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정권을 빼앗긴 장애우도 과연 국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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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정권 확보를 위한 장애우의 투쟁
우리나라에 있어서 선거는 빛좋은 개살구나 다름없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사람들은 선거를 기다렸다. 질곡에 찬 세월을 선거를 통해 뒤바꾸리라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용기가 없었던 대다수의 국민들은 야욕에 가득 찬 권력자에게 빈번히 손을 들어주어 민주개혁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부정선거에 의해 선거권을 도둑맞은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이나마의 참정권에서마저도 장애우는 외면되었다. 참정권을 갖고 있음에도 투표소를 가로막고 있는 계단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2층과 지하실 등에 설치된 투표소의 비율이 95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시 21%, 96년 총선시 18%에 달해 일부지역에서는 장애우들이 아예 선거에 참석도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말뿐인 참정권이었다. 민주운동을 주창하는 이들조차도 집단적 참정권 박탈이라는 이 기막힌 현실에 관심조차 없었다.
현재 장애우 유권자는 2백만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우에 따라 정권도 바꿀 수 있는 만만치 않은 숫자이지만 많은 장애우들은 자신의 권익을 대변해줄 후보를 제대로 선택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장애우들의 투표소 접근권에 대한 주장이 나온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지난 92년 14대 대선을 앞두고 한 장애우단체가 투표소를 건물 1층에 마련하고 편의시설을 설치할 것을 요구한 것이 그 최초의 움직임이었다.(동아 92/11/11)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제안 정도의 수준에 지나지 않았고 사회적으로도 그다지 주목을 얻지 못했다.
장애우 투표소 요구가 본격화한 것은 4대 지방선거가 도입되고부터였다. 95년 6.27지방선거를 앞두고 장애우계의 움직임은 좀더 강력하고 구체적인 것이었다.
특히 부산장애인총연합회는 처음으로 장애우부재자투표에 대한 문제를 들고 나와 중앙선관위로부터 지체장애우들이 부재자 신고를 통해 거소투표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한겨레 96/6/20)
이때까지만 해도 "거동을 할 수 없는 신체장애자"가 부재자투표자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규정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해석상의 논란이 많았고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사문화된 규정이었다. (95/6/3 한겨레)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때도 투표소를 옮기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지난해 4월11일 15대 총선을 계기로 장애우투표소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이전까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던 언론들은 논평을 통해 장애우의 투표소 접근보상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장애우들의 움직임에도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강원도 지역과 부산 지역의 장애우들은 투표소 보장이 안될 경우 투표불참운동 등 항의시위를 벌이겠다는 압력을 넣었다. 특히 지체장애인협회 강원도지부는 강력한 대응으로 수용불가를 주장하던 선관위측을 설득해 일부 투표소를 1층으로 옮기기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선관위는 점자투표 안내문 1만6천매를 배포하고 선거당일 장애우를 돕기 위해 투표보조자를 배치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않았던 장애우들도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참정권을 막고서야 어찌 민주국가라 할 수 있는가?
올해는 일찌감치 장애우 투표소보장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벌써부터 언론은 장애우에게 투표소 편의를 보장해야 한다는 논평을 앞다투어 싣고 있다. 특히 한겨레신문은 "4열린공동체/ 장애우투표"라는 주제를 특집을 다루기도 했다.(9/27) 선관위와 각 당 관계자들도 자발적으로 장애우 투표소보장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많다. 96년 9월 보건복지부 조사결과 주요 투표소로 활용될 각급 학교의 편이시설 설치율이 불과 32.45에 불과하다. 실제로 지난 7월24일 보궐선거가 치러진 포항북 선거구 투표소의 경우 37%가 1층 이외의 장소에 설치된 바 있다.(7/25 한겨레)
거소투표도 절차가 복잡하고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아 유명무실하다. 96년 총선당시 장애우거소투표율은 13.9%(4만4천여명)에 불과했다. 각 당마다 점자 홍보물과 후보 토론회의 수화통역과 자막도입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이것도 말뿐이다. 현행 선거법상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상 선거 홍보물의 규격과 면 수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점자홍보물 제작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지난해 총선에서 신한국당 모 의원은 점자홍보물을 만들려 했으나 중앙선관위측으로부터 별도 홍보물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텔레비전 수화통역 자막방송도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우·노인 등을 위한 투표보장에 관한 내용을 선거법에 포함시키는 일이지만 이에 대한 거론은 정치권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영국의 경우 83년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계단이나 무턱에 착탈식 경사로 설치에서부터 장애우용 화장실, 심지어는 기표소의 조명까지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거소투표나 투표장 밖 투표를 권장하기보다는 장애우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국민된 권리를 보장한다.
이것이 바로 선진국인 것이다. 참정권을 가로막고서야 민주국가라고 할 수 없다. 장애우의 참정권 보장에 있어서는 어떠한 핑계도 있을 수 없다. 지금껏 장애우는 실체만 국민일 뿐 국민이 아니었다. 이제서야 장애우의 참정권이 거론된다는 것은 국체를 가진 나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드라마의 장애우 붐, 방송3사 약속에 의한 것
MBC에서 연말에 방영할 특집 장애우드라마를 집필 중인 한 방송작가를 얼마 전 만났다.
그녀는 보다 정확한 묘사를 위해 많은 장애우를 만났다고 한다. 장애우단체만도 20여 곳을 다녔다고 한다.
이전의 장애우드라마들이 상상만으로 장애우를 무책임하게 다뤄 물의를 일으킨 적이 많았던 것에 비추어 그 작가의 태도는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최근 들어 드라마에 장애우 배역을 포함시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몇 년간의 두드러진 현상이지만 최근에는 방송 개편시 등장하는 드라마마다 어김없이 장애우 배역이 등장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방송작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방송 3사간에 드라마에 장애우배역을 포함시키자는 약속이 있었다고 했다.
장애우가 등장한 최근 드라마를 대강 꼽아보면 최근에 종영한 MBC "내가 사는 이유" (청각장애, 정신지체), 간이역 (청각장애), SBS "달팽이" (정신지체), 미아리 1번지 (지체장애) KBS의 "그대 나를 부를 때" (청각장애) 등이 있고 단막극으로는 "교수와 안마사" (시각장애), "꽃을 피는 남자들" (지체장애)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내가 사는 이유", "달팽이"는 수목드라마, 미아리일번지는 일일 연속극으로 황금 시간대에 배치되어 있고 배역도 이정재, 김지수, 박성민 등 톱스타를 대거 기용하고 있어 장애우를 양념 정도로 끼워 넣었던 과거 드라마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자원활동을 장려하는 사회분위기에 따라 드라마에 관련 내용과 장면이 삽입되기도 한다.
KBS의 "파랑새는 있다"에는 등장인물들이 은평천사원에서 자원활동하는 장면이 소개되기도 했고, "미아리 1번지"에서는 춘자라는 인물이 재활원을 방문, 무료로 머리를 깎아주는 선행으로 취재요청을 받기도 한다. KBS의 일일 시트콤 "마주보며 사랑하며"에서는 장애우주차장에 불법주차했다가 망신을 당하는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최근 드라마의 경향을 보면 드라마가 사회를 반영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그밖에 최근에 개봉한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 "할렐루야", "창" 등에도 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세계의 장애우들
국내에서 차기 대통령선거를 둘러싸고 폭로, 비방전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장애를 갖고 있는 정객들이 차기지도자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이 콜 총리는 지난 10월15일 전당대회에서 차기 총리 후보로 하반신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볼프강 쇼이블레(57)를 지목했다.
쇼이블레는 휠체어장애우지만 기민기사연합의 원내총무직을 6년째 맡고 있다. 그의 장애는 90년 10월12일 콜 총리의 유세지원을 나섰다가 정신병자가 쏜 총에 맞은 결과였다. 쇼이블레는 독일 통일의 주역으로서 통일을 기획했고 동독의 귄터 그라우제 정무장관과 10개월 동안 수많은 난제를 해결하고 서독을 대표해 역사적 조약에 서명한 당사자이다.
콜 총리는 자신을 돕다 장애를 입은 쇼이블레에 특별한 연민을 갖고 있고 국민들은 그에게 커다란 신임을 갖고 있다. 독일인들은 장애를 입지 않았다면 벌써 총리가 되었을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10/17 동아)
시각장애우인 도미니카공화국이 조아퀸발라구에르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30년의 7년 독재자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불출마를 선언 정계에서 은퇴한 그는 91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차기 대통령에 재당선이 유력하다. 그의 정계복귀는 도미니카의 경제난 때문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민들은70, 80년대 개발독재의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독재자를 선호하고 있다.(10/2)
그밖에 팔레스타인의 급진 회교단체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이스라엘과의 투쟁에 앞장섰던 아흐메드 야신(61)은 시각장애와 사지마비 상태에서 지난 10월1일 석방되었다. 야신은 89년 팔레스타인 협력자들의 살해를 교사한 협의로 종신형을 받고 이스라엘 군교도소에 수감생활을 해왔다.(10/1 조선)
이들 장애우들이 애국자, 독재자, 과격테러주의자로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지도자로서 역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대목은 흥미롭기만 하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장애우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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