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밥상에 함께 둘러앉은 식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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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밥상에 함께 둘러 앉은 식구들
요즘 흔히 쓰는 말에 "동반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아무래도 함께 가자는 말일 것이다. 노랫말에 있듯이 산이건 바다이건 함께 건너주며, 때로는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그 길"을 함께 가는 길동무가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있어서 동반자란 먼 길을 함께 걸으며 그 고달픔을 나누면서 마침내 목표를 향해 함께 가는 사이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말에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가까운 의미의 영어에는 "Companionship"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com"과"panis"의 합성어로서 그 의미는 "빵을 함께"라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의 정서에 배어 있는 길을 함께 가는 것과는 달리 함께 밥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나누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먹고 마시는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라 함께 연결되고 뜻을 나누며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첫 출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흑인 운동가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경우도 그가 꿈 꾼 것은 먼 훗날 흑인 이건 백인이건 한 시대를 살아가는 미국의 후예로서 같은 식탁에 둘러 앉을 날을 기대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우리의 생활에서 먼 길 가는 것이 하나의 중심이라면 또 다른 세계에서는 함께 먹는 일이 더욱 중심이었던 것 같다. 하기야 여기에 무엇이 다르겠는가. 먹어야 먼 길을 떠날 수 있을것이며, 길을 가다보면 함께 먹지않고 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의 오늘날의 생활에서는 이런 동반자의 의미는 옛 향수처럼 되어버렸다. 아침 식탁에 온 식구가 둘러 앉아 아버지가 첫술을 뜨면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던 아름다움은 사라진지 오래다. 도무지 식사가 생활의 중심이 아니라 일상의 기능적인 역할이 되고 말았다.
외국에서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브라운 백 하나 사들고 와서 길이건 사무실이건 가리지 않고 샌드위치를 뱃속에 채워 넣는 관습이 식탁의 아름다움을 바꾸어 놓았고, 우리에게는 새벽이고 밤이고 없는 입학 수험생 때문에 도대체"함께"라는 말자체가 무색해져 버린 지 오래다. 더구나 직장생활을 하는 아빠도 엄마도 출근이고 귀가고 제때가 없으니 식사시간에 맞추어 제대로 온 식구가 모여 앉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 어디 길 떠나는 것도 그렇다. 자동차문화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 카풀이나해서 이웃이라도 함께 어디를 갈뿐, 도무지 정취 있게 "신작로"를 걸어 본 것이 언제인가.
같이 먹고 마시고 떡과 빵을 나누면서 먼 길을 함께 가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그건 역시 우리의 마음이 바뀐 탓이 아니겠는가. 사랑하던 제자인 자로가 무참하게 소금에 절인 채 살해를 다하자 일생 소금에 절인 생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던 공자와 같은 스승이 없는 세상에서 또 그 스승을 위해서는 온 몸을 던져 자기를 바쳤던 자로와 같은 제자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무슨 동반자가 있는가.
그런데 여기에서 동반자란 바로 내가 그 길을 같이 가주어야 하는 것이며, 그 식탁에 기쁜 마음으로 가 앉아서 음식을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말해서 동반자란 내가 그렇게 동반자가 되어주는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입장인 것이다. 가령 그렇게 가지 못한다고하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 우리는 여전히 동반자가 아닌 것이다.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함께 식탁을 나누고 함께 그 길을 가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혈연관계의 가족일 뿐 동반자는 아닌 것이다.
필자는 가끔 우리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졸업해서 활동하고 있는 장애우 친구들을 잊을 수가 없다.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던 학생과 더불어 유명산을 넘던 기억, 뇌성마비를 딛고 일어서서 자기 일을 만들어가던 학생과 길게 나누던 대화, 그리고 청각장애에도 불구하고 강의실에 가장 열중하던 학생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밥상을 나누고 대학 4년간의 과정을 함께 걸으며 우리들에게 "동반자"의 기쁨을 주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떻게 동반자로 살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었다. 그들이 남겨준 값진 숨결이 우리 대학의 캠퍼스에 남아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동반자의 길을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재성/성공회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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