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에 어두운 한국의 복지
본문
나라가 바람잘 날이 없다. 경제침체와 계속되는 물가인상으로 가뜩이나 국민들의 사기가 떨어져 있는 마당에 한보라는 카운터 펀치가 터졌다. 단군이래 최대의 비리로 다시 한번 기록될 한보사태는 "공안정국 하에서는 권력형 비리가 터진다"는 말을 증명해 주고 있다. 감시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보가 저지른 위법 행위는 2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장애우 고용부담금 등 60억 원과 산재보험료 259억 원 포탈도 포함되어 있다.
선진국에 불고 있는 복지의 새기류
선진국가들의 복지체계에 새로운 기류가 흐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서야 초보적인 단계의 복지서비스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있는데 반해 선진국의 복지체계는 이미 성숙단계를 넘어 또 다른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흐름은 두 갈래 방향으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다.
그 하나는 복지비용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을 슬기롭게 해결하려는 방향 모색에 닿아 있고, 다른 하나는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정보통신을 복지, 의료, 교육 등에 접목한 최첨단 복지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
전자의 경우 고령화시대를 맞은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머리를 쥐어짜는 과제이다.
영국은 이러한 고민을 사회복지서비스의 민영화로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고 있는 경우이다. 영국이 사회복지에 소요하는 비용은 매년 80억 파운드(약 10조 5천억 원)에 달하는데 이중 노인과 장애우 돌보기, 방문목욕, 가사서비스(음식 조리, 청소·세탁) 등에만 연 18억 파운드가 지출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이들 서비스를 민간회사나 자선단체에 용역을 줌으로써 수억 파운드의 예산절감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1/27 세계)
클린턴 2기 행정부의 고민도 복지비용을 줄이고 복지비용을 줄이고 균형예산을 이루는데 집중되어 있다. 미국은 지난 60년 간 막대한 재원을 복지에 투자했다. 그 결과 1970년대부터 예산적자가 누적되었다. 클린턴 정부는 2002년까지 균형예산을 달성할 의무를 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보험과 사회보장비용과 노년층을 위한 의료혜택(Medicare)을 대폭 줄여야 하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클린턴 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극빈자나 약자들을 가족, 교회, 각종 자선단체 등 지역사회가 돌보고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1/23 문화)
일본은 다른 선진국과는 조금 다른 고민에 빠져 있다. 일본의 고민은 다분히 동양적이다. 이러한 고민을 이시이미치코 일본 환경장관(63. 여)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즉 고령화사회에선 돌봐야 할 대상도 여성, 돌보는 사람도 여성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개호보험제이다. 장애우나 노약자가 있는 가정에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가족만이 아니라 전문인을 파견해 돌보자는 제도이다.
이로써 주부들의 부담이 덜어지고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늘어날 것이란 것이다.(중앙 1/28 여성의 세기)
미래 대비책 없는 한국의 복지정책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나라가 풀어가야 할 복지정책의 과제는 무엇일까? 한국의 고민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아직은 복지의 기초개념이 시도되고 있는 단계이지만 그동안 경제발전의 담보로 미루어온 복지를 단기간 내에 적어도 우리 경제수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고민이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통일 후를 대비한 복지체제를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통일 후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해법도 바로 복지제도를 미리 튼튼히 마련하는 데 있다. 지난 1월 중순 통일대비 의원 연구모임의 일원으로 독일을 다녀온 정의화 의원은 이에 대해 통일에 있어 삶의 질이란 측면은 대단히 중요하며, 이를 위해 취약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보건의료, 사회복지에 대한 인프라를 하루 빨리 튼튼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일에 대비한 보건복지인프라의 구축을 위해 예산당국의 의식변화는 필수적이며 의료보장, 노인, 장애우 복지, 연금제 등의 정비와 의료인이 사명감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의료정책이나 의료분쟁조정법 따위가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24 한겨레)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생활보호대상자에 대한 국가의 복지 정책이라봐야 겨우 목숨을 연명할 정도의 수준이다. 장애우나 노인들이 삶을 의탁하고 있는 복지시설들은 툭하면 비리사건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의료에서도 푸대접을 받고 있다. 2월 2일자 일간스포츠의 "장애인, 재활의학과 푸대접 분통"이라는 기사는 과연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의료정책이 있는가 반문하게 된다.
일부 대학, 대형 병원들은 선천적인 장애우와 교통사고 후유증환자들이 주로 드나드는 재활의학과를 다니기 불편한 지하 1층이나 고층의 비좁은 장소에 방치하고 있다. 입원도 하늘에서 별따기이다. 한마디로 장사가 안된다는 것이다. 20∼30분 물리치료를 해주고 받는 수가는 고작 천 원이다. 인술을 망각한 의료인과 정부의 방치가 빚어낸 합작품이다. 이래서야 통일을 대비한 복지는커녕 기본적인 삶의 질조차 보장될 리 없다.
정보통신으로 앞서가는 선진국의 복지
선진국의 또 다른 복지의 흐름은 정보통신과 복지의 결합이다. 정보통신과 복지 접목의 핵심도 역시 장애우와 노인과 소외계층이다. 이 분야의 선두는 단연 미국이다. 미국은 복지의 새로운 단계에 대비해 법률까지 완비했다. 지난해 6월 통신법을 개정하면서 통신장비제조자나 통신서비스업자들이 장애우가 쓰기 편한 장비와 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설계, 개발, 제조할 것을 못박았다. 정보통신은 장애 발생의 예방에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지구반대편 전장에서 발생한 부상자의 부상부위를 본국의 의사가 살펴볼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지난해 10월 미 국방성이 개발한 전장 원격진료(Battle Telemedicine) 시스템 덕이다. 실제로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걸프전에 참전했던 병사들이 원격진료 덕을 봤다. 이러한 시스템은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현장 등에도 활용돼 장애를 예방하는 데 크게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격교육도 이미 보편화되어 많은 미국의 장애우들은 공부할 수 있는 권리를 완벽하게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정부주도로 정보통신망 구축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복지와의 접목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우선 87년부터 시작된 행정망, 교육망, 금융망, 공안망, 국방망 등 5대 국가기간전상망 구축 사업이 이미 대부분 완성되어 국가 행정에 혁신을 가져왔다. 그러나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되어 있는 보건복지부문의 전상망 구축은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한편 95년부터 정보통신부는 국가예산을 투자해 매년 30여 개의 공공데이타베이스 통신망을 구축하고 있다. 장애우 통신망 사업자로 재활협회가 선정되어 현재 곰두리통신을 운영하고 있으나 국가가 운영하는 정보통신망이라 부르기에는 여러 면에서 부족한 수준이다.
95년부터 시범실시하고 있는 원격교육이나 원격진료도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경북대 의대와 전남대 의대에서 원격진로를 운영하고 있으나 해가 갈수록 이용실적이 줄어들고 있다. 정부가 의욕을 갖고 통신망을 구축했지만 시범기관으로 선정된 학교나 병원측에 비싼 전화비를 부담시킨 채 더 이상 사후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 비싼 장비를 썩히고 있는 실정이다.
각광받는 음악치료법, 애견치료법
음악치료법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음악치료요법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음악을 들려주어 치료를 돕는 방법이다. 주로 치매나 자폐증, 정신질환자들에게 적용되는데 역사가 오래된 편이다. 고대 이집트 문헌에도 음악치료법이 나타나고 있으며 구약성서에는 사울왕의 우울증을 다윗이 하프로 치료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2차대전 때는 전쟁공포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활용하기도 했다(2/14문화)
이는 몇 년 전부터는 국내에도 도입되어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무자격자들이 치료를 빌미로 음성적으로 시행하고 있어 시간적,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등 물의가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환자를 앞에 앉히고 피아노곡 몇 곡을 쳐주고 돈을 챙기는 사례까지 있다.(2/10경향)
제1회 국제음악치료 워크숍(2/12-14)에서는 음악치료법을 무분별하게 적용하면 증세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음악치료는 사회사업 심리학, 언어치료, 임상학 등 다면적 접근이 필요하며 놀이치료 등 다른 치료법과 결합할 때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국 음악치료 권위자인 베네딕트셔비(뉴욕대 교수) 박사의 말을 인용하자면 음악치료는 환자의 내면세계를 반영해주는 거울이며 음악치료사는 그 거울의 이미지를 읽어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치료도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환자에 대한 애정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숭고한 의료행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최근에는 애완동물을 이용한 치료법도 등장하고 있다. 일명 PAT치료법으로 불리우는데 90년대 들어 미국, 영국 등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국내에 도입된 것은 지난해 8월 삼성복지재단이 라브라도견을 도입하면서였다. 아직은 임상단계이지만 자페증상을 보이는 아동에 적용한 결과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고 만성자폐, 정신분열증 중증환자들이 애완견을 쓰다듬다 말문이 트여 관계자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치매증세에도 좋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용인에버랜드의 중앙개발 동물원 사육사들은 애완견 치료를 전문으로 한 팻봉사단을 조직해 공주치료감호소와 경기도 화성의 정신질환자 수용시설인 사랑밭재활원 등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2/14 중앙)
사소한 것에서부터 국제기준을 생각하라
한편 중앙일보 1월 28일자에는 맹인안내견을 위한 선진국의 제도를 소개하고 있다. 애견문화 제도에 있어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미국, 영국, 뉴질랜드에서는 맹인견에 대한 대접이 융숭하다. 미국은 ADA법에 맹도견의 공공장소 출입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고 뉴질랜든 맹인안내견의 출입을 거부하는 호텔에 대해 1년 이하의 영업정지에 처한다. 그러나 다른 애완견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장을 사절한다.
우리나라에도 최근에 맹도견이 도입됨에 따라 철도청 국유철도여객규칙(63조2항)과 자동차운송규정에 맹도견의 탑승조항(개정령 28조)을 두고 있고 대한항공도 최근 맹인안내견의 탑승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강제조항이 아니고 관계자들도 잘 모르고 있다.
특히 공공건물에서는 맹도견이 거부당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95년 7월 서울국제라이온스클럽 총회에 참석했던 시각장애우 에드 레빈스 교수는 구내의 내로라는 호텔로부터 일제히 투숙거부를 당해 총회기간 동안 시각장애인복지관 기숙사에 머물러야만 했다. 이 사례는 국제화, 세계화라는 것이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국제기준을 생각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사소한 일들이 국가의 이미지를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한 것은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장애우의 발목 잡는 대학입학 요강
매년 입시철만 되면 장애우의 대입이 화제에 오른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장애우는 대학은커녕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조차 아주 드문 일에 속했다. 좌절할 것이 눈에 보이듯 뻔한 좁은 문이건만 장애우들의 도전은 줄을 이었다. 명예와 전통을 내세워 장애우들을 거부하는 대학에 대해 대학 진학을 꿈꾸던 많은 장애우들이 목숨을 끊기도 했다.
80년에 들어서부터 특정 분야에 한해서 장애우들에게 대입의 기회가 노루꼬리만큼씩 자라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대학진학은 선택된 소수의 장애우들의 몫이었다. 90년대부터는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함부로 장애우를 거부했다가는 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면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특례입학이 도입되면서 명목상이지만 대학은 중증장애우들에게까지 활짝 열렸다. 이제 장애우의 대학진학을 좌우하는 요인은 교통과 편의시설의 해결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장애우들의 입학을 거부하는 사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서울예전의 번복으로 합격의 기쁨을 안은 시각장애우 장유경 양은 "혼자서 수업을 받을 수 없을 정도의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입학을 거부할 수 있다"는 독소조항으로 원서접수마저 거부당해야 했다.(1/24 경향) 근이양증 장애우인 박성환 씨도 같은 경우를 당했다. 수능 고득점의 성적을 들고 당당하게 고려대에 지원했지만 성적에 관계없이 고려대에서 공부할 수 없음을 판결받아야 했다. 고려대 입학요강의 "학교 및 학과의 특별한 지원없이 학습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이 조항은 장애우를 위한 편의시설을 설치할 생각조차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임시국회 통과가 확실시되는 장애우 편의시설 설치법이 2월 임시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늦어도 내년부터는 대학들도 더 이상 편의시설 설치를 기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때가 되면 대입요강의 개정도 불가피하겠지만 그 이전에 대학이 한 나라의 지성을 이끄는 전당이라면 누구보다도 편의시설 설치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새벽에 신호등을 지킨 뇌성마비장애우를 소개한 이후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지난 2월 15일에 장애우주차장과 관련한 시민의식을 실험해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마침 장애우주차장에 주차한 일반차량에 대한 제재강화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매우 적절한 내용이었다. 특히 손학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출연해 장애우복지법에 대해 설명한 대목은 압권이었다. 이날 프로그램은 그다지 흥미를 끌기 어렵고 딱딱해 보일 수 있는 내용을 코미디와 접목함으로써 홍보를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KBS의 인기드라마 "하얀민들레"가 일본 드라마를 베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드라마의 등장인물과 상황설정이 니혼텔레비젼의 드라마 "별의 금화"와 "사랑한다고 말해줘"와 닮아있다는 것이다.
별의 금화는 속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일본전역을 뒤흔들었던 드라마로서 두 의사와 청각장애우 간호사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청각장애우 남자와 무명 연극배우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하얀민들레에서 청각장애우인 진우가 하영과 하영의 어머니와의 화해를 돕는 모습과 "사랑한다고..."에서 여주인공이 청각장애우 남자와 그의 어머니와의 화해를 돕는 장면은 그 내용까지 닮아있다.(2/1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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