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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법인 다운회, 장애우 문학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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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회"라는 다운증후군 아이를 둔 부모들의 모임이 있다. 이 모임은 모인지 7년만에 부모들의 힘으로 스스로 사회복지 법인을 만들어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비장애우들과 함께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다운증후군 장애우 부모모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신지체 장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하나로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이다.
  과거에 얼굴이 몽고인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몽고리즘(지금은 쓰이지 않는다)이라 불렸던 "다운증후군"은 염색체 이상에서 발생한다. 부모의 정상적인 형질을 물려받지 못하는데서 발생하는데 아직까지 구체적인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지능이 떨어지고 신체가 허약한게 보통이고 유전병이라는 오해를 살 경우가 있지만 유전과는 거의 무관하게 나타난다.
  1987년도 구로구 항동에 살고 있는 "성베드로학교"에선 다운증후군 자녀를 둔 어머니들과 이학교 김정구 선생님(현교감)의 주선으로 "다운증후군 부모회"라는 모임이 만들어 졌다. 이모임이 만들어진게 된 동기는 "아이들이 지금은 어느 정도 사는데 문제가 없지만 부모가 나이가 든 후에 아이들의 장래 문제를 생각해 보자"라는 데서 시작을 해 처음 15가족이 모임에 참여를 했다고 한다. 어머니들은 모임을 통해 정보도 교환하고 강사들을 초빙해 강연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92년도로부터 아버지들까지 모임에 참가하게 되면서 이모임은 단순 부모들의 친목 모임에서 벗어나 큰 단체로의 변화를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 그 전까지는 어머니들만 모이면서 아버지들은 강연이나 가족 캠프에만 참가했습니다. 우연히, 여름에 가졌던 가족캠프에서 부모모임에 관해 진지하게 토의를 했는데 주변에 많이 있던 여러 형태의 장애아 부모 모임들이 스스로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해 없어졌던 것을 보고 기왕에 모임을 할거면 아예 법인을 만들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습니다"라고 현재 총무를 맡고 있는 안계희(건설업)씨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들이 모임을 참여한지 불과 2년만에 "다운증 부모회"는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재산을 출현해 다운회(회장 홍정숙)라는 정식 명칭을 가지고 새롭게 모임을 출발하게 됐다.


다운증에만 국한하지 않아
  다운회는 우선 첫 사업으로 정신지체 장애우들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다운센타(원장 성희선)"을 설립했다. 이 다운센터는 법인이 설립되기 전 93년 6월 장충동에 2층 건물(현법인건물)에 "직업 훈련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서비스에 효율성을 기하기 위해 사회 복지를 전공한 전문인들에게 직접 센터의 업무를 맡게 하였다.
  다운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의 성격은 다운증후군 장애우 뿐만 아니라 정신지체 장애우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일상생활과 사회적응․심리 적응, 직업 적응을 토대로 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그 첫 번째로 "직업 훈련"프로그램을 들수 있다. 이곳의 직업훈련 교육은 다른 훈련원에서 하는 교육에 비해 매우 특정적인 부분이 있다. 일단 이곳에 들어온 장애우는 개개인이 가지고 잠재력과 적성 등을 판단하기 위해 1년 동안의 기본 훈련과정(직업전 교육 및 심리교실)을 교육받는다. 그 다음 그에 맞는 작업현장을 찾아 약1년 정도의 현직훈련(지원고용) 과정을 거친 다음 마지막 취업까지 이곳에서 알선한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두 기수의 훈련생을 배출했고, 몇 명의 장애우는 현장훈련 중에 취업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다운센터는 현장교육을 중심으로 장애우라 해서 소외 받았던 나이트장, 볼링장, 호프집 등과 심지어는 농촌 봉사활동까지 정신지체인을 참가시켜 장애우의 정상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다운센터에 들어갈 수 있는 장애우의 자격요건은 정신지체 장애우면 누구나 가능하고 매달 5만원 정도의 교육비를 내면 2년 동안의 교육을 이수하게 된다. 모집은 매년 3월 매스컴을 통해 공개적으로 한다.
  이밖에 올 1월에 개원한 "언어치료실"이 있고, 다운증후군 장애에 대한 모든 부분(양육, 기관안내, 정보등)에 대한 질의 상담을 하며 1년에 4번의 회보를 통해 재활에 관한 최신정보를 회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원장1인, 특수교사 1인, 사회복지사1인, 사무원1인 해서 5명의 직원이 각 영역별로 일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사회통합의 원칙
  다운회 부모들은 다운센터에서 실시하는 직업훈련을 통해 지금까지 등한시했던 정신지체 장애우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희 훈련원을 수료한 장애우들 중에 취업한 원생들이 몇 됩니다. 그 중에 한명은 현장교육 도중에 취업을 한 원생이 있는데 그 회사 기업주가 비장애우에 비해 손색없게 일하는걸 보고 그 자리에서 취업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웠던 건 전에는 "아빠, 아빠"하고 불렀던 아이가 금새 "아버지"라고 부르질 않나 심지어는 "어디가니?" 하고 물으면 "회사에 출근 합니다"라고 대답을 해 저희들을 매우 놀라게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자칫 아이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는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다운증 장애우도 있습니다. 지금, 어린이집 보육사로 현직훈련 중인데 너무나 성실하게 일을 해 장애우라 문제가 되지 않았나? 라는 주위 사람들의 우려를 일축시켰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자기가 불러 보기만 했던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자신도 직접 듣게 되니까 "나도 선생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행동 하나하나도 신경 써서 하게 되어 매우 좋아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점에 비추어 정신지체 장애우의 교육과 사회통합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인식하게 됩니다"라고 원장인 성희선씨는 얘기하고 있다.



끊임없는 노력의 성과
  다운회가 센터를 만들고 법인이 되기까지 정말 빠르게 일을 추진해올 수 있었던 건 다운회가 있기 전부터 다운증후군에 관한 일을 해왔던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과 다각적인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부모들은 서울장애인복지관서 끊임없는 교육을 받고 법인을 만드는 데까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또, 부모들은 법인 설립전부터 부모회가 잘 운영되고 있는 광주 엠마우스 복지관(원장 천노엘신부)등 여러 시설을 방문해 운영․실태 등을 답습했고 심지어는 일본 고야기회(다운증부모회)까지 방문을 하여 자칫 힘만 낭비하고 사라져가는 부모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런 취지로 다운증후군 장애에 대한 홍보와 정보교류를 위해 다운회에서는 92년부터 해마다 "다운 부모 교육"을 개최하고 있다. 전국에서 모인 다운증장애우와 부모들은 이곳에서 실시하는 하루 동안의 일정을 통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아이들의 증세와 양육법에 대해 통해 폭넓게 정보교류를 한다고 한다. 특히 올해부터는 그동안 서울장애인복지관의 주관으로 개최했던 것을 다운회에서 처음 준비하면서 실제적 사례를 중심으로 한 연령별, 욕구에 따른 편차를 고려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점차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다운증후군에 대한 정보를 부모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장애우의 삶의 터전을 만들기 위해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운회" 부모님들이 내세우는 건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고 있는 정신지체 장애우의 사회통합이다. 단순히 내 자식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일반 사람들과 함께 살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 "다운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다.
  그래서 다운회는 많은 일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다운센터를 우리나라에서 다운증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종합센터로서의 기능으로 발전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직업을 가지면서 사회에서 살수 있는 그룹홈과 실버타운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앞으로의 사업 구상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장애우들의 모임이 있다. 이밖에도 장애우 자식들을 둔 부모회도 많이 널려있다. 그러나 이런 모임들이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쳐 쓰러져가고 특히 장애를 둔 부모들의 모임은 서로 고통만을 위안해 주다가 사라져 가는 게 현실인 듯 싶다. 이런 시점에 다운증후군 장애우 부모들의 모임인 "다운회"가 이땅의 장애우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 할수 있는 주체가 장애 당사자와 부모들이라는 걸 인식하게 하는 "타산지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현제/ 본지기자

 

/인터뷰/
"사회통합에 목표를 두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운회 총무 안계희씨


-현재 다운증 장애우는 어느 정도 되는가
=정확하지 않지만 전인구의 0.1%, 약4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법인 설립과정을 얘기해 달라
=92년도에 다운증 장애아를 자식으로 둔 아버지들이 처음 모여 논의를 했다. 그래서 계속 모임을 가졌던 15가족 중에 9가족이 법인 설립에 필요한 7억5천만원을 만들기 위한 특별기금을 만들자는데 합의했다. 그리고 94년 1월부터 설립준비를 하면서 그해 8월27일 사회복지법인 "다운회"로 출발을 하게 됐다.
-후원도 없이 많은 기금을 모으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하는데 이상하리만큼 문제가 전혀 없었다. 처음에 법인설립에 필요한 자금이 엄청나 충분한 기간을 가지고 생각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모두 조기에 법인을 설립하자는 데 동의했다. 부모님들 중에는 시가 2억5천만원이 되는 주택(현 다운센터)을 내논 분도 있었고, 3-4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낸 분도 있었다. 그래서 당초 계획한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모을수 있었다.
-다운회 부모들이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 부모들이 굳이 말하자면 중류층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형편이 누구의 도움만을 바라고 있기에는 너무도 막연하고, 또 이 같은 일은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할 사업이기에 마침 우리가 필요성을 느꼈을 때에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이 있었지만 시작을 해야 한다는데 의견일치를 봤다.
-다운증후군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는 모든 프로그램의 목표를 "정상화"라는 취지로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장애우의 차별화를 반대하면서 능력별 사회통합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장애우의 부모의 인식과 역할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선 정확한 실태조사를 한후 현실적인 지원사업을 해주기를 바란다. 장애우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장애우 복지 정책은 근본적으로 잘못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순수한 부모회에 정부와 각 사회 단체의 재정적인 뒷받침을 바란다.

 

상록수첨럼 푸르게 푸르게.....
장애우 문학모임 "상록수회"


88년 5월 성민장애인교회를 중심으로 장애우들이 뜻을 모아 독서모임인 "상록수회"를 창립했다. 독서를 통한 대리체험으로 진취적인 사고를 배양하고 더 나아가 공동체를 통해 회원들의 자립을 돕자는 꿈을 가지고 있는 상록수회는 9년이 지난 지금 1백여명의 회원이 독서토론과 야외백일장, 사회전을 통해 함께 하고 있다.


늘 푸르른 상록수 회원들
  상록수회는 최근 우울한 일이 생겼다. 창립멤버중 한사람인 홍충구씨가 6월초 27세의 젊은 나이로 소천을 한 것이다. 창립멤버 중 또 하나사람인 김태환씨는 90년 소천(당시 27세)했다.
  이제 상록수회 초기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창립멤버중 한사람이었던 함영준씨에게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필자와 함영준 형과는 오랜시간 친분을 나눠온 사이이다. 함영준 형은 필자가 상록수회의 전설을 물었을 때 잠깐 추억에 빠진 듯 망설이더니 나직하게 말을 꺼냈다.
  "처음 상록수회의 시작은 우연이었다고도 볼 수 있지. 그러나 상록수는 소천한 태환이의 꿈이 영글어져 만들어진 결정체라고 단정 지을수 있어. 그만큼 태환이의 열정이 컸고 그 열정이 창립을 주도했으니까..."
  상록수회의 역사는 9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7년 5월 21일 성민장애인교회가 구파발에 문을 열었다. 이때 창립멤버인 김태환씨, 함영준씨, 홍충구씨(이상근이양증 장애우)는 처음으로 만났다. 그날 이후 자연스럽게 자주 만났고 그러다 보니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당시 이들의 공통 화제는 바로 책이었다. 김태환씨가 책을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책을 자주 읽을 수 있었다. 읽는데서 그친 게 아니라 독서 후의 감상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같은 해 생긴 부름의 전화의 도움으로 셋은 김태환씨 집에서 자주 만났다. 셋은 의기투합해서 독서클럽을 만들기로 했다. 이때 만난 초창기 부름의 전화 자원활동가 였던 김부일(장애인 콜택시 전 회장) 씨가 초창기 상록수회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해가 바뀌어 88년 1월, 그들 셋은 준비모임을 갖고 발기문 낭독을 했다. 그로부터 매달 성민교회에서 만나서 책을 선정해서 읽고 독후감을 발표했다. 88년 5월 상록수 독서회는 정식으로 출범한다. 처음에 상록수는 이들 세 사람과 다른 회원 수명이 모여 이끌었다. 이 시기에 상록수회 프로그램들의 기초가 다져졌다. 이들의 첫 야외모임은 88년 강릉 경포대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이후 백일장 등 야외행사의 효시가 된다.
  89년에는 그림을 전공한 김태환씨의 누나가 시에 그림을 입혀 교회에 전시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것이 후에 상록수 시화전으로 발전한다. 상록수회 회가도 만들었다. 처음에는 김민기의 상록수를 썼으나 지금은 함영준씨의 형님인 함영국씨(전 햇빛촌 멤버, 겨레의 노래"이세상에" 자곡자)가 작곡한 곡을 쓰고 있다. 처음에는 잔디네(한국근육디스트로피 협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소수였던 회원이 후에 근이양증 장애우는 물론 뇌성마비, 소아마비, 류마티스, 왜소증 등의 장애우들과 비장애우 회원들까지 포함되었다.
  상록수회는 처음부터 꿈이 있었다. 애당초 독서를 매개체로 삼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회원들은 외출의 기회가 거의 없이 지내다보니 생각이 편협해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여 그러한 상태를 극복하는 길은 독서를 통한 대리체험이라고 판단을 했다. 궁극적으로 대리체험을 통해 진취적인 사고를 배양하고 더 나아가 공동체를 꾸며 회원들이 자립을 돕자는 암팡진 꿈이다. 그 실천으로 김태환씨는 90년 5월 비디오 가게를 차렸고, 함영준씨는 같은 5월에 국립재활원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배웠다.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김태환씨는 그해 10월 소천했지만 그 꿈만은 여전히 살아남아 후배들에 의해 그침 없이 진행되고 있다.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가는 상록수회
  오수미 현 회장이 상록수를 맡은 이후 상록수는 본궤도에 오른다. 자체 자원봉사팀을 구성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현재 상록수의 위상은 당당하다. 회원수는 장애우 회원50여명을 포함 1백여명을 헤아리고 있다. 또한 상록수회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그 바탕은 물론 독서토론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행사는 각각 5회와 6회째를 맞고있는 야외백일장과 시화전이다. 특히 매년 보라매공원에서 개최하는 시화전에서는 시화 작품과 회원들의 작품집을 판매하고, 재작년부터는 시화를 엽서로도 제작하고 있다. 그 밖에 문화행사로 연극을 관람하기도 한다. 작년부터는 사회적응 훈련과 일일찻집을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했다.
  회원들의 작품집도 여러 권 발행했다. 우선 첫 모임서부터 발간한 회지가 단 한번의 결호도 없이 70호째 나왔고 상록수 시집 세권과 상록수 문집 세권이 나왔다. 개인 문집으로는 김태환씨의 유고 작품집 "또 하나의 꽈배기"가 함영준씨가 경영하는 출판사 아리마을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상록수회는 회원들의 문학수업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김석환 교수(시인, 명지대 문창과)와 현길언 교수(소설가, 한양대)를 모셔서 강의도 듣고 작품 지도도 받는다. 몇몇 가능성이 보이는 회원들은 우편을 통해 작품에 대한 자문과 지도를 받고 있으며 일부 회원은 수필로 등단하기도 하고, 곰두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많은 어린 회원들이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현재 상록수회의 가장 큰 과제는 전용사무실을 얻는 것이다. 지금 1천5백만원 가량이 적립되어 있으나 목표액 4천만원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사무실이 마련되면 문학수업, 컴퓨터 , 수공예, 미술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이다. 특히 문화강좌는 회원들이 기거하면서 문학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마련하고 전문가를 초빙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역주민과 장애우들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현재 성민교회 내에 비치된 장서 2천여 권을 바탕으로 작은 도서관을 운영, 주민에게 대출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수많은 장애우 임의단체가 있지만 상록수회 처럼 8년이란 오랜 기간을 변함없이 꾸준히 활동해온 단체는 드물 것이다. 이러한 힘에 대해서 오수미 회장에게 물어보았다. 오수미 씨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글쎄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요... 아마도 그 첫 번째는 믿음이고 두 번째는 상록수회의 비전에 대한 확신이 아닐까요? 상록수회는 각자에게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어려운 일이 많지만 신앙의 힘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희망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이 있지요.  그리고 저희 상록수회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끌어가고 있어요. 차량으로 물질로 지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고 회보제작에 도움을 주는 이, 봉사해주는 많은 친구들, 책을 기증해주시는 분, 광고후원, 기도로 도와주시는 분들도 큰 힘이 되지요...."
오수미  씨는 상록수회의 의미에 대해 이런 말을 덧붙였다.
  "상록수를 모임의 명칭으로 삼은 것은 늘 푸르게 살자는 의미도 있지만 심훈의 상록수를 연상시키기도 하지요. 우리가 장애우문제 해결을 위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자는 다짐이 들어있어요. 저희는 장애우가 처한 현실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안다고 자부합니다. 저희는 독서모임이지만 행동만 못할 뿐이지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나름대로 의식을 갖고 있고 활동해 왔습니다. 현장 적응훈련도 이러한 취지지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날 수 있고 편견 없이 어려움을 같이 느끼고 호흡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저희가 조그만 힘이나마 보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상록수회는 장애의 특수성으로 인해 불시에 세상을 떠나는 회원들이 유난히 많다. 그러나 슬퍼하고만 있을 수 없다. 눈물 한 방울로 지워내고 그들이 남기고 간 꿈들을 이뤄야 한다는 사명감을 상록수회 회원들은 가지고 있다.

 

이현준/ 1965년생, 근이양증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작성자이현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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