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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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하다
국민소득 1만불 시대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의 질"은 선진국은 물론 주요 경쟁국과 비교해도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민간연구소인 LG 경제연구원은 "소득 1만불의 시대, 삶의 질을 높이자"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고 1만불 시대에 걸맞는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인식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다음은 그 보고서 내용이다.
질 높은 삶에 대한 욕구 점증
우리나라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소득 1만불 시대로 접어들었다. 최근 한국은행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GNP는 10,076달러를 기록했다. 여기에다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향후 우리 경제의 청사진을 보면 앞으로 5년 뒤인 2001년에는 소득 2만달러, 15년 뒤인 2010년에는 소득 4만달러에 달하게 된다. 우리 경제가 200년까지 7∼7.5%의 고도성장을 유지하고 그 이후에도 6%대의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지속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단 한 세대도 못되는 짧은 기간안에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소득 국가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득수준의 제고와 함께 최근 "삶의 질"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물질적 풍요와 다분히 깨끗하고 안락한 생할환경, 여유로운 삶을 원하는 사회적 욕구가 높아지고 있으며 사회구성원들의 가치관이나 라이프스타일이 역시 일보다는 노동, 돈보다는 여가를 주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좀더 나은 생활을 원하는 국민의식 변화는 수입상품이나 해외여행, 레저스포츠 등 각종 서비스상품의 매출 호황으로 표출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1인당 GNP의 급속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 가운데 소득증가에 비례하는 삶의 질의 개선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는 의견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3월 초순 광고대행사인 대흥기획이 발표한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과 변화 추세라는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 가운데 물가, 교통, 범죄 등 제반 사회여건에 대해서는 나빠졌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80%를 넘어서고 있으며, 교통, 범죄, 청소년, 부정부패, 소득격차, 노인문제 등을 우리 사회가 잘못 대처하고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도 50%이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1995년 IMD(국제경영개발원)의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스스로 평가한 삶의 질은 세계 48개 국가 가운데 28위로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 등 보다 낮은 상태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주택보급률 주요 경쟁국보다 낮아
실제로 삶의 질과 관련된 몇가지 구체적인 지표를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상황은 서구선진국은 물론 주요 경쟁국가들에 비해서도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보장지출 총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인 94년 기준으로 1.9%에 불과해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싱가포르 등과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말레이시아, 터키, 멕시코, 칠레, 브라질 등 세계 주요 개발도상국의 80년대 중반 수치보다 낮은 것이다.
한편 국민들의 삶의 질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접근 자세도 주요 선진국에 비해 소극적이다. 즉 지난 94년의 경우 사회보장 및 복지, 주택 및 사회지역개발, 오락, 문화 및 종교 등 삶의 질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우리나라 중앙정부의 지출규모는 전체 예산 지출의 30.1%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국(92년 기준)의 경우 중앙정부 지출에서 동 부문이 차지한 비중은 전체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49%, 독일(89년 기준)은 67.7%에 달하고 있다.
주택문제의 경우도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94년 현재,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84.2%로 주요 서구선진국은 물론 아시아 지역의 주요 경쟁국인 대만이나 싱가포르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방 1개당 인원수의 경우 94년 현재 1.5명으로 대만의 0.9명이나 주거 상황이 열악하다는 일본의 0.7명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의료부문의 경우 대표적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인구 10만명당 의사수 면에서 우리나라는 94년 현재 122명으로 스웨덴(90년)의 253명, 캐나다(91년)의 224명 등 서구선진국은 물론 일본(92년)의 175명이나 싱가포르(91년)의 138명에도 못 미치고 있다.
내외가격차 소비생활에 중요 걸림돌
교육부부문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95년에 발행된 일본 은행의 국제 비교통계자료를 보면 정부부문에 의한 인구 1인당 공공교육비 지출총액은 일본(89년)과 미국(83년)이 각각 1,110달러, 프랑스(91년) 1,208달러 수준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95년 현재 332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초등학교 교원 1인당 학생수는 서구 선진국이 20명 안팎, 후발개도국인 말레이시아(92년)가 20명, 인도네시아(92년) 23명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95년 현재 28.2명에 달하고 있다.
소비생활면에서의 질적 격차도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유통구조의 낙후와 각종 규제에 따른 내외가격차 문제이다. 외국에 비해 비싼 각종 소비재 상품의 가격은 국민들의 소비행동에 중대한 제약요인으로 작용하며 결과적으로 국민생활수준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재정경제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의 공산품 가격은 세계 주요 도시 중 도쿄 다음으로 비싼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가전제품 가격의 경우 서울은 미국 뉴욕보다 약 2배 가량 높았다. 주요 식료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ILO(세계노동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들의 주식이라고 할 수 있는 쌀은 물론 물가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라질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삶의 질에 관한 통합적 시각 긴요
"질 높은 삶"의 구현은 소득 1만불 시대를 맞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미를 수 없는 주요 현안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은 물론 싱가포르, 홍통, 대만 등 주요 경쟁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는 국민생활의 질 향상을 위해 각종 사회제도의 정비와 투자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정부 역시 최근 "살의 질 세계화"를 주요 정책 목표로 내세우고 각종 실천 방안을 강구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지난 해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UN 사회개발정상회의를 계기로 정부가 그동안 성장의 하위개념에 있던 국민복지를 성장과 균등한 비중으로 취급키로 한 것은 중대한 인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부 방침에 따라 지난해 3월 발족한 국민복지기획단은 지난해 연말 "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국민복지의 기본구상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말하는 "삶의 질"은 사회보장제도 확립과 국민생활 최저 수준 보장 등 삶의 질 제고를 위한 최소한의 기본요건 충족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아직도 상당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삶의 질"이란 인간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감정, 생활에 대한 만족과 불만족 등에 영향을 미치는 객관적, 주관적 요소의 복합함수이다.
때문에 "질 높은 삶"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회보장지출의 확대나 최저생계 지원뿐만 아니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주거, 교통, 환경, 교육, 소비, 문호, 공공안전, 공정한 기회의 보장 등과 같은 제반 요소들의 질적, 양적 수준이 충족되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처럼 사회보장, 주거, 교통, 환경, 문화생활 등을 각자 별개의 사안으로 인식하고 그때그때의 가용자원을 배분하는 식의 단기적 대응책보다는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질"과 관련된 모든 요소들을 거시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의 수립과 과감한 자원배분이 필요하다.
시간 흐를수록 문제해결 어려워져
이러한 점에서 일본의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90년대 들어 "생활대국" 달성을 중요 국정목표로 내세웠던 일본이 90년대 중반 현재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여전히 국민생활 수준면에서 세계 2류, 3류 국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십년 동안 누적되어 온 삶의 질 문제가 정부의 계획만으로 단 몇 년 동안에 해결 될 사안은 아니라는 점을 잘 말해준다.
국민생활의 질 재고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경제성장 혹은 경제의 양적 규모를 키우는 데 투입되었던 각종 자원의 상당부분이 불특정 다수를 위한 재원으로 돌려져야 한다. 가시적 성과가 곧바로 들어나는 성장주도 부문에서 자원투입과는 달리 사회복지나 국민생활 환경 개선 등에 대한 자원투입은 오랜시간이 지나야만 그 효과를 체감할 수 있다. 성장률이나 GNP 등 지표상의 성장추세가 둔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삶의 질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 현재 우리경제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사회간접자본(SOC)문제처럼 한 번 시기를 놓치게 되면 지가 및 임금, 금융비용 상승 등으로 인해 문제해결에 소요되는 사회적 지불코스트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 역시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이다.
물론 낮은 살의 질로 인해 사회 구성원들이 지불해야 하는 갖가지 비용, 예를 들면 사회적 혼잡도의 가중과 환경오염, 교육시스템의 질 저하, 노동생산성의 하락 등 유무형의 지출비용도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삶의 질 개선위한 획기적 인식전환을
삶의 질은 더 이상 성장의 하위개념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경제규모의 확대재생산을 지속키 위해 당분간은 낮은 수준의 삶의 질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다. 삶의 질 재고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수준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향후 "삶의 질" 제고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확고한 정책적 비전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국민복지와 생활의 질 향상을 위한 투자를 "낭비"와 "사치"로 인식하는 시각도 교정되어야 한다.
"소득"에 걸맞는 "삶의 질"을 구현해 나가려면 우리 사회전반의 인식전환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글/ LG 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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