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복지는 이제 당당한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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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
복지는 이제 당당한 권리이다.
지난 4월 12일에 우리나라 사회복지계에 매우 의미있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시민운동단체의 하나인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참여연대) 사회복지특별위원회가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이기남(67세) 씨를 원고로 선정하여 서울시 관악구청을 피고로 하여 1994년 12월 23일 "노령수당지급제외 처분 취소청구소송"을 제기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하고 이를 서울고법에로 환송할 것을 판결한 것이다.
본 소송의 내용을 보면, 노인복지법 제 13조(노령수당) 및 동법 시행령 제 17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65세 이상의 생활보호대상 노인에게 노령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으나 노인 복지사업지침에서는 이를 70세로 올려 시행함으로써 현행법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어 이의 위법성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동안 1심에서는 승소하였으나, 2심인 고등법원에서는 패소하였다. 즉 1995년 5월 4일 자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위임입법의 한계는 "소득수준 등을 참작한 일정소득이하의 대상자의 선정기준에 관한 것" 이라는 원고측의 주장을 배척하고 "소득수준" 등의 해석은 "국가예산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지급대상자의 최저 연령도 65세보다 높여 지급대상자의 범위를 조정할 수 없도록 해석된다"고 판시한 것이다. 이같은 판시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를 한 바 , 대법원은 원고의 상고를 받아들여 서울고법 판결을 파기하고 본 소송을 서울고법에 환송한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갖는 우리나라 사회복지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첫째, 비록 이번 소송의 내용이 노인분야에 속하지만 노인들뿐만 아니라 복지서비스 대상자 전반에 걸친 국가의 급여제도에 대한 현행의 문제점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대법원의 환송 판결은 바로 사회복지는 시혜가 아닌 권리가 되는 현대 민주사회의 추세에 주목하여 사회복지 향상 의무에 관한 새로운 국가 책임성 기준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이다.
둘째, 현재 임의규정으로 되어 있는 법률 조항이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노인복지법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현행 사회복지관련법은 강제규정이 아닌 "...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으로 되어 있어, 행정당국이 이를 임의적으로 해석하여 자기 멋대로 시행할 수 있는 악의적 요소를 담고 있는데, 대법원 판결은 바로 이러한 임의적인 행정 편의적 해석은 위법이라는 원고측 주장에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와 제34조에 나와 있는 행복추구권과 생활보장권 등 국민의 생존권적 권리에 대한 사회복지제도의 존재 의미를 재확인해 준 점이다. 현행 우리나라 사회복지제도는 헌법과 법률로서는 그런대로 모양을 갖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를 시행하는 시행령, 지침 등에서는 법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 적지 아니하고, 위에서 본대로 행정당국에 포괄적인 위임을 하고 있는 등 사실상 헌법과 법률이 정한 복지 취지를 무시하고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바로 이러한 점에 주목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넷째, 현행 사회복지 제도의 법과 시행령 그리고 사업지침 등간에 나타나고 있는 괴리와 모순에 대한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으며, 허술한 사회복지제도의 체계 확립이 시급함을 인정한 점이다. 아울러 행정집행 부서의 충실한 법 집행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가를 일깨워준 점이라 하겠다.
이제 우리 장애우 분야 쪽으로 눈을 돌려보자.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외받고 차별당하는 대표적인 사람은 첫째, 소득을 가진 자에 비해 갖지 못한 가난한 자, 둘째, 남성에 비해 성차별을 받고 있는 여성, 셋째, 비장애우에 비해 장애를 가진 사람 등 세 부류의 사람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사실 이러한 소득 결핍과 여성과 장애라는 세 가지 요소를 한꺼번에 갖고 있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꽤 있음을 조금만 관심을 갖고서 눈을 돌려보면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여 빈곤 장애여성을 주위에서 어렵잖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지하도에서, 육교 위에서, 시장 골목에서, 그리고 심지어 애기를 업고서 구걸하는 아낙네들까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포괄적인 사회복지서비스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제도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사회복지사업법이 제정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이후 영유아, 아동, 노인, 장애우, 여성 등 사회복지대상자와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 영유아보육법, 아동복지법, 노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모자복지법 등 각종 법률들이 제정, 개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장치의 마련에도 불구하고 이들 복지대상자들을 위한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소득보장, 의료보장, 주거 보장, 고용 보장, 교육 보장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변화에 따른 다양한 비물질적 욕구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 정책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사실 동정과 자선과 시혜만이 이들을 구하는 유능한 방법과 수단이 된다면 아직도 그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닌 봉건사회에 불과하다. 인권이 살아 움직이지 않는 사회는 분명 민주사회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인권 발달의 역사는 바로 한 사회의 민주주의 발달의 척도가 되다. 신분상의 자유권 행사에서부터 참정권의 행사로, 나아가 사회권의 행사로까지 인정해 주는 사회가 바로 민주주의가 발전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무엇보다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복지는 자선이나 시혜가 아닌 당당한 권리라는 것을 이제 우리나라도 법적으로 인정을 함으로서 복지권의 실현에 한발짝 다가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글/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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