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도 시대의 복지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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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대선은 장애우 참정권 보장에 대한 문제 의식이 널리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기억 해둘 만한 선거였다. 장애우 참정권보장은 이번 선거기간 내내 주요 쟁점중의 하나로 떠올라 각 당 후보들은 점자 명함을 제작하거나 수화통역사를 활용해 장애우들의 표심을 잡는데 골몰했다. 언론매체들도 앞다투어 장애우의 투표를 보장해 줄 것을 역설했다.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를 비롯한 여러 장애우단체도 참정권 확보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이러한 보람도 없이 장애우의 선거 환경은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 중앙선관위는 투표소를 가급적 1층에 설치할 것을 지방자치단체에 요청했지만 선거업무 폭증등을 이유로 지난해 4.26 총선 때와 거의 같은 투표소를 사용했다. 전국 1만6천4백7개 투표소중 2, 3층이나 지하 1층에 설치된 투표소가 18%인 2천9백65개에 달했다. 1층 투표소의 현관과 출입문에 임시경사로를 설치하기로 한 약속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1층이 아닌 투표소마다 배치하기로 했던 투표도우미도 배치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 장애우 부재자토표도 홍보가 부족해 이를 활용한 장애우가 10%미만이다.
그나마 시각장애우용 투표안내문과 투표보조용구등 시각장애우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대책도 정작 시각장애우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점자형 투표보조용구의 재질이 종이여서 시각장애우들은 투표용지와 혼동되어 제대로 기표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세계 12/19)
이번 참정권 확보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보다도 TV토론회에 수화를 삽입한 것이었다. 이마저도 방송국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장애우들이 이뤄내야할 벽이 여전히 두터움을 실감하게 했다. 너무도 당연한 권리를 위해 장애우들이 방송국을 항의방문해 몸싸움을 벌여야 했고, 방송국들은 결국 수화 밑 자막방영 가처분신청이라는 법정 대결을 거친 후 대선 막바지에야 가까스로 양보(?)를 해 수화를 삽입했던 것이다.
방송국 관계자는 "일부 시청자들에게 방해가 되는 측면이 있지만 법원의 결정 취지를 받아들여 수화통역을 내보내기로 했다."며 마치 커다란 배려라도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주요방송 프로그램 수화 삽입이 김영삼 대통령의 대표적인 공약 사항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신한국당 발간 김영삼 대통령 공약집 참조)
자막방송에 대해서도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어 하기 힘들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으나, 간단한 조작만으로 자막방송이 가능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무궁화 통신위성을 이용하면 쉽게 자막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장애우들의 힘겨운 참정권 확보 노력의 배경에는 좀체로 변하지 않는 우리사회의 권위주의의 한 그림자가 깔려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된다.
김영삼 대통령의 복지 성적표
15대 대선이 또 다시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고 있는 동안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막바지에 지독한 레임덕에 빠져들고 있다. 임기를 아직도 몇 달 남겨놓은 상태에서 주요국정을 김대중 당선자가 도맡아 처리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 초반에 거침없는 개혁정책으로 국민의 지지와 국제적인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모든 것이 말잔치로 끝나버리고 김영삼 정부가 엉뚱한 곳으로 키를 몰아가고 있는 동안 대한민국호는 파산의 길로 표류하고 있었다.
복지정책에 있어서 김영삼 정부는 겉으로는 대단한 의욕을 보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책임한 말잔치에 불과했다. 한때 경제발전으로 유보했던 복지정책이 비로소 후진성을 면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으나 전혀 언행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영삼정부는 1993년 출범초 신경제5개년계획, 21세기위원회(1994), 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국민복지 기본 구상(1995) 등 매년 혁신적인 사회복지개혁안을 내놓았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이 1995년 3월 11일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열린 사회개발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내놓은 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국민복지 기본 구상(1995년 3월 23일)은 한국인의 삶의 질을 2000년초에 세계 15위 이내로, 2010년에는 11위로 끌어올려 선진국을 달성한다는 의욕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의 정책들은 말뿐이었다. 마치 정부와 재정경제원이 사전에 담합이라도 한 듯이 정부가 복지개혁안을 내놓으면 재정경제원은 기다리고 있던 듯이 매번 유보를 하거나 전면백지화를 시켜버렸다. 김영삼 정부의 핵심이었던 국민복지 기본구상조차도 그해 12월 유보됨으로써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웠던 삶의 질 정책은 없던 얘기로 되어버렸다.
이러한 말장난은 최근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월 11일 정부가 발표한 장애인복지 5개년 계획이 그것이다.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 이 계획은 재정경제원과의 협의과정에서 전면보류(문화 12/11)되어 사업계획만을 확정한 채 시행여부가 불투명하게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김영삼 정부는 복지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나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96년 12월 경실련이 내놓은 김영삼 대통령 공약이행 평가 보고서는 현정권의 복지정책은 화려한 공약과 달리 축소 지향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 근거로 총예산 중 복지예산의 비중을 들고 있다. 김영삼 정부의 복지예산은 92년 6.4%, 93년 6.4%, 94년 6.0%, 95년 5.8%로 통상재정증가율에도 미치지 못할 뿐아니라 총예산 중 복지예산의 비중은 오히려 매년 감소추세를 보였던 것이다.
결국 사회복지 후진국에서의 탈피가 기대되었던 김영삼 정부 5년간 사회복지는 오히려 후퇴일로를 걸었고, 국가경제마저 침몰해 당분간 사회복지는 암흑시대를 겪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복지 공약
12월 19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기자회견에서 차별 일소와 장애우복지를 거론했다. 대통령 당선 후 첫 일성에서 장애우복지를 거론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로서 어려운 시기이지만 복지에 대한 일말의 히망을 갖게 한다. 김 당선자는 모든 차별을 일소하고 모든 국가구성원의 권익을 공정하게 보장함으로써 바르고 능력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 것을 천명하는 한편 일할 능력과 의욕이 있는 노인과 장애우들에게는 고용의 기회 보장에 역점을 두고 능력이 없거나 자활능력이 없는 노인이나 장애우, 극빈자들에겐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중 차기정부는 복지정책의 근간을 복지예산을 대폭 확충하여 국민복지 기본선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선진화하는 데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복지예산을 매년 30% 이상 증액하고 1·2급 중증 중복장애우에게 지급되는 생계보조수당을 4만5천원에서 10만원으로 현실화하고 경로연금제를 확대해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5만원의 기초적인 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노인연금, 장애우 생계보조수당 인상은 12대 중점 공약에도 포함되어있다.
김대중 차기정부의 복지 청사진은 사회개발 5개년 계획에 담겨질 예정이다. 이 계획은 복지행정을 강화하여 현대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며 21세기 복지사회를 앞당기기 위한 것으로 앞으로 설치될 "사회개발평가기획단"이 주도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복지정책의 실현 여부를 심의평가하기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국민복지기본선추진위원회"를 설치할 예정이다. 이 위원회에서는 앞으로 복지기본선을 규정하게 된다.
세부적인 공약을 살펴보면 우선 장애우 고용 확대를 위해 의무 고용 대상사업장 범위를 확대하고 장애인고용촉진법, 고령자고용촉진법 등 고용관련 법 집행을 강화하고 적용범위의 확대를 약속하고 있다. 장애우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도 김대중 당선자의 공약의 핵심이다.
편의시설과 관련된 공약으로는 사회참여 보장을 위해 편의시설 설치를 대폭 확대하고 장애우 시설평가제를 실시하며 장애우의 정보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해 장애우 통신기기개발·장애우용 컴퓨터 보급을 포함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노약자와 장애우를 위해 특별 교통수단을 제공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소위 교통복지 향상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문화시설의 장애우 편의시설 의무화와 관광복지진흥법 제정과 관광요금 할인제도, 관광여가시설에 대한 편의시설 설치 지원, 대중교통 수단 등 장애우 관광객에 대한 서비스 여건 개선을 통해 장애우, 노인 등 소외계층에 대한 관광기회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김대중 정부는 여성장애우 정책에도 중점을 둘 전망이다. 여성장애우에 필요한 보조기구·의료기구 및 생활용품을 개발·지원하고 여성장애우의 실질적인 자립과 재활능력 배양책으로 직업재활프로그램을 강화할 예정이다. 또한 여성장애우와 직접 관련된 정책을 마련할 때 의사결정에 여성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노인정책은 경로연금제 확대 실시, 노인보건법 제정, 노인용 보장구와 한방의료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 확대, 시·도별로 치매관리종합센터를 설립, 정년연장, 재교육·재훈련 체계 강화를 통한 고령자 고용확대, 노인을 위한 주간·단기보호 시설 설치 등이 주요 메뉴이다.
물론 국가 경제가 도탄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위에 열거한 공약들이 제대로 지켜지리라고 믿지는 않는다. 장애우들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내는 국가의 경제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을 때 그에 걸맞는 복지환경을 돌려줘야 한다는 추상같은 명제를 포함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복지정의라는 측면에서 나라가 어려울수록 소외계층을 우선적으로 보듬는 국가의 도리를 저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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