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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 모두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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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화로 부르는 애국가, 눈감고 점자로 읽는 선언문, 목발을 짚은 사회자, 자기를 소개하는 데도 앉아서 손만  번쩍 드는 휠체어의 단체장,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출범식 광경이 찬비를 맞은 것처럼 내게 스며들었다. 눈에 안보이면 잊고 사는 것인지 "그들"은 항상 그렇게 살아왔는데도 내겐 새삼스럽게 감동적인 사건이었다.
  마흔 여섯에 쓰러져 33년을 반신불수로 사시다 지난 가을 세상을 뜨신 우리 어머니는 사실 장애우셨다. 한쪽 다리를 절며 오른 팔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전혀 기능을 못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옷맵시라도 낫게 한다고 고마워하시며 살다 가셨다.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막내까지, 키워야할 7남매 때문에 일어서려고 몸부림을 치시더니 나중엔 한 손으로 새벽 도시락을 싸서 학교 보내고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하셨다.
  어머니는 남 앞에 나서길 부끄러워 하셨고, 날 시집보낼 때는 괜히 시어른들께 미안해했다. 우리 막내까지 시집보내놓고 오빠 따라 미국 가서도 창피하다고 문밖 출입 안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오빠는 온갖 데를 다 모시고 다녔다.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다녀보면 얼마나 대접받는 것인 줄 아느냐고 설득하면서.
  미국서 몇 달만에 돌아오셔서 어머니는 꽃놀이 단풍놀이도 곧잘 떠나셨다. 미국이 우리 어머니를 새롭게 만들었다.
  나는 최근에야 미국 가서 우리 어머니가 당당해진 이유를 목격할 수 있었다. 촌놈 구경가기 좋은 디즈니랜드에서 재미있는 놀이기구는 어김없이 줄이 늘어서 있다. 땡볕에서 혀를 빼물 정도로 지쳐 가는데 휠체어 한 대 몰고 온 가족이 모두 너무도 당당히 맨 앞으로 가서 놀이기구를 탄다. 모든 휠체어가 다 나왔는지 왜 그리 새치기(?)가 많은지.
  오하이오주의 클리브랜드에서 뇌성마비 장애우를 위한 "우드 센터"(Deep Wood center)"를 방문했다. 시설이 호화롭거나 멋있는 건물이 아니었지만 인간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제도와 사례를 목격했다.
  마침 식사시간이었기에 그들의 밥 먹는 모습을 보니 어떤 사람은 이미 음식이 접시에 담긴 테이블에 앉고, 어떤 사람들은 테이블 가운데에 놓인 음식을 각자 접시에 떠먹게 되어 있기도 하고, 누구는 포도주스, 누구는 기름기 적은 우유, 누구는 고기, 누구는 생선, 지능정도와 건강상태에 따라 밥 먹는 방식과 메뉴가 달랐다.
  이미 밥을 먹고 소파에 앉아 식곤증을 느끼는 17세의 타미는 그 곳에 온 지 11년이나 되었다.
  음식만 보면 먹어버려 냉장고를 열쇠로 잠그고 있을 정도인데 3백파운드까지 살이 쪄 기름기 제거를 위한 배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칼로리 조정식사로 지금은 1백40파운드였다.
  한때 엄마가 데려가 살고 있었으나 다시 살이 쪄 우드 센터의 원장은 엄마를 상대로 재판을 했고 그래서 다시 그곳으로 데려왔다. 우리에겐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달려들어 직원들을 물어뜯는 일이 잦지만 팔 보호대 착용이 원생들에게 위화감을 준다며 다른 사람들이 양보하며 살고 있었다.
  하루 1달러도 못 벌지만 사람이라는 것을 사회 구성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자고 만든 자활센터에는 70여명의 뇌성마비 장애우들이 일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보조자가 70명이었다. 그 중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는데 한 명의 장애우를 태우기 위해 시내버스가 현관 앞까지 들어왔고 운전기사가 직접 내려와 휠체어를 버스에 싣고 완벽하게 하고서 떠나는 모습을 나는 사진기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 숙소, 치료실, 자활센터까지 갖춘 이곳은 그 지역의 장애아 학부모들의 집단 운동으로 카운티에서 만든 공공기관이었다. 게으른 비장애우들에게는 냉정하지만 어쩔 수 없는 장애우들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이 모습이 바로 "선진"이었다.
  백화점 스낵코너에서 본 광경이다. 목도 거의 가누지 못해 고정시키다 시피 한 특수 휠체어를 탄 열 두어 살 된 뇌성마비 여자아이에게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이는 눈물겨운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휴지로 아이의 입 주변을 연신 닦아주고 코와 입에 범벅이 되는 아이스크림을 엄마는 숟가락으로 모아 입으로 넣어 주려고 애를 썼다. 반쯤은 옷으로 흘러 엉망이 되었어도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부모들은 제대로 제 손으로 넘기지 못하는 딸아이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아이는 흔들거리는 제 손으로 아이스크림을 잡고 있었다. 어찌 보면 흉칙해  보이겠지만 사람들은 그들에게 네프킨을 조달해주며 함께 격려해주고 있었다.
  난 갑자기 우리의 어느 지방도시에서 뇌성마비 장애우들이 백화점 구경 가는 것이 소원이라며, 그들을 데리고 백화점 에 가줄 자원봉사자가 되어달라고 여성단체에 요청했다던 얘기가 떠올라 우울해졌다. 장애우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국민의 수준이나 환영하지 않는 백화점도 문제지만 당당하지 못한 부모들도 함께 반성해야 한다.
  우리 나라 장애우들도 조금만 움직일 수 있다면 구들장 짊어지기를 거부하고 이제 밖으로 나와야 하다. 얼마나 불편한 세상인지를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고 양심을 후벼파야 한다. 건강한 사람의 힘을 덜어주는 에스컬레이터는 설치해도 장애우를 위한 엘리베이터는 안 만드는 지하철 공사 사장을 휠체어에 앉혀 시승을 권유해 봐야 한다.
  장애우들이여, 차비만 있으면 모두 밖으로 나와라.
  당신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 모두에게 각인 시켜야 한다. 



글/ 최영희 (내일신문사장)

작성자최영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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