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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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특수교육진흥법" 개정관련 공청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토론을 마치고 나오는데 장애우관련 방송국 리포터가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장애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마이크를 들이대는 그 리포터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자 그 리포터는 녹음기를 끄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슨 대답이 그래요"라고 말하며 다시 한 번 대답해 줄 것을 요구했다. 녹음기가 다시 돌아가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같은 대답이 반복되자 그 리포터는 약간 화가 난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왜 그렇게 대답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 보세요. 사람들 중에는 나처럼 나이 젊어서 머리가 허연 사람도 있고, 또 이런저런 이유로 팔 다리가 불편한 사람도 있고 그런 거 아닙니까. 나는 그래서 장애우에 대해서도 유별나게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주 잠깐 만남이었지만 그 리포터와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우리 사회가 장애우에 대해 얼마나 "유별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장애우에 대한 이런 "유별난" 생각들이 잘은 모르지만 장애우에게는 전혀 쓸데없는 기우일 뿐 아니라 은연중에 "유별난 차별"을 조장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지난번 임시국회를 준비하면서 자료 요청을 하던 중에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장애우가 얼마나 있는지 조사해 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다. 며칠 뒤 교육부에서 자료를 보내왔는데 나는 그 자료를 살펴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일반학교 특수학급은 장애아와 일반 아동의 사회통합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교육적 통합 공간임에도 전국 특수학급 아동 중 장애인수첩을 발급받은 등록장애우가 너무도 적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취학 중인 학생은 2만5천4백여 명, 그러나 이중 등록장애우는 1천6백7명에 불과해 전체의 10퍼센트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등록장애우의 수가 왜 이렇게 적으냐는 물음에 교육부 관계자는 "요즘, 특수교육과 관련해 장애인수첩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장애인수첩은 교육적 차원의 것이 아니라 의료적, 치료적 차원의 분류"라는 친절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알 수 없는 점만 더 쌓여갔다.
지난해 교육부에서 제출한 자료를 보면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 될 학령기의 장애아들은 22만여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특수학교에 취학 중인 2만여 명과 특수학급의 3만여 명을 더하더라도 5만여 명에 불과하다. 그럼 나머지 아이들은 어디서 어떤 교육을 어떻게 받고 있다는 것인가.
많은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증언하듯 일반학교 특수학급 학생의 대부분은 소위 우리가 말하는 장애아가 아니라 단순히 학습 능력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럴 경우 교육부가 내세우고 있는 장애아의 취학율은 훨씬 더 떨어지게 되는데 문제는 교육부가 이들 특수학급의 부분적인 학습부진아까지를 특수교육의 대상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왔느냐는 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교육부 통계는 장애아 특수교육의 현실을 왜곡하는 잘못된 자료가 되기 때문이며 잘못된 자료를 기초로 세우게 되는 정책 역시 잘못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이 경우는 또 다른 면에서 장애우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하자.
지난 5월 신동아에 당시 안병영 교육부 장관이 사교육비 문제 해결을 위해 학부모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의 글이 실린 적이 있다.
안 장관은 당시 이 글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떠오른 사교육비 증가가 학부모들의 이기주의적 자녀 교육관에 있다고 책임을 부모들에게 넘기면서 어려울 때마다 장애우학교와 시설을 찾아 그들의 어려운 모습을 보면서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이 얼마나 축복을 받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는 식의 말을 했던 것이다.
물론, 장관의 이 말은 장애우를 비하하거나 무시하기 위해 한 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생각은 많은 사람이 장애우를 만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갖게 되는 인간적인(?) 생각이라고도 여겨진다.
하지만 이 말이 아무리 개인적인 느낌을 표현한 말이라고 해도 한 나라의 교육정책을 책임지는 사람의 입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그런 말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문제는 장관의 의도와는 다르게 장애우들의 반발을 사게 되고 급기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식으로 거론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다.
그저 다른 문제를 얘기하다 잠시 쉬어 가는 말로 했던 장애우들에 대한 장관의 말 한마디가 수많은 장애우들과 그 가족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슴아픈 상처로 남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가 진정, 장애우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날이야말로 장애우와 그리고 언젠가 장애우가 될지도 모를 우리 모두가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 아닐까.
글/ 김한길 (국회의원, 소설가, 국민회의 교육특별위원회위원장, 국회예산결산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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