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도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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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
도끼질
정치하는 사람에게는 나라도 국민도 없는지, 아무것에도 눈돌리지 않고 멱살잡이로 으르렁거리며 진흙탕을 뒹굴어 하루해를 보낸다. 영락없이 개싸움이다. 딱하다 못해 울화통이 터지는 게 이 개싸움에 죽어나는 것이 나 한 사람만이 아닌 이 나라 사람들 모두인 까닭이다.
뭐니뭐니 해도 우리에게는 기댈 언덕이 있어야 한 때라도 쉴 수가 있겠는데 이 진흙탕 개싸움판에 어디서 앉을 자리조차 찾기를 바랄까.
여당이라면 나라의 살림을 도맡은 큰 어른이 아닌가. 이런 터에 막가파라는 소리를 들으니, 그래 막가보아라 어느 지경까지 가겠느냐? 살림은 그만 두고라도 우리에겐 내일도 없다는 식으로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마구 질러대며 길길이 날뛰니 저게 미친놈이지 제 얼이라도 제대로 박힌 놈의 짓이랴. 보자보자 하니 하도 어처구니가 없기가 그 소리 누구한테 하는 소린지. 저런 소리가 몰고 올 북새통에서 짓밟힐 사람은 또 누구일지도 모르겠다는, 장님 깨밭 터는 꼴이 되는 판국이 빤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를 맡아 다스려 나가려면 나름의 끼가 있어야 할 거다. 밖으로는 무릇 내 것을 지켜 나가려는 끼, 안으로는 짐짓 겨레붙이를 다사롭게 감싸려는 끼, 그래서 온 누리가 사랑으로 어울려 일하려는 맘 한가지로 하루해를 맞이하는 살아 풋풋한 끼를 갖추도록 애쓰는 데가 있어야지, 너 죽고 나 죽자는 말 되느냐?
저자에 되는 장사가 없고 땅을 고르되 기둥 하나 제대로 세우는 일터가 없다. 땀흘려 만들어 봐야 품삯을 건지기도 어렵다. 오늘 환율은 960원으로 치솟았고, 종합주가지수는 500포인트 밑까지 곤두박질쳤다. 못난 놈의 본보기였던 노태우 때의 600∼650고개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저 싸움판에서는 어느 나라 뒷골목의 뜬소문이냐고 콧방귀만 뀌니 딱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다. 이럴 작시면 누가 큰 삽을 들고 와서 이 나라를 송두리째 떠간다고 하더라도 외눈 하나 깜짝할까. 이래서는 안된다. 이래서는 나라가 망한다.
예수가 하신 말씀도 있다. "거짓 예언자들은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나타나지마는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있다.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으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게 마련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행위를 보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자 우리 모두 도끼를 들자. 일제 식민지. 이승만 독재. 박정희 군벌. 전두환·노태우의 정치군인판으로 이어져 온 가시나무, 엉겅퀴, 자랄대로 자란 저 반 민중의 숲정이로 가서 도끼를 휘두르자, 우리 겨레붙이가 누대로 살아왔고 또 우리 아들딸들이 지켜 갈이 땅이 아니더냐?
기회는 흔하지 않다. 몇 번을 들었던 도끼였지만 우리는 늘 포도나무 밑둥을 찍는 헛손질만 해 왔다. 눈이 흐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은 눈을 부릅뜨고 어느 것이 가시나무인지, 어느 것이 포도나무인지부터를 똑똑히 가려 보아두자. 그리하여 찍어야 할 나무밑둥을 가려낸 뒤 손바닥에 침을 바르고 도끼자루 단단히 쥐어서 헛손질 않도록 다짐하여 도끼를 휘두르자.
제발 이번만은 헛손질 말자. 어느 숲이든 나무는 늘 서로 엉켜있기 마련이니까.
글/ 박용수 (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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