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비슷한" 생활조건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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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
"비슷한" 생활조건을 만들자
민주주의라는 것은 사고방식과 제도가 합해진 것인데 독특한 유래와 발전과정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은 사고방식(why of thinking)이다. 그런데 우리는 민주주의 사고방식은 배우지 아니하고 껍데기인 제도만 싹둑 잘라 들려왔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 사고방식과는 배치되는 고정관념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첫째는 강자가 제일이고 가진 자가 제일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가지지 못한 자나 약한 자는 항상 괄시받고 천대받아 왔던 것이다.
둘째는 나와 너를 차별하는 차별심리이다. 가난한 사람, 못 배운 사람, 그리고 병들고 장애우가 된 사람은 아예 상대하지도 않았다.
셋째는 이기적 씨족주의이다. 우리 가족, 집안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극단적 이기주의 말이다.
이 세 가지 사고방식은 대수롭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민주주의의 실현이나 선진국 진입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인 것이다. 우리는 사회를 병들게 하고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무서운 병균을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품고 키우며 살아가는데 딱한 일은 자신들은 이런 병균의 해독을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외국 사람들에겐 이와 같은 심성들이 없었을까? 물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심성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고치고 바꾸며 개선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것들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른바 사회사상, 사회개혁 및 인도주의 등 사상과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운동이 약 이백여 년이나 끌었고 그 오랜 세월의 많은 사상이나 주의·주장을 간추려서 두 용어로 요약한다면 한 용어는 "착취의 폐절"이고 다른 한 용어는 "공동체 사회의 건설"이다. 이 두 용어는 민주주의의 목적이며 정부가 추구해야 할 제일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착취의 폐절"이라는 말은 일체의 부정과 부패를 근절시킨다는 말이다. 불로소득도 죄악시하며 공짜는 물론 분에 넘치는 선물도 부정한 재물로 보는 것이다. 흔히 선진국 공직자들이 식사 초대에 참석은 하지만 식사는 하지 않는다는 등의 청렴도 바로 이와 같은 사상에서 연유되는 것이다.
두 번째 용어인 "공동체 사회"의 건설은 오늘날 우리들이 실로 빈말로 쓰고 있는 과시용어로 잘 쓰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든다는 뜻이다. 우리는 뜻 없이 그냥 쓰는 공동체 사회라는 말은 선진국의 상징이자 복지국가의 조건이며 그리고 정치의 궁극적 목표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이 말을 말로만 쓰는 사교용어로 쓰고 있지만 선진국에서는 이 용어가 구체적으로 실천되고 있으며 국민 누구나가 그러한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또한 믿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 글의 서두에서 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나쁜 생각 중에서 첫 번째의 약육강식 즉 가진 자와 힘센 자가 제일이라는 생각은 우리 사회가 민주화 의식과 선진화 과정이 아직 안되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법과 제도 그리고 시민의 운동으로 견제하고 페어플레이 하도록 강제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사회학의 원조인 스펜서라는 학자의 "약육강식"론에 대해 워드라는 다른 사회학자의 이른바 "사회개량론"이 대두되어 약육강식 론의 부당함을 공박했던 것이다. 워드는 자연적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인위적 불평등은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장애우를 위한 법제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법제의 취지를 제대로 못 살리고 있으니 잘못된 관념을 고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의 차별심리는 참으로 저주받아야 할 나쁜 인습이다. 자기도 어느 순간 사고를 당하면 불구자가 되고 장애우가 될 위험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심신의 장애를 이유로 나와 너를 차별하고 괄시하는 의식과 태도는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세 번째의 가족적 이기주의는 공동체 사회건설과 정반대 되는 현상으로 이런 심성을 고치지 아니하고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본다.
한 나라의 질서가 지켜지는 까닭은 "비슷한" 상황에서는 "비슷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연유한다고 한다. 장애우들은 비장애우들과 거의 비슷한데도 사회가 그들에 대한 대우는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 이 차별을 없애고 비슷한 출발점, 비슷한 생활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법과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정부의 당연한 의무인 것이다.
필자는 평소에 우리나라에서 사회복지가 발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회복지는 외국의 제도를 모방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국민의 사고 자세가 이대로 여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깨닫기 전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한 필자가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선진국의 사회복지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종교단체 그리고 사회운동가들과 성직자들이 중심이 된 시민운동과 투쟁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사회복지를 이해하는데도 문제가 있다. 사회복지는 결코 구제 사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복지정책이 구제 사업이 아닌 정도가 아니다. 복지정책은 소외를 저지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현대 정치의 제일 과제인 것이다.
이와 같이 중요한 사회복지의 발전은 시민단체의 사회운동 여하에 달려있다. 한 나라의 발전의 수준은 장애우와 노인을 위한 복지의 수준에 좌우되며 그런 복지는 그 나라의 국민이 복지향상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본다.
복지향상을 위한 사회운동 중에서는 사회복지관련 법정투쟁이 가장 바람직한 운동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법정투쟁에서 중요한 요소는 부당한 처우를 받는 당사자들이 신념을 가지고 법에 호소하는 일이며 다음에 주변의 법률적 도움을 받는 일이다. "차별의 문화"를 종식시키기 위해 우리 모두 지혜와 정열을 모아야 할 것이다.
글/손준규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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