 서로 귀하게 대우할 수 있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만드는 주체와 절차에서부터 일반 국민들에 대한 무관심이 잔뜩 드러났다는 점에서 인권법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만들었다.
인권은 나의 인권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인권을 생각해야 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정부가 독선적으로 인권법 제정에 임하였다면 반성해야 한다. 인권단체와 활동가들도 자신들의 주장으로 인하여 행여나 인권법 제정이 불필요하게 지연되지는 않은지 항상 어려움에 처한 국민의 형편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민주적인" 인권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 강경선 (방송통신대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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