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린 것은 그럴듯하나 먹을 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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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나도는 유행어는 아무래도 "삶의 질"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 시초는 물론 코펜하겐 사회개발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 직후 밝힌 김영삼 대통령의 삶의 질 세계화구상에서 비롯된다. 국가 최고 수뇌가 만들어 낸 이 멋진 말은 어느덧 인구에 회자되어 평범한 서민에서부터 정책 당국자에 이르기까지 즐겨 주장하는 말이 됐다.
5월 19일 국민복지기획단의 운영계획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김영삼 대통령은 삶의 질을 강조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전체적으로는 삶의 질 세계화 구호를 내세우면서도 기획단에 내린 실제적인 당부사항은 성장과 복지가 균형을 이루는 한국형 생산적 복지였다.(05/19서울) 5월 17일자 한겨레신문 "삶의 질을 높이자" 좌담회에서 민주당 강수림 의원은 다른 분야는 세계화를 외치면서 유독 복지에서만 가장 후진적인 한국형을 지향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대통령이 내세운 생산적 복지는 선언적 인상이 짙고 이는 제한적인 복지정책으로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구상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전반적인 향상추세에 비추어 복지 분야의 현격한 낙후가 명백한 이상 특별한 조치가 필요함에도 당국의 생각은 여전히 경제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상은 거창하거나 실질적으로는 그 구상에 역행하는 모습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 65세 이상 노령수당 지급 규정을 어기고 예산부족을 이유로 70세 이상 지급을 규정한 보건복지부장관의 지침이 정당하다고 한 판결을 들 수 있다.(05/04) 정부는 이처럼 소외계층의 복지에 대해 대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있음에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예산 부족을 핑계삼고 있다.
한편 지난 5월 19일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장애우 복지 등 국내의 사회권에 대해 실랄한 비판을 가한 것은 부끄러움과 신선한 충격을 동시에 주는 소식이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 한국복지 상황에 신랄한 비판
지자제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의 전폭적인 지지아래 지역단위를 대표하는 후보들은 복지에 관한 무수한 공약들을 내세우고 있다. 대통령도 선거를 의식했음인지 이례적으로 사회복지전문요원을 초청한 자리와 국민복지 기획단의 운영계획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거듭 만 달러 시대에 맞는 복지정책을 강조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수많은 기사들 중 눈길을 끄는 기사는 유엔 사회권위원회 국내 사회권에 대한 결의안과 "노령수당 지급대상자 선정 제외처분 취소청구"의 기각을 들 수 있겠다. 이 두 가지 사건은 국내 복지 정책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결정을 앞두고 귀추가 주목됐었다.
지난 5월 19일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일명 인권A규약)"에 의거해 장애우복지 등 국내복지 현실, 노동 인권 등에 관한 결의안을 냈다.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이 결의안은 장애우복지, 남녀 평등, 노조활동의 자유, 어린이장애우의 복지,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 등 국내의 전반적인 사회권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내려 충격을 주고 있다. 정부가 두 차례나 연장을 하면서 적극적인 대응을 했음에도 "한국 정부의 보고서는 너무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라며 외교상 대단히 이례적으로 강경한 표면을 써가며 권고안을 결의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치부를 내비친 순간이었다. 이는 참여연대 등을 포함한 NGO가 두차례 에 걸쳐 반박보고서를 내는 등 조직적 대응을 한 결과였다. 그러나 정부는 단지 권고에 지나지 않다며 무시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한겨레05/21) 한편 한겨레신문 외에 국내 언론들이 이 결정을 전혀 다루지 않아 실망을 주었다. 그나마 한겨레신문 기사에서도 장애우복지에 대한 결의 사항은 빠져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임의규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지난해 12월 이기남 씨(66)는 노인복지법상 65세 이상 노인에게 노령수당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7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지급할 것을 규정한 보건복지부장관의 지침을 부당하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 5월 4일 이 소송은 기각했다. 이 소송은 판결에 따라 13만명에 달하는 65~70세 생활보호대상자에게 노령수당이 주어지게 되는 중요한 소송이었다. 그러나 65세 이상 노인에게 수당을 지급하라는 규정은 강제규정이 아니고 할 수도 있다는 목표를 나타낸 것이므로 보건복지부 장관의 지침은 정당하다는 지극히 보수적인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이 판결을 볼 때 임의규정이 많은 대부분의 장애우관련법들이 유명무실하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볼 수 있다. 덧붙여 보건복지부 장관은 예산사정상 지급할 형편이 못되므로 앞으로 고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삶의 질 세계화구상과 손발이 맞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남발해 아무 강제성도 없이 정부에 지나치게 재량권을 주고 있는 사회복지법 근본체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있다.
현재 민주당은 사회보장기법을 국회에 상정하고 있는데 이 법이 법재화될 경우 충분한 예산편성의 의무가 정부에 주어지고 대상자들은 청구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선언규정들을 법적 권리로 했을 경우 법체계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정부는 요지부동을 고수하고 있다. (05/14 한겨레) 사회보장권에 대해서는 한겨레 신문 기획(05/07) "삶의 질을 높이자"의 연재를 마치고 가진 좌담회에서도 제기되었다. 여기서 전문가들은 복지 분야의 예산확보가 어려운 이유로 성장을 우선으로 하는 경제관료가 예산편성을 맡고 있는 것을 들었다.
따라서 편법이지만 제대로 된 복지가 시행되기까지는 관료와 정부를 법으로 강제하는 방법을 도입하고 법이론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권을 청구권적 권리로 인정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예산확보와 관련해서 언론인 김진규라도 자진헌납하면 5천 억 이상이 확보되고 잘못 책정된 혈세를 찾아내서 복지분야로 전용하자는 특이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05/23 국민일보)
지자제선거 장애우 공약 함량 미달
정책 관련 기사는 국민복지기획단 본격 활동(05/19). 서울시장 선거를 비롯한 지자제선거 공약, 노인 복지종합대책확정(06/07) 종합적인 산업인력 개발체계 구축 계획안-고령자 여성 장애인등 유휴인력(290만 명) 활용 (05/18 한겨레) 장애우등 조건부 면허제(05/19 중앙), 사회복지 공동모금법 연말 시행계획 검토(05/30 세계), 장애인복지공장 설립 발표(06/02) 노인․장애인 의료보험 혜택 연중 365일로 확대(06/05) 등이 있다. 또한 장애우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산재사고와 관련해 첨예한 대립을 빚고 있는 근로자파견법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05/15 한겨레)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정책관련 기사는 우선 지난 5월 18일 본격 활동을 시작한 국민복지기획단 관련 기사를 들 수 있다. 이 기획단은 3월 23일 삶의질 세계화 구상에 따라 결성되었으며 8월까지 정책토론회 등을 거쳐 국민복지중장기계획을 마련, 11월 세계추진위를 통해 보고할 예정으로 있다.(05/19 동아)
김 대통령은 이어 삶의 질을 위해서는 사회보장제도도 개선되어야 하고 사회 안전체계도 왁립되어야 한다면서 앞으로 장애우, 소년소녀가장 등 저소득 불우계층과 노인과 여성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성장과 복지가 균형을 이루는 한국형 생산적 복지의 청사진을 당부해 복지에 경제 논리를 철저히 도입할 것임을 명백히 했다.(05/19 서울)
첫 시행되는 지자제선거 공약 중 장애우와 관련된 공약들도 관심을 끄는 내용이다. 그러나 여야가 발표한 4대선거 공약 중 장애우와 관련된 것은 고작 민주당의 장애우 보조시설 확충이 눈에 뜨일 뿐 민자당은 단 한 건도 포함돼 있지 않아 장애우들의 표를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민주당은 건강한 삶과 환경 등에 주력한 느낌이 보이나 민자당은 97년까지 10대 경제대국 달성을 내세워 여전히 성장에 우선을 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05/20 국민)
서울시장 후보들의 공약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정원식 후보는 노인문제에 관해서 복지시설 확충보다는 은퇴한 노령인구가 파트타임 형식으로 자원봉사를 하며 경제보조를 받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장애우와 관련해서는 보조되는 지원금을 대폭 확대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을 내세웠다.(05/31 세계)
조순 후보는 노령화사회에 대비해 노인전문병원, 노인 방문 건강진단, 노인직종개발과 취업정보서비스 제공을 고려하고 있다. 장애우를 위해서는 장애우복지관 확충, 중증장애우 재가복지 봉사센터 설립, 업무활성화를 통한 방문서비스 확대, 사회복지전문요원 별정 5급직까지 승진보장 등 근무상황을 개선해 나간다는 생각이다. 정원식 후보에 비해서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문제에 비해 다음 순위로 밀려나 있다.(06/01 세계) 박찬종 후보는 대체로 시민서비스, 총체적인 안전 진단, 환경 등을 내세우고 있고 노인과 관련 노인복지센터 건립을 내세우고 있다. 세 후보의 공약에서 그다지 획기적인 장애우 관련 정책을 찾아 볼 수 있다.(06/02 세계)
복지공장, 조건부 면허, 또다른 차별
장애우 복지공장 설립과, 장애우 조건부면허제, 그리고 공동모금법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법안들로서 앞으로도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9월부터 운영되는 장애우 복지공장은 10인 이상 고용하는 복지 공장을 짓는 기업이 전체종업원 중에서 장애우 70%이상 중증장애우 50% 이상을 고용할 경우 투자비용의 50% , 장애우 시설 설치비용의 3분의2 무상지원 등의 혜택을 주겠다는 정책이다.
어찌 보면 대단히 획기적이고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는 정책으로 보이나, 예산이 따로 책정되는 것은 아니고 이미 적립된 장애인고용촉진 기금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정부가 소위 말하는 생산적복지의 한 형태로 자칫 장애우들의 고용형태가 분리고용으로 고착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06/03 중앙)
장애우 조건부 면허는 자동변속기(오토매틱)차량, 한정 의수․의족․보청기 착용, 청각장애우표지 등 특정조건에서만 운전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서 이같은 조건내용을 면허증에 표기하지 않으면 무면허운전으로 처리된다. 이는 장애우들이 운전에 결격사유가 있음을 은연 중에 내포하는 것으로서 또다른 차별로 여겨진다.(05/19 중앙일보)
또한 경기호황으로 인한 인력수급대책을 위해 제정경제원이 검토하고 있는 근로자파견법은 불법적인 근로자 공급사업을 합법화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인력사장 노예제도로 볼 수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노동자들의 단결권 자체가 원천 봉쇄되고 중간착취가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산업재해사고가 간접 고용으로 처리됨으로써 업주가 부담을 덜게 된다는데 있다. 벌써부터 노동계에서는 이에 대해 반발 움직임이 일고 있다.(05/15 한겨레, 전국시설관리 노조연맹 지도위원 안중원씨)
정보통신부가 5월2일 발표한 초고속정보통신을 이용한 원격시범사업 계획은 비록 시범사업이기는 하지만 시대변화를 반영하는 정책이다. 이중 장애우 재활을 위한 원격복지시스템은 장애우 재활에 필요한 전문인력과 시설을 갖춘 대학 공공기관과 장애우수용시설을 광케이블로 이어 장애아동 및 장애우에 대한 원격진단 및 평가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멀티미디어를 통한 시각기능훈련 및 언어지도, 원격수화교육, 전문가와 보호자간 원격상담서비스, 음성문자 전환서비스 등이 도입될 예정이다.
이밖에 의료시설이 낙후된 농어촌지역 보건소 등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료망사업과 원격교육 시스템 등도 장애우복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05/29 중앙) 그러나, 정보추세에 따르는 것이 필요하고 시의 적절하다 해도 기초적인 복지조차도 토대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정보화서비스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아직은 수요계층이 거의 없어 몸은 조그맣고 머리만 큰 전시적 행정이 될 우려가 있다.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사이를 메꾸어 주는 다양한 복지서비스와 충실한 행정이 선결되지 않고서는 효과적인 정보화 서비스는 어려운 것이다.
학생자원활동 물지각으로 치닫아
해외관광개발(주)의 장애우대상 해외여행상품 개발은 장애우의 높아진 경제 수준에 때맞춘 반가운 소식이었다. 박윤구 사장(장애우)에 따르면 선진국에선 장애우 전용 여행사-관광안내원-렌트가가 있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데 비하여 반해 국내 여행사에서는 번거롭다는 이유로 아예 신청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우 해외여행상품은 해외여행에 관련된 일체의 업무를 대신해주는 한편 기내에서 이동할 수 있는 특수휠체어를 갖추고 수화통역 직언을 배치한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중증장애우도 참가할 수 있는데 보조요원이 기내에서의 용변처리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06/01 세계)
자원봉사활동을 종합생활기록부에 기재하기로 함에 따라 학생들의 자원활동 부쩍 늘고 있으나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대책이 시급하다. (06/04) 학생들의 봉사활동 이라 봐야 시간 때우는 수준에 불과하면서도 억지 춘향식의 봉사를 하고 실제보다 많이 일한 것으로 기록해달라고 떼를 쓰는 등 웃지 못할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주말만 되면 불필용하게 많은 학생이 몰려들어 봉사활동 확인서를 강요하고 양로원에 VTR을 사주는 조건으로 봉사활동 확인서를 요구한 학부모도 있었다. (06/10 경향) 이 때문에 복지시설로부터 항의가 들어오고 활동 나온 학생들 때문에 상처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섣부른 점수 높이기 봉사경쟁이 오히려 위화감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학교차원의 사전교육과 자원활동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교육프로그램 도입이 시급하다.
이밖에 교육관련 기사로는 교육개혁위원회가 5월 31일 발표한 교육개혁안이 눈에 띄고 부담이 과중한 특수교육, 특수학교 학급 과밀화 등을 들 수 있다. 교육개혁안은 장애우등을 위한 원격통신교육, 특례입학의 확대, 특수학교 설립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특례입학 대상 대학이 18개 대학으로 대폭 늘게 된다. 중앙일보는 ‘우리아이들 어떻게 자라나?’라는 기획 연재를 하고 있는데 매달 30만원이라는 비싼 교육비를 지불해야 하는 자폐증 아동의 예를 들어 조기치료를 통해 적절하게 장애예방을 하지 못하고 있는 국가의 책임방기를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특수교사들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순환보직제와 안전교육 부실로 성인의 4배나 높은 아동들의 교통사고도 지적하고 있다.
글/이현준(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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