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취업난 장애우 벼랑으로 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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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보청문회를 가리켜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그 코미디의 주연은 두말할 나위 없이 김현철씨이고 조연은 그의 측근들이다. 씨알도 안 먹히는 주문만을 반복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엑스트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때를 맞춘 듯한 정태수씨의 장애놀음도 코미디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혼탁한 와중에도 장애인의 날 행사는 화려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그 화려한 그림자 뒤에는 장애우의 잇달은 자살이 있었고, 비리로 한동안 물의를 빚었던 울산의 효정원에서는 또 다시 정신지체인 원생이 온몸에 멍이 든 채 사망했다. 그런가 하면 장애우 동생을 돌본다는 것을 빌미로 누나에게 접근해 동거까지 하고 물려받은 유산을 가로챈 인면수심의 청년도 있었다.
장애우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의 님비현상도 여전하다. 광진구 구의동 구남학교 건설부지의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특수학교가 설립되면 장애아동과 이웃의 일반 초등학교 어린이들 사이에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엉뚱한 이유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다른 한 편에서는 장애우 문제를 같이 고민하는 시민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근래 생겨난 모임을 간단히 손으로 꼽아도 10여 개는 짚인다. 그런데 한겨레21은 경실련이 이런 순수한 시민단체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경실련은 상근간사 200여 명, 회원 2만 5천명, 97년 예산 26억 원이라는 위상을 바탕으로 정치에서 통일, 환경, 장애우문제 등 광범위한 영역으로 발을 넓혀가고 있으나 순수한 시민운동의 의미를 상실한 영향력 획득을 위한 세력확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같은 장애우날의 풍경
"김 대통령 장애인 복지정책 신경제 반영", "장애인 사회활동 지원에 최선-민자당 장애인의 날 성명", "장애인들, 이젠 전철 무료", "장애인에 따뜻한 사랑을-장애인의 날". "장애인 의무 고용 말뿐 이행률 22%". "논산 정신병원 화재 철문 잠겨 장애인 모두 참사"(93년), "김 대통령, 장애 스스로 극복케 밑거름을", 장애인 ***씨 인간승리, 전신마비 딛고 창작활동, "기업 장애인 고용 소극적", "30대 장애인 음독자살, 기능사자격 불구 취직 안돼", "한강에 소년 변사체-장애아 추정"(94년).
‘김대통령, 장애인교육·취업 획기적확대’, ‘노동부, 장애인 고용출연 기금 5배 이상 증액’, ‘함께사는 사회 활짝, 장애인의 날’, ‘장애인 고용 정부가 외면’, ‘기업들 장애인고용기피 여전, 의무율이행 10%’, ‘신체장애인 부모 비관 중학생 딸 자살’(95년).
"김 대통령, 장애인 먼저 운동 동참하자", "이 총리, 장애인 의무고용 단계 확대", "총리실 산하 국민복지 추진위 신설, 삶의 질 높이기 총괄 실행", "불치병 절망 딛고 화가 변신 전신마비 ***씨의 인간승리", "장애인 고용 여전히 외면-고용률 0.43%", "20대 농아자 목매 자살". "소아마비 애인 상습 폭행 30대 구속", "2시간만에 탄 택시 끝내 내려라"(96년).
위에 열거한 사실들은 93년부터 96년까지 장애인의 날을 즈음한 각 일간지들의 주요기사이다.
장애인의 날을 즈음해서 해마다 비슷한 현상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간지들은 각종 미사어구로 장애인의 날 행사를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고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장애우 복지에 대한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면서 무언가 특별한 메시지를 남기고 했다. 그러나 그 막간을 살펴보면 변변히 이루어진 것이 없다. 장애우 고용률 저조, 편의시설 열악 등의 기사는 단골 메뉴이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 시간만 주어 삼키고 있는 것이다.
마당만 마련하면 뭐하나?
올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특별한 날을 맞이하여 다채로운 기념행사들이 열리고 장애우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웃지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국민일보는 한마음 대축제가 열린 성수동 뚝섬공원의 열악한 편의시설을 고발하고 있다.
한 장애우는 화장실을 찾아 1백m가 넘는 거리를 휠체어를 밀어갔지만 높은 턱을 넘지 못해 도와줄 사람을 20여 분 동안이나 기다려야 했다. 화장실에는 장애우 편의시설은커녕 좌변기조차도 없고 20도의 경사마저 있어 장애우가 도저히 쓸 수 없는 시설이었다. 모래가 튀는 운동장도 휠체어를 밀며 달리기에는 위험천만했다. 장애우들은 모처럼의 야외나들이에 기분을 망쳐야 했다.
4월 17일에는 고용촉진공단 주최로 장애우취업박람회가 열렸다. 그러나 장애우들은 행사장에 찾아간 순간부터 벽에 부딪쳐야 했다. 장애우주차장은 일반차량으로 만원이어서 행사장 이용하려 하자 주차관리인은 VIP전용이라며 장애우 차량의 주차를 허용하지 않았다. 장애우들은 하는 수 없이 수백m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휠체어를 다시 밀고 행사장에 들어가야 했다. (4/18 국민) 주객이 전도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애우를 위한 마당을 마련해 주는 것은 좋지만 편의를 보장하는 아무 기반도 없이 마당 만들기에만 급급한 전시성 행사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단순히 외출하는 것, 행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라는 것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총체적 취업난 장애우 벼랑으로 몰아
한편 고건 국무총리는 제17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들이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떳떳이 생활할 수 있도록 정부는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매년 반복되는 정부의 이런 막연한 약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장애우의 자살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40대 시각장애우 박병철씨가 취업을 못하는 것을 비관 목숨을 끊은 데 이어 한달 만에 서울법대 출신의 20대 장애우 김현욱씨가 또다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취직에 실패한 저에게 남은 선택은 죽음밖에 없었습니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능력이 있어도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장애우의 엄연한 현실이다.(4/18한국)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실업·취업난은 물론 장애우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에 대해 대량 실업까지도 부를 가능성이 높을 만큼 심각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어수봉 원장은 최근 고용불안형 경제성장으로 불안정하고 임금이 낮은 일자리가 대량 창출돼 "워킹푸어"(Working poor-취업하고 있으나 가난한 노동자)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어 80년대 미국에서 나타났던 노동의 막다른 골목현상(Dead end of labor)이 국내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이러한 노동구조의 열악성이 장애우 취업난에도 한몫하고 있다. 전남, 광주 지역의 경우 장애우의 대량 실업사태가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광주의 경우 지난 1/4분기 취업한 장애우 62명 가운데 31명이 중소기업의 인력감축 계획에 따라 해고조치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장애우고용 모범업체로 꼽히던 회사까지 장애우직원을 집단 해고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4/19 광주일보) 장애우 취업난은 4월 17일 고용촉진공단이 실시한 장애우취업박람회에서도 드러났다. 첫날에만 1천여 명의 장애우가 몰려들었으나 높은 벽을 절실하게 실감해야 했다. 62개 참여업체들은 저마다 애당초 제시하지 않았던 장애등급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일부업체들은 마지못해 참석한 듯한 태도마저 보여 기대감을 갖고 몰려들었던 장애우들은 쓸쓸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4/18 국민)
장애우 고객을 잡아라
거듭되는 불황으로 기업들이 장애우 고용을 꺼려하는 것과는 반대로 고객으로서의 장애우는 기업들로부터 새롭게 환영을 받고 있다. 기업들이 장애우를 고객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다.
장애우를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는 두드러지는 하나의 흐름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눈에 보일 정도로 두드러지고 있다.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점자도입이다. 몇 년 전 일본에서 점자 캔맥주를 내놓아 대히트를 친 것에서 착안, OB 맥주는 병뚜껑에 점자표시를 한 제품을 내놓아 인기를 끌고 있고 모닝글로리는 점자를 새긴 우편엽서 10여 종을 선보였다.
신기술 개발회사인 테크노 티는 위생용 캔뚜껑을 개발하면서 독자 개발한 특수인쇄술로 뚜껑에 일반인쇄와 함께 점자인쇄를 손쉽게 하는 방법을 개발해내 앞으로 점자채용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3/18 한국경제)
해태전자 인켈사업본부는 CD 1장에 최대 54시간까지 음성정보를 수록할 수 있는 CD 오디오북을 개발하면서 16페이지 분량의 점자로 된 사용설명서를 제작했다. 이 제품은 수십 권의 책을 CD 한 장에 담아듣는 기기로서 시각 장애우에게 기기라는 점에서 점자 사용안내서 제작은 적절하다.(4/17 조선)
한편 삼성 그룹은 장애우를 겨냥한 제품개발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이미지를 굳혀나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얼마 전에는 청각장애우를 겨냥한 어퀄라이저 폰을 선보였고 최근에 삼성전자 멀티미디어 연구소는 점자보다 다섯 배 빠르게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각장애우용 문서낭독기를 개발 무상공급하기로 하였다. (3/24 국민)
삼성생명은 시각장애우들이 보험계약 내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많은 불편을 겪어왔던 것에 착안해 국내 최초로 점자식 보험증권을 개발해 5월에 선보일 예정이다. 점자식 보험증권이란 보험상품에 가입한 고객이 받는 계약증서에 보험계약 내용과 상품의 종류, 계약유지를 위해 알아야할 사항 등을 점자로 표기한 것이다. (4/12 경향)
대기업들, 그룹차원에서 장애우 고객 끌어안기 전략
삼성은 더 나아가 장애우를 겨냥한 제품, 디자인을 그룹홍보의 전략으로까지 발전시키고 있다.
삼성계열의 종합광고 대행사인 제일 기획은 최근 "디자인 경쟁력을 높여 불황을 돌파하자"는 주제로 광고주를 대상으로 하는 디자인 제안전을 열어 기업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이 기획전에서는 장애우를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도 소개되었다. 제일기획은 삼성그룹의 고객용 달력에 점자표시를 같이 넣고 사외보 및 각종 간행물은 물론 TV리모콘, 핸드폰 등에도 점자를 넣을 것을 제안했다.
핸드폰에 점자를 같이 넣는데 드는 비용은 개당 30원에 불과하고 이 정도 비용 투자로 7만 명의 장애우를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사는 사회 구현"이라는 삼성그룹의 이념에도 부합돼 그룹 이미지 제고효과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제일기획의 제안은 즉시 삼성그룹으로부터 전격 채택되었다. (3/28 매일 경제)
한편 LG전선은 고무소재의 시각장애우 유도타일을 제품으로 내놓고 본격 판매를 시작했다. 회사관계자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됨으로써 장애우용 유도타일의 사용이 확산될 것으로 보고 천연고무와 합성고무를 배합한 유도타일을 내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LG는 장애우 복지의 흐름을 제품 개발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사례로 주목된다. (3/26 한국 경제)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장애우를 고객으로 끌어안기 위한 시도가 새로운 흐름으로 정착되고 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아직은 점자 채택 정도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외국의 경우 장애우나 노인, 어린이의 편리를 생각하는 제품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고 휠체어만 해도 유형별, 용도별로 수백 종에 달하고 심지어는 비치용 휠체어까지 개발되어 있어 우리와는 큰 차이가 있다.
아직 초보단계이기는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장애우 고객 끌어안기 추세에 발맞추어 장애우가 쓰기 편리한 제품 개발이나 장애우 재활용품 개발에 대해 정부의 대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장애우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법안 시행에 따라 편의시설 개발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책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항공사도 장애우 서비스 경쟁
장애우나 노인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항공사의 경쟁도 치열하다.
대한항공은 최근 보잉사가 개발한 최첨단 여객기 B777기 기종을 도입했다. 이 기종의 특징은 1등석과 비즈니스석에 각각 전화기와 노트북PC를 부착하고 있고 장애우 전용 화장실을 별도로 채택하고 있다. 본래 이 항공기는 국제선 전용기지만 최근 항공사간의 경쟁으로 국내선에도 투입하고 있다. 장애우나 노인에게는 넓은 비즈니스석을 제공한다. (3/22 한국경제)
아시아나 항공은 기존 비즈니스 클래스의 좌석 22석을 떼어 내고 좌석간격이 25cm나 더 늘어나 의자 12개를 설치해 노약자, 장애우 등에게 중점 서비스하기로 했다. (3/13 일간스포츠)
특히 아시아나 항공은 최근 전 승무원을 대상으로 시각장애우 고객에 대한 서비스와 에티켓에 대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이와 함께 항공기 비상대피 요령 등을 알리는 시각장애우 안전수칙을 3개국어로 된 점자책자로 제작해 장애인의 날부터 비치할 예정이다. (한국경제)
이러한 서비스 이전에 본래 항공사마다 티켓리스(Ticketless) 서비스라는 게 있다. 이 서비스를 신청하면 항공사 예약창구에 전화로 신용카드 번호를 알려주는 것만으로 예약이 가능하고 장애우에 특별 좌석 배정, 젖먹이 동반시 넓은 좌석과 요람, 기내분유, 젖병 제공, 출국 시 유모차 대여, 첫 해외여행, 어린이승객에 탑승수속, 좌석 배정, 입국서류, 수하물 수령, 입국안내, 현지 교통편 대행 등 광범위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3/25 한국)
그러나 실제 항공을 이용하는 장애우 승객들은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승무원들이 장애우 고객에 대한 수칙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해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들어오던 한 장애우는 위급한 경우를 당했다. 김포공항에는 장애우승객을 위한 저상형 버스가 준비되어 있어 마땅히 장애우승객에게 제공되어야 했다. 그러나 제공된 차는 일반 공항버스여서 자원활동자들이 휠체어를 들어올려야 했다. 그리고 운전사는 장애우 승객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난폭하게 운전을 했다. 그 바람에 그는 휠체어를 탄 채로 바닥에 엎어질 위기를 당해야 했다. 버스에 함께 탑승한 대한항공의 직원들도 이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국내 항공사의 서비스가 외국 항공사에 비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세심한 부분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장애우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 개발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장애우 고객의 특성이나 에티켓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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