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희망의 새옷과 정의, 도덕, 법의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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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
희망의 새옷과 정의, 도덕, 법의 새해
우리는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1995 을해( �년을 보내고 1996 병자(��년 새해를 맞았습니다. 지난 을해년은 대한민국건국 이래 가장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사고와 사건들도 예년보다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 전직 대통령이 한달 간격으로 연이어 구속된 사건은 지난날의 세계역사뿐 아니라 앞으로의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건으로 우리 국민은 물론 전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우리 국민은 이 사건을 통해 지난날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참담했고 수치스러운 것이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뒤늦게나마 잘못된 과거를 청산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등을 통한 김영삼 대통령의 과거청산 방식에 대해 국민들은 전폭적인 갈채를 보내기보다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민의 다수가 김 대통령이 과거청산을 정의와 도덕과 법에 기초하지 않고 정치적, 정략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 구속되어 있는 두 전직 대통령은 재임 당시는 말할 것도 없고 퇴임 후에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구속될 수 있었던 것은 불의하고 부정한 과거의 역사를 청산하고 정의롭고 도덕적인 새역사를 건설해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과 역사적 대의명분을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을 비롯해 잘못된 과거의 청산은 정의와 도덕과 법에 기초할 때만이 올바로 청산될 수 있습니다.
특히 잘못된 과거청산은 과거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미래를 올바로 건설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정의와 도덕과 법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과거청산이 정략적 차원에서 정치보복 내지 정적 죽이기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인식 때문에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반동 보수세력들이 재결집하는 빌미가 되고 있습니다.
이 결과 김 대통령의 과거청산 작업은 과거청산이 아니라 과거를 재건설하는, 이런 면에서 도리어 우리민족의 새로운 미래건설을 가로막는 "미래청산에 의한 과거 재건설"이라는 역설적 현실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김 대통령 퇴임 후 과거청산을 다시 해야 할 뿐 아니라 김 대통령도 과거청산의 대상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가 사실로 재현될 경우 이것은 김 대통령의 개인적 비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상적으로 퇴임한 대통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초대 이승만 전대통령의 해외망명으로부터 시작해서 윤보선 전대통령의 군사쿠데타에 의한 강제 하야, 박정희 전대통령의 피살, 최규하 전대통령의 군사 쿠데타에 의한 강제 하야, 전두환 전대통령의 백담사 유배 및 구속, 노태우 전대통령의 구속 등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적 종말의 역사는 이들 개인의 비극이나 불행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와 모든 국민의 비극이며 불행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국민들은 김 대통령이 국민적 대의에 따라 정의와 도덕과 법에 기초하여 과거청산을 올바로 함으로서 퇴임 후에도 당당하게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세계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과거청산은 단지 대통령의 몫이거나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우리국민 모두가 잘못된 과거를 청산해야 합니다. 특히 고위 공직자는 물론 누구보다도 종교계, 학계, 교육계, 법조계, 언론계 등에서 불의하고 부정한 과거체제를 찬양했거나 이여 참여 및 편승을 함으로서 치부하고 출세하고 명성을 얻은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장애우 복지계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번에도 과거청산을 올바로 못하면 우리나라는 더 깊은 불의와 부정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병자년 새해를 맞았지만 새해는 달력만 바뀐다고 새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식과 마음과 생활이 새로워져야 새해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난날의 관행화된 우리의 부정한 의식과 생활양식을 철저히 청산하고 새출발을 해야 합니다. 새해는 우리국민 모두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불의하고 부정한 과거의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정의와 도덕과 법에 기초한 새로운 옷을 갈아입어야 합니다.
우리 장애우들도 새해를 맞아 자선과 동정에 의존하는 무력감과 의타심, 또한 자기만 잘 살려고 하는 이기심 등의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장애우의 정당한 권리회복을 통해 자주 자립하며 협동적으로 살려고 하는 마음의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동안 참으로 피나는 노력으로 장애인복지법, 고용촉진법, 특수교육진흥법, 편의시설에 관한 법 등을 개정, 제정함으로서 이를 통해 장애우의 권리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지만 이 법들 역시 불의한 과거체제에서 제한적으로 획득한 것이기 때문에 이번 과거청산을 계기로 장애우의 평등한 권리와 관련된 제반 법들도 새롭게 개정하고 제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 장애우들이 서로 격려하고 힘을 모아 이렇게 새로운 사람, 새로운 법과 제도의 새옷을 입으려고 노력할 때 병자년 새해는 우리에게 "완전한 참여와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참으로 복된 해가 될 것입니다.
지난해 우리 연구소를 사랑해 주시고 모든 장애우들의 벗이 되어주신 장애우 가족 여러분 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 지면을 통해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1996년 병자년 새해 아침.
글/ 김성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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