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세상을 용서하기도 어렵다. > 대학생 기자단


[붓소리] 세상을 용서하기도 어렵다.

본문

[붓소리]

 

세상을 용서하기도 어렵다.

 

  내게는 아주 선량한 마음씨를 지닌 친구가 있다. 남의 아픔을 보면 바로 자신의 아픔처럼 괴로워하고 모든 규칙들은 반드시 지켜야 자기 직성이 풀리는 친구다. 얼마 전에 어떤 TV프로그램에서 교통규칙을 누가 제대로 잘 지키는가를 몰래 카메라로 담아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밤의 인적 없는 횡단보도 근처에 숨어서 몰래 지켜봄으로써 시민의식의 실제와 수준을 점검해본 프로그램이었다. 그때 크고 좋은 차를 탄 사람들은 모두들 파란 불이 미처 들어오기 전에 차를 출발시키는데, 한 장애우 부부가 탄 작은 차만이 제대로 완벽하게 교통규칙을 지키는 아름다운 모습이 방영되어 세상에 감동을 준 적이 있다.
  그 프로를 보면서 떠올린 것이 바로 그 친구였다. 그 친구야말로 남이 보나 안보나 교통규칙을 반드시 지켜서 오가는 차도 사람도 없는 인적 없는 횡단보도에서도 빨간불이면 파란불이 들어올 때까지 끝까지 서 있다가 떠나는 친구였다. 그 친구야말로 그날 「이경규가 간다」의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는 여의도에 갔더라면 그 장애우 부부처럼 칭송을 받을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런 착실한 친구에게 얼마 전에 아주 고뇌스런 일이 생겼다. 자신의 친지 한 사람이 괴로운 일을 상담해 왔는데, 도대체 어떻게 대답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에 맞닥뜨린 것이다. 그 친구는 전화를 걸어 그 이야기를 내게 털어놓으면서 나의 지혜를 구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로서도 정말 난처했다.
  여기 한 여인이 있다. 행복한 소녀시절을 보내고 이십대 초반에 마음에 드는 좋은 남자를 만나 귀여운 남매를 낳고 기르면서 십칠 년간을 잘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조금씩 이상한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여자의 육감’이란 게 있어서 뒤를 캐본 결과, 남편이 회사의 젊은 아가씨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상을 알고 나자 처음에는 배신감과 노여움에 남편의 얼굴조차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혼하기로 결심했다. 부인이 이혼하자고 하자 남편도 그렇게 하자고 나왔다. 그러나 막상 이혼하려니까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중학생들인 어린 남매의 교육문제며, 평생 살림만 하던 자신이 이제 와서 갑자기 홀로서기를 하여 사회에 뛰어들어 새 생활을 개척해야 하는 등,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니 이혼하고도 잘 살 수 있는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 동안 같이 살면서 쌓인 정도 크고 애달팠다.
  그래서 남편을 용서하기로 마음을 돌렸다. 그러나 여기서 아주 난처한 문제가 발생했다. 남편이 용서받는 것을 거절한 것이다. 남편이 자신을 용서하지 말고 이혼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하자, 여인은 의식의 혼돈을 느꼈다. 잘못을 한 것은 남편이기 때문에 용서를 빌어도 용서해줄까 말까 한 판이니까 이쪽에서 자청해서 용서해주기로 하면 마땅히 고맙게 알고 기뻐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예상과는 달리 자신은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는 나쁜 사람이니 용서하지 말고 이해달라고 나오는 것이다.
  피해자인 내가 용서해주겠다는데도 가해자인 남편은 용서를 바라지 않는다고 거절하고 있다.
  그 여인의 고뇌는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하도 마음이 답답해서 내가 다니는 성당의 수녀님께도 의논을 드려보았어." 친구는 말했다.
  수녀님께서는 그 남편의 마음이 바르게 돌아오도록 기도하는 길밖에 없다고 대답하시더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기도도 해야지. 그러나 그 부인은 지금 막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데, 기도만 하라고 할 수 없더라. 좀 더 실제적이고 빠른 방법이 없겠니."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도 답답했다. 아무리 남편이 나쁜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자기의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는 한 그 가족은 순리대로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여인의 남편처럼 "나는 너무 나쁜 놈이라서 용서받을 자격도 없다. 나를 용서하지 말아라. 용서받고 싶지 않다."라고 막 나오는 경우라면 대체 어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죄 없는 부인이 오히려 저자세로 용서하겠다고 매달리고 죄 지은 남편은 고자세로 용서받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마음이 무거웠다. 무거운 돌 하나가 마음에 얹힌 것 같이 언짢은데, 내게서 무슨 시원한 해결책이 나올까 기대했던 친구는 실망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전화 송수화기를 내려놓은 뒤로도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도움이 필요한 선량한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에도 화가 났다.
  물론 외형만으로 보면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일보다 훨씬 더 기가 막히고 슬픈 엄청난 비극도 많이 있을 수 있다. 있을 수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많이 있음을 나 자신 실제로 알고 있기도 하고 많이 목격하기도 했다. 인생이란 본래 고해(苦海)란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그러나 ‘용서를 거절하는 죄인’이라는 경우는 사안의 경중을 떠나서 견딜 수 없이 끔찍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죄를 당당하게 자랑하는 죄인. 상상만으로도 절망을 느끼게 한다. 그런 사람 앞에서는 아무런 상식도 논리도 윤리도 이미 통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런 경우에 대한 적절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 뒤로는 친구가 다시 그 문제로 전화를 걸어올까봐 겁이 났다. 친구는 그런 의논에 대해 전혀 무력한 내 능력을 가엾게 여겼는지, 더 이상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흘렀다. 나는 문득 그 친구가 이야기하던 부부가 이제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내 쪽에서 물어보았다. 대답은 아직도 여전히 그 상태라는 것이었다. 피해자인 부인은 용서하겠다하고 하고 가해자인 남편은 용서하지 말라고 버티고 있고….
  다시 더 무거워지는 마음으로 전화 송수화기를 내려놓다가, 나는 문득 세상살이와 우리 사람들 관계에 생각이 가 닿았다. 세상과 우리들과의 관계에도 역시 마찬가지 경향이 있다. 우리에게 너무 야속하게 구는 세상….
  그런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용서하리라고 어렵게 마음먹어도 세상이 우리의 용서를 원치 않는 일들이 많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런 세상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아무래도 용서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용서를 원하지 않는 그 잘못까지도 더불어 용서할 수밖에 없다.

 

글/ 송우혜 (소설가)

작성자송우혜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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