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흰지팡이와 약시인
본문
시각장애우란 말은 두 부류의 장애우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 하나는 맹인이고 다른 하나는 약시인이다. 전문적으로는 맹인이란 어떤 보장구를 사용해도 묵자를 판독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하고 약시인이란 확대독서기(폐쇄회로 TV : CCTV)나 돋보기 등을 사용하여 묵자를 판독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맹인이란 커다란 물체를 식별할 수 없거나 빛조차 감지할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하고, 약시인이란 빛은 감지할 수 있고 커다란 물체도 희미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맹인의 경우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원인으로 시력을 잃은 것처럼 약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약시인의 경우는 어려서는 정상적인 시력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과 어려서부터 비정상적으로 약한 시력을 가지고 생활해온 사람들로 구분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약시인들은, 특수학교에서 분리교육을 받아온 맹인들과는 달리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은 경험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남아있는 시력을 활용하여 생활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고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집착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더욱이 대부분의 약시인들은 난치병 환자이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돌팔이들과 자칭 신의 은사를 받은 파렴치한들의 마수에 걸려들기 쉽다.
수년 전 유행했던 러시아 안과치료관광이 좋은 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받은 권위적인 안과의사들로부터 친절한 설명 한 마디 들어보지 못한 난치병 환자들이 소문만 믿고, 러시아로 가서, "달러"에 굶주린 공산주의 국가 안과의사들에게 엄청난 수술비를 내고 귀빈대접을 받고 와서는 소문을 더 부풀려 놓자, 불치의 안과질환자들이 벌떼처럼 러시아로 몰려간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러시아행으로 아무 효과도 보지 못했지만 이들 중 일부는 쿠바에까지 건너가 수술을 받고 오기도 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국내 한 병원에서도 이들이 받고 돌아온 효과없는 측두동맥 수술을 과대선전해서 시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병의 치료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고, 또한 대부분 정년이 되어 은퇴한 사람들이어서 소위 재활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면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젊은 사람들은 어떤가?
이들은 대부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안마사교육을 받고 안마사로 취업하거나 자신이 직접 안마원을 운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도 남자의 경우에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어서 취업 후 이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사정이고 보니,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난 약시인들은 외국으로 가거나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고 칩거하는 것이 보통이고, 자신이 일을 해야 하는 처지의 약시인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이 이들은 약한 시력이나마 그 시력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장애우라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약시인들은 외모만으로는 시각 장애우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기를 꺼려한다. (엄밀히 말하면 대다수의 비장애우들이 약시와 맹인을 구별하지 못하고 약시인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어쨌든 거의 모든 약시인들은 맹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흰지팡이(cane)를 사용하지 않는다. 필자도 흰지팡이를 가방 속에 넣고 다니지만 아주 절박한 경우가 아니면 꺼내 사용하지 않는다.(필자는 야맹증이 심하기 때문에 혼자서 밤길을 가야 할 경우와 외국여행을 할 경우에 사용한다.)
그러면 약시인들은 맹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재활이 되지 않아서", 다시 말하면 자신이 장애우임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흰지팡이를 사용하길 꺼리는 것일까? 혹자는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편견이 만연한 사회를 생각해 보자. 시각장애우라는 것을 드러내면 직장에서 밀려나게 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소외당하거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동정만을 받게 된다. 그러니 누가 스스로 시각장애우라고 밝히겠는가. 그냥 숨기고 살지.(사실은 숨겨지지도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뇌성마비장애우들에 대한 일반의 이해는 정말 한심한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여러 가지 매스컴을 통한 홍보로 많이 나아졌다. 약시인들도 자신들처럼 조금밖에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그래서 합승을 하려고 선 택시를 타다가 앞자리에 앉은 사람을 깔고 앉는 바람에 "미친 놈" 취급을 당하지 않고, 버스요금 투입구를 못 찾아 동전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그냥 "미친 놈"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뒤통수에 느끼면서도 모른 척해야 하는 곤욕을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필자는 흰 지팡이를 당당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약시들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쓰기 것은 아니다. 맹인들의 말처럼 우리 약시들은 정말 재활의 첫걸음도 떼어놓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 시각장애우임을 인정하고 세상의 편견과 마주서야 할 것이다. 많은 장애우들이 휠체어를 타고, 또 목발을 짚고 당당히 살아가는 동안 약시인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해보자.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늘 외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복잡한 거리를 더듬거리며 다니는 것이 현명한 짓인가 아니면 당당하게 흰 지팡이를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인가 깊이 생각해보자. 자신의 장애를 숨기고 소극적으로 살아가지 말고 세상에 정면으로 도전하자.
글/ 이영호 (편집자문위원,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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