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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친절의 공학을 익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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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용써봐도 한국이 선진국들의 장애우 복지 수준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견해가 많다.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쩌다 독일, 그것도 베를린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던 필자는 말로만 듣던 독일의 장애우 복지망을 실생활에서 체험할  기회도 아울러 누렸었다.
  무엇보다 환상적이었던 것은 이동의 편의에 대한 세심한 배려였다.
  통일 전 서베를린 주정부 복지청은 "텔레부스 시스템(Telebussystem)" 이라고 하는 장애우 및 노약자 교통망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제도의 요점은 공식으로 등록된 해당 수혜자들의 사전 전화 주문에 따라 정해진 일자의 정해진 시간에 장애우나 노인들을 원하는 장소까지 왕복으로 이동할 교통편과 조력자를 복지청이 제공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복지청 산하에 장애우가 탄 휠체어를 최대 2대까지 수용할 수 있게끔 개조한 텔레부스라는 명칭의 백여 대 승합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인당 월 50회를 이용할 구 있는 이 텔레부스는 주로 장애우들의 직장 출퇴근이나 정기적인 시설 및 재화기관 출입에 이용되었다. 그 밖의 다급한 경우를 위해서는 복지청에서 사후 그 대금을 결제해 주는 택시무료승차권이 배정되었다.
  통일 이후 막중한 사회비용으로 이 제도의 유지가 힘들어지자 그 대안으로 베를린 복지청은 텔레부스를 점진적으로 축소해 가면서 주정부 책임 하에 운영되는 모든 시내 버스와 지하철에 장애우가 별다른 보조인력 없이도 접근할 수 있게끔 버스의 승강구를 낮추어 람페를 설치하거나 지하도 입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대대적인 투자계획을 실시하였다. 적어도 초기 투자만으로 보면 통일 후의 어려운 재정여건에도 불구하고 장애우 교통권 보장을 위한 재정지출은 현격하게 증가한 셈이다.
  그러나 이런 독일에서도 장애우를 위해 절대 실시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그것은 국내항공기 이용권의 보장이다. 주로 철도를 중심으로 짜여진 독일의 원거리 교통은 장애우가 기차를 이용할 경우 당사자에 대해서는 반액 할인을, 동반자에 대해서는 전액 무료라는 파격적인 처우를 해준다. 독일 철도 이용비가 한국 국내 항공편과 맞먹는 현실을 아는 분이라면 이러 처우가 얼마나 파격적인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독일 국내 항공편에 대해서는 60세가 훨씬 넘는 고령자를 제외하고는 일체의 특별차우를 해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의 경우 우리 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모두 국내 항공편에서 공식 등록된 장애우와 그 동반자에 대해 항공료 반액할인이란 세계에서 가장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적어도 고국의 하늘을 날아가는 경우 한국 장애우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장 저렴하게 날아가는 셈이다.
  이와 아울러 공항 안에서 장애우를 배려하는 방식도 현격하게 개선되었다. 항공표를 교부받을 때 요청만 하면 탑승구까지 휠체어 서비스가 즉각 제공되고 무엇보다 이 서비스에 투입되는 각 항공사 직원들의 친절함은 전혀 나무랄 점이 없다는 것이 이러 저런 연유로 비교적 자주 항공편을 이용해 본 필자의 경험이다.
  그런데 이렇게 제도적으로나 인간적인 따뜻함의 측면에서 전혀 하자가 없는 휠체어 서비스의 가동방식에 뜻밖의 상황이 벌어져 이용객과 봉사자 양쪽을 당혹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다. 휠체어 서비스에 임하는 항공사 직원들은 앉은 사람이 없을 경우와 있을 경우 끌어야 할 휠체어의 크기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는 점을 거의 염두에 두지 못했다. 휠체어 위에 사람이 앉아 있으면 그것이 접혀 있을 때와는 달리 다리 걸침대가 펼쳐지면서 세로폭이 훨씬 넓어진다. 그리고 의자 부분의 팔걸이에 실제로 사람 팔꿈치가 얹혀지면서 휠체어 자체의 가로폭 역시 늘어난다. 이 얘기는 휠체어에 사람을 태웠을 경우 휠체어를 뒤에서 끄는 사람의 시야가 사람이 없을 경우보다 훨씬 넓어야 함을 뜻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건물의 좁은 모퉁이나 문 사이를 휠체어가 지날 때 휠체어에 탄 사람의 발끝이나 팔꿈치가 딱딱한 모서리나 벽에 사정없이 부딪치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경사가 아래로 향했을 때 휠체어에 탄 사람의 몸무게도 아래로 쏠린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다. 이 경우 휠체어 미는 분은 휠체어의 큰 바퀴를 중심으로 휠체어 앞쪽의 다리 부분을 들어주어야 의자에 앉은 장애우가 대책없이 앞으로 쏠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공항 휠체어 전부에 안전벨트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점은 안전사고 방지라는 관점에서 절대적으로 신경써야 할 사안이다. 그리고 바닥에 약간 낮은 턱이 있을 경우 대부분의 봉사자들이 휠체어를 그냥 밀어 부친다. 당연히 이 턱도 턱이니 만큼 휠체어 앞부분의 작은 바퀴에 저항을 가하게 되고 뒤에서 미는 힘으로 큰 바퀴는 잠시 들려지게 되면서 휠체어에 탄 장애우의 몸무게가 사전 경고 없이 앞으로 왈칵 쏠린다. 다리 힘이 거의 없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판에 이런 돌발 사태에 무신경한 휠체어 운행이 버틸 힘없이 앉아 있던 사람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친절한 마음이 적절하게 표출되는 친절행위의 방식이 사전에 전혀 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휠체어 위에는 단지 <물품>이 아니라 다리나 기타 신체 부위의 버틸 힘이 없는 <인간>이 앉아 있다. 그런데 이 인간도 굳이 물품이라고 한다면 이 물품은 <귀중품>이다. 귀중품이 수송이 일반 물품과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운송 도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것은 운송자나 탁송자 모두 바라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물품 운송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여러 가지 포장이 고안되고 그 기술이 훈련되듯이 친절의 기술도 사전에 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왕 세계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종류의 친절을 제도화시킨 김에 그 제도를 운용하는 친절의 기술도 충분히 습득하여 그 진심의 취지나 실제의 운용 모두를 빛낼 일이다.

 

 

글/ 홍윤기 (편집자문위원, 동국대 철학과 교수)

작성자홍윤기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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