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따돌림의 최대 피해자는 장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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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따돌림의 최대 피해자는 장애우
아프리카 야생공원의 임팔라 사슴 떼는 정기적으로 한 마리를 일부러 왕따로 따돌려 쇠약하게 한다고 한다. 이 사슴은 사자의 먹이가 되고 사자는 사나흘간은 배가 고프지 않고 사슴들은 이 사나흘간 사자 곁에 머물러 하이에나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난다. 이는 일종의 짐승사회의 생존 전략으로서 자연섭리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사회에서 짐승 사회에서나 벌어질 법한 집단따돌림이란 희생제를 벌이고 있다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한국교육개발원 발표에 따르면 전국의 57개 초중고 학생 6천8백93명을 대상으로 1년간에 걸쳐 집단따돌림 피해를 조사한 결과 24.2%의 학생이 피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은 잘난척하거나 튀는 행동을 보이는 등 스스로 자초하는 경우도 많지만 장애우 이거나 병약하거나 지능이 떨어지고 힘이 약하고 혹은 생활보호대상자와 같은 사회약자가 주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요즘 들어 언론과 방송에서 집단따돌림을 소재로 토론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학생들은 예외없이 장애우, 병약자 등을 왕따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증언하고 있다. 모 중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통계에 의하면 응답자의 28%가 장애학우도 왕따로 삼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장애학우를 왕따로 삼는 이유는 "남과 같이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이 당하니까 어쩔 수 없이"(32%) "분위기에 휩쓸려 "(14%)라는 대답이 주류를 이뤘다. 반면 "자신이 그 장애학우라면"이란 질문에는 자살하겠다는 반응이 28%나 되어 이중 심리를 보이고 있다.
이미 97년 6월(당시는 "왕따"대신"이지메"란 용어가 쓰였다.) 한 일간지는 집단 따돌림 현상에 대해 일반학생이 아닌 장애우, 병약자, 생활보호대상자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학생들을 골라 이루어지고 그 방법도 단순한 따돌림 차원을 넘어서 집단폭력을 상습적으로 휘두르는 등 흉포화 양상을 띠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95년 당시 고교 1학년이었던 선천성 심장질환자 장모(17)군은 당시 급우 5명에게 라이터불로 손지지기등 무려 50여 가지에 이르는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참다못한 어머니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학원폭력 근절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낸 뒤 아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6/26 문화)사실 장애우에 대한 집단 따돌림은 더 오래 전부터 있었다. 84년 4월 당시 지체장애 중학생이었던 남구현군의 자살사건이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친구들의 놀림과 교사의 질책에 참다못해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는 "저 세상엔 불구라고 눌리는 사람 없겠지..." 라는 말로 시작하는 유언을 남겼다.
집단따돌림이 유발하는 정신장애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집단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의 경우 학교생활 부적응 등으로 정신장애에 걸리는 것은 물론 심지어 자살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집단 따돌림 문제는 세대를 막론하고 존재해왔지만 예전에는 청년기의 객기나 애교쯤으로 넘길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집단따돌림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학업만을 강요하는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해소책을 찾을 길 없는 청소년들의 집단히스테리에서 찾을 수 있다. 억압에 대한 스트레스가 약자를 향해 터진 것이 바로 집단따돌림이다.
특히 장애학생에 대한 집단따돌림은 그들의 삶의 의욕을 근본부터 꺾어버리는 일이다. 장애우에 대한 왕따 현상은 학교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장애우 시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태도도 왕따이고, 고용에서의 차별도 다름 아닌 왕따이다. 결국 집단따돌림은 학생들만의 탓이 아닌 우리 사호 전체에 만연한 병리현상의 다른 이름이다.
뒤늦게 집단따돌림을 주도한 학생을 처벌한다. 피해학생을 집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한다 해서 해결책이 백출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탁상공론만을 거듭할 것이 아니라 당장 수업 시간을 대폭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장애우를 비롯한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프로그램을 교육에 적극 도입해야 한다. 그것만이 집단따돌림의 치유책이다.
퍼쿠션의 퍼스트레이디 이블린 글레나
무대를 가득 채운 각양각색의 화려한 타악기, 그 속에서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이고 화려하고 발랄한 음악성, 아름다움과 카리스마로 대중들을 매혹시키는 맨발의 연주자. 퍼쿠션(모든 종류의 타악기)의 퍼스트레이디 이블린 글레니가 3월 16일 한국에서 첫 공연을 갖는다.
이블린 글레니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블린 글레니 홈페이지의 갤러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블린이 한국전통 타악기 장고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멈칫하게 된다. 이블린이 어떻게 장고를 갖게 되었을까? BBC는 연전에 한국음악기행 "대장정"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는데 이는 이블린 글레니의 한국 음악문화 체험보고서로 책자로도 발간되었다. 이때 이블린 글레니가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전통 타악기로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과 협연을 했다.
국제청각장애인협회 회장이기도 한 이블린 글레니의 이번 내한 공연의 부제는 "장애아동을 위한 자선 콘서트"로 수익금 전액이 한국의 청각장애아동을 비롯한 장애아동을 위해 기탁된다. 이런저런 계기로 그녀는 한국과 더욱 친근한 음악인이 될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이블린 글레니는 청각장애우다. 그런데 이블린은 12세 때 청각장애를 입었다는 사실 외에 언론에 자신의 장애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한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다른 자료에 의하면 이블린의 청각장애는 8세 이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되어있다. 이 자료에는 이블린이 자신의 청각장애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나의 청각장애는 무언가 독특하고 그래서 그것을 보물로 여긴다. 그리고 나는 이 상태에서 떠나기를 소원하지 않는다. 나는 나로서 머무르고 싶다. 종종 그것은 나를 도울 때도 있다. 청각의 손상을 보상하기 위해 자주 맨발로 연주한다."
이블린은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 대단히 긍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블린은 언론들이 자신의 음악보다는 온통 청각장애에만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달가와하지 않는다. 이블린은 언젠가 청각장애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재치 있는 답변으로 그들을 당황하게 한 적이 있다.
"청각장애에 대해 알고 싶다면 청력을 연구하는 학자를 인터뷰하세요. 제 전문은 음악이랍니다." 이블린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청각장애를 미디어가 미화해서 다루려할 때 거부하곤 했다. 그 동안 이블린에 대해 다룬 사설과 평론이 수천 건을 헤아리지만 90퍼센트 이상이 이블린 자신이 음악가가 된 것이 불가능한 일로 여겨질 만큼 부정확했던 것이다.
언론의 이러한 태도가 성가스러웠던지 남편 그레그 멜캉기(이블린의 매니저로서 개인 스튜디오인 헤리티지 스튜디오에서 음악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씨는 "이블린의 상황을 명확하게 밝히고 몇 가지 신화적인 오해를 불식하려는" 의도로 이블린의 홈페이지(www.evelyn.co.ur)에 아예 "hearing"이라는 에세이를 게재하고 (멜캉기 대필, 글레니 수정) 인터뷰 요청자와 가자들이 지속적으로 기사에 이 에세이를 인용하고 근저를 이루는 메시지를 계속 간직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의 말까지 덧붙이고 있다.
이 에세이는 이블린 글레니의 청각장애정도, 소리(진동)를 듣는 방법과 어떤 과정을 거쳐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청각장애우 음악활동의 가능성을 연 이블린
이블린은 자신이 얘기하고 싶은 것(음악언어를 통한)에 의해 청중들이 고양되고 기쁨에 넘쳐 콘서트홀을 떠나기를 소망한다. 청중들이 청각장애를 가진 뮤지션이 어떻게 퍼쿠션을 연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단지 신기하게만 느낀다면 이블린은 음악인으로서 실해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문이나 콘서트 프로모터에 정보를 제공할 때 이블린의 청각장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이블린이 심한 청각장애를 갖고 있지만 전적으로는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블린은 보통 청력과 비교하여 느끼는 음량의 합계가 대단히 적다. 특히 콘서트장에서의 음향에 대한 그녀의 선별력은 대단히 뛰어나다. 이는 각고의 훈련으로 가능했다.
이블린은 어린 시절, 학교에서 퍼크션을 가르쳤던 론 포브스 선생의 도움으로 진동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단련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론이 팀파니(많은 진동을 발생시키는 악기다) 악보를 연주하는 동안 이블린은 교실벽에 손을 대고 서 있었다. 마침내 이블린은 몸에 연상시킨 악보로 다듬어지지 않은 음감을 구별하는 방법을 능숙하게 익혀 청력을 잃기 전에 가졌던 완벽한 음감으로 소리를 느꼈다. 낮은 소리는 주로 다리와 발로 느끼고, 높은 소리는 얼굴의 특정부위, 목과 가슴으로 느낀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이블린은 세계 최고의 타악기 연주자로 대성했다. 역사상 이블린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는 퍼쿠션 연주자는 없었다. 이블린은 클래식과 대중음악 양쪽을 아울러 최고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블린은 늘 진보적인 태도로 솔로 퍼쿠션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블린의 여정은 청각장애우도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실제로 청각장애우이 작곡과 연주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이블린의 공연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청각장애우와 음악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도입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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