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아들의 망언과 만연되어 있는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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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인들에게 유행되는 말이 몇 가지 있다. "루즈벨트 장애우상을 받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OECD 가입한 나라가..." 정부가 무언가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국민들은 이런 단어를 습관적으로 붙이곤 한다. 정부나 권력층이 떠들어대는 것과는 달리 국민들은 심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저것 화려한 옷을 입히려 하지만 속 알맹이는 보잘 것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국민들이다.
분수에 맞지 않게도 우리는 선진국이라는 이름이 옷을 입게 되었지만 국제적인 압력에도 아랑곳없이 노동악법을 고수하고 있고 제대로 복지도 못하는 나라가 장애우상을 덥썩 받고, 수사기관의 고문이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는 국제 인권단체의 충고에 발끈하고 있다. 한편 한 나라의 국방을 책임진 자가 무장간첩이 활보하던 그 순간에 뇌물수뢰로 끌려 들어가고 한 나라의 복지를 책임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뇌물혐의로 옷을 벗었다. 단적으로 말해 한 나라의 기둥인 국방과 복지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의 위기를 말하며 그 탓을 국민에게 떠넘기며 반인권 악법을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적인 집단행동마저 규제하고 있는 마당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르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업의 장애우에 대한 편견 여전해
그뿐인가?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던 이가 심장병어린이를 이용해 돈을 긁어모으고 선한 미소를 가장한 장애우시설의 장이 제멋대로 설치도록 뒷짐을 지고 있는 행정력은 또 무엇인가?
이러저러한 일로 국민들이 분개하고 있던 차에 대통령의 아들은 이성재 의원의 장애를 비하하는 망언을 터뜨렸다. 과연 이 나라가 나라꼴을 제대로 갖춘 나라인가 의심이 될 지경이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국가기강의 해이가 절정에 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씨가 이성재 의원에 대해 "절룩절룩하는 X" 운운한 발언이 정가와 장애우계에 크나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11/21 동아) 이 사건은 이성재 의원 개인데 대한 신상모독이자 400만 장애우에 대한 비하라는 측면도 있지만 메디슨이란 회사의 권력비호의 배후에 대통령 아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정치권에 커다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어쨌든 김현철씨의 발언은 이성화 복지부장관의 안경사협회 뇌물 수수사건과 함께 충격을 주고 있는 사건이다. 장애우에 대한 편견은 사실상 각계각층에 널리 퍼져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반 사회는 물론이려니와 정치권이나 공무원 사회, 지방의회, 심지어는 사법부에까지 만연되어 있음을 신문의 행간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편견은 더 나아가 장애우복지 정책에 대한 몰이해와 무성의를 불러 장애우복지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사회의 편견은 장애우의 생존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심각한 실정이다. 가장 비극적인 결과는 역시 죽음이라 할 수 있다. 자살, 살해 등 올해 신문에 기록된 장애우의 죽음만 해도 10여 건이 넘는다. 최근에도 청각장애 여자어린이의 자살사건이 있었고 동생에 의한 장애우의 살해도 두 건이나 일어났다. 사기나 성폭행도 다반사로 일어나는 피해 사례이다. 지난 11월 10일에는 청각장애우들을 고용해 임금을 갈취한 봉제공장 업주가 구속되었고, 한 50대 남자는 친구의 정신지체 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해 임신을 시켰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법원에 의해 영장이 기각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부 행위는 공소시효를 지났으며 폭행 협박 등을 통해 항거불능케 한 뒤 성폭행 한 증거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러한 판시가 나오게 된 연유는 경찰이 죄를 잘못 적용(강간죄)해 영장을 신청했기 때문이다.(11/21 한겨레)
기업주들의 장애우에 대한 편견도 여전하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장애우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기업들이 장애우를 고용하지 않는 이유로 장애우에 적합한 직무가 없다(76.4%)는 이유를 들었다. 장애우를 채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기업의 사회참여(41.8%). 장애우의무고용이행(31.9%)을 들고 있어 마치 장애우 고용이 커다란 시혜이거나 억지로 한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고용촉진공단에서는 장애우취업이 1만 명을 넘어섰다고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으나 여전히 장애우의 진정한 의미의 직업재활은 요원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11/19 한국)
삐걱이는 장애우 정책, 안일한 정책 담당자
장애우문제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무관심과 무성의는 행정의 난맥상을 보일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11월 17일 조해령 총무처 장관은 국회 예결위에서 정부 장애우고용비율이 낮다는 이윤수 의원(국민회의)의 추궁에 법정비율(2%)을 준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의 계속되는 추궁에 조 장관은 안경을 벗으며 혼자말로 "아이 참. 답답하네"라며 짜증섞인 답변을 했다. 통계조사 결과 정부가 법정고용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음에도 장관이 그런 식으로 무책임한 변명을 늘어놓았다는 것은 실망스럽다.(11/18 동아)
한편 김포종고는 청각 언어 장애를 갖고 있는 홍 모군에 대해 불합격처리를 했다. 현행 특수교육진흥법 시행령 10조 3항은 "교육감은 특수교육대상자가 일반학교인 각급 학교를 지정·배치하여 줄 것을 요구하는 때에는 특수교육대상자를 그 거주지와 가까운 일반학교에 학생의 정원과 관계없이 배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학교측은 교내 선발위에서 판단한 부적격자는 추천에 관계없이 불합격처리 가능하다는 교칙을 내세우고 있다. 한편 경기도 교육청은 시각·청각·언어장애와 정신지체 장애우는 부적합 사유가 된다는 내용이 공문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홍 군은 다른 고교에 무난히 입학해 행정에 원칙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11/23 국민)
한편 교육부는 제6차 교육과정에 따른 고교 새 교과서를 제작, 보급하면서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장애우용 특수교과서는 만들지 않아 원성을 사고 있다. 현재 새 교육과정에 의한 장애우용 교과서도 지급되지 않았고 나올 예정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반학생과 대등한 능력을 가진 시각장애우들(현재 1학년 학생)의 경우 99년 치러지는 대학입시에서 배우지도 않은 내용으로 시험을 치러야만 한다.(11/4 세계)
인천시는 당초 책정한 내년 예산에서 사회복지 예산을 60%나 삭감한 48억으로 결정하였다. 인천시측은 "내년에 굵직한 대형 사업이 시급하지 않은 예산을 다소 수정했다"고 했다.(11/7 한겨레) 그런데 그 시급하지 않은 사업이라는 게 거택보호자 생계보조비, 경계석 턱 낮추기, 경사로 정비 등 장애우에게는 시급하기 이를 데 없는 사업이다. 게다가 인천시는 저소득 중증장애우를 위한 전세 주택자금 4억원도 전액 삭감하고 복지시설 운영지원비는 49억7천만원에서 10억2천6백만원으로 대폭 삭감해 과연 장애우복지에 대한 의지가 있는가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인천시는 선진국에 걸맞는 복지추구라는 시대적인 요청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
한편 부산시는 9급 전산직 지방공무원 채용 면접시험에서 필기시험에 합격한 뇌성마비 장애우 이정우씨에 대해 대민서비스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탈락시켜 물의를 빚고 있다.
다운센터 원장 성희선씨는 한겨레 신문 기고에서(11/15) 다운센터 훈련생과 포항까지 비행기를 타기 위해 할인 혜택을 신청했다가 항공사로부터 거부를 당한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즉, 개호인은 부모여야만 한다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담당자는 개호인의 뜻조차 모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담당자는 비행기 요금할인은 권고사항일 뿐 의무사항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분명 법규에 규정이 된 사항임에도 일선 공무원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장애우가 교통법규를 지키면 감동스럽다?
우리나라의 매스컴들이 바라보는 장애우에 대한 시각은 대개 두 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하나는 장애우들을 대단히 특별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두 가지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지난 11월 3일 MBC에서 방영된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프로그램에서 인적이 끊긴 시각에 유일하게 교통신호를 준수한 뇌성마비 장애우가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MBC는 이례적으로 같은 내용을 재방송하기까지 했다. 도하 언론마다 이 에피소드를 대문짝만하게 다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들 기사들이 전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듯한 청량감을 주었다" "마치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등등 벅찬 감동이었다. 제작진은 "기적을 본 듯 놀랍고 흥분돼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장애우 당사자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그가 장애우가 아니었더라도 언론은 이다지도 유난스러웠을까?
그들의 반응에는 자신들보다 못한 장애우도 이렇게 질서를 지키는데 일반사람들은 무엇인가? 라는 저의가 깔려있다. 어쩌면 교통계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지도 모르지만 그가 장애우이기 때문이라는 전제는 곤란하다.(11/9 문화) 사실 장애우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장애우가 등장한 아침프로를 보고 울음을 짜내는 이들이 바로 자신들의 주거지에 장애우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혐오하는 이중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이웃이라는 것을. 이렇게 장애우를 칭송하는 이들이 장애우를 편견으로 보고 있는 보통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장애우들은 이런 호들갑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최형우 상임고문의 서예전, 과연 순수한가?
한편, 신한국당 최형우 상임고문의 장애우 돕기 서예전이 화제이다. 그런데 이를 다루는 언론내용이나 주변 사람들의 태도는 순수함과는 거리가 있다. 불황에 따라 미술전시회에 인파가 뜸한 것과 달리 예술가가 아닌 정치인의 서예전에 1천여 명이 몰려들었다든가 수백 대가 넘는 고급승용차로 체증을 빚었다든가 하는 사실은 영 마땅치 않다. 이들은 미술에 관심이 있어서 몰려든 것이 아니다. 장애우문제에 관심이 있어 몰려든 것은 더더욱 아니다. 차기대권주자라는 세력가에 무언가를 노리는 고기떼가 몰려들었을 따름이다.
이 기사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도 순수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언론은 권력자에 풍향계를 돌려대는 습성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신한국당이 당권, 대권분리론, 이홍구 대표의 일정문건 파동 등으로 미묘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최고문의 서예전은 한가롭게 여유가 있어보인다". "이번 서예전은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할 일을 한다"는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장애우를 돕는다는 명분과 서도를 가까이한다는 이미지 등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11/13 한국일보) 김수한 국회의장은 "최 고문의 강직하고 불같은 열정과 기관차 같은 추진력이 문민정부 탄생의 초석이 됐다"(11/15 한겨레) 한마디로 자화자찬이다.
최 고문이 장애우 돕기 서예전이 좋은 취지의 행사라 하여도 순수성을 잃어서는 곤란하다. 최 고문의 서예전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있자니 마치 장애우가 한 정치인을 돋보이기 위한 장식물로 전략한 느낌마저 든다. 더불어 특정인에 대한 칭찬도 좋지만 국민의 정서와 괴리된 자화자찬도 곤란하다. 국정의 여러 난맥상으로 미루어 볼 때 과연 정치인 스스로가 칭찬받을 일을 했는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루즈벨트상 수상금으로 극복상 제정 곤란
복지부는 루즈벨트 장애우상 수상금으로 올해의 장애 극복상을 제정해 매년 장애우의 날에 10명의 장애우를 수상하기로 했다.(10/26) 그러나 루즈벨트상에 대해 비난이 잇따르고 있는 마당이라 이 상은 수상당사자에게는 불명예스러운 상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루즈벨트 대통령은 한편으로는 미국의 장애우복지를 발전시킨 사람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장애를 대단히 불명예스럽고 부끄럽게 생각했던 사람이기도하다. 그는 대통령에 직무하는 동안 공식석상에서 부축을 당하거나 업히거나 하는 장면을 대중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죽어서까지도 그의 자존심이 화제가 되었다. 작년에는 유가족들이 그의 유지에 따라 휠체어를 타지 않은 모습의 그의 동상을 제작하려 했다가 미국 장애우계의 반발을 불렀다.
이러한 루즈벨트의 모습은 어쩌면 당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휠체어 탄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 자신의 휠체어 탄 모습을 죽어서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는 점은 당당하다기보다는 휠체어와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각설하고 루즈벨트 장애우상 수상금으로 장애우극복상을 수여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루즈벨트상은 루즈벨트 재단에 대한 기부금에 대한 공로의 의미도 있으므로 차라리 루즈벨트 재단에 기부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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