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포레스트 검프"라는 장애우 > 대학생 기자단


[김종철 칼럼]"포레스트 검프"라는 장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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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라는 장애우

요즈음 영화들을 보면 나라 안에서 만든 것이건 밖에서 들여온 것이건 폭력과 섹스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주먹으로 사람을 때리는 "원시적" 수준의 폭력은 관객을 자극하기에 어림도 없기 때문일까, 갖은 흉기를 동원해서 찌르고 쑤시고 쏘아 죽이는 장면들이 가위질도 당하지 않은 채 어른들과 청소년들의 눈과 머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섹스도 갈 데까지 간 느낌이다. 남녀 사이의 사랑이 정신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건강한 육체적 고통과 함께 가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인간의 감성과 천박한 관능만을 자극하는 섹스 일변도의 영화는 순간적으로 보는 이의 감각에 파고들 뿐, 여운이 오래 가는 예술적 감동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내가 본 미국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그런 의미에서 요즈음 보기 드문 작품이었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그 영화가 올해 미국에서 흥행 1위를 기록했고, 어떤 장애우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정도의 지식밖에 없었다. 그러나 2시간 반이 넘는 긴 시간동안 그 영화는 관객을 웃기고 울리면서 흔히 말하는 정상적 인간과 비정상적 인간의 차이가 오만과 편견의 산물임을 깨닫게 해준다.
 포레스트 검프는 지능지수가 75인데다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가 부실해서 쇠로 만든 장치로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를 감싸고 어렵사리 걸어야 하는, 그야말로 정신적·육체적 장애인이다. 그는 낮은 지능과 우스꽝스러움 걸음걸이 때문에 동네와 학교에서 늘 웃음거리가 되고 개구쟁이들에게 놀림과 학대를 당한다. 어는 날 그는 같은 나이 또래의 어린이들에게 쫓기다 젖 먹은 힘까지 다 내어 달리는데, 그 과정에서 다리의 보조장치가 떨어져 나가면서 놀라운 속도로 뛸 수 있는 소년으로 변한다. 그의 달리기 실력은 너무나 뛰어나서 그는 고향인 알라바마 주의 명문 대학에 미식축구 선수로 스카웃된다. 앞만 보고 달리는 그를 잡을 대학들에서 뽑힌 최우수 선수 안에 들고 케네디 대통령까지 만난다.
 그는 오리처럼 걷던 어린 시절부터 다정한 벗이 되어준 제니라는 여성을 사랑한다. 같은 대학에 들어간 제니는 포레스트 검프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늘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면서 다른 청년들과 자유분방한 교제를 한다. 대학을 졸업한 포레스트는 사병으로 육군에 들어가서 베트남전쟁터로 간다. 거기서 그는 "버바"라는 애칭을 가진 흑인 병사와 진한 우정을 나눈다. 버바는 새우잡이 배선장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젊은이로 틈만 나면 포레스트에게 새우 이야기를 들려준다.
 포레스트의 소대장인 댄 중위는 미국의 명문 군인가문 출신으로 대단한 긍지를 지닌 장교이다. 어느 날 그들의 소대는 베트콩의 기습을 받는다. 모든 소대원이 전사할 위기에서 포레스트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기와 뛰어난 달리기 실력으로 많은 동료들을 구하지만 중상을 입은 버바는 결국 숨을 거두고 소대장은 두 다리를 잘리는 장애우가 된다.
 하루 아침에 전쟁 영웅이 된 포레스트는 미국에 돌아가서 최고무공훈장을 받는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워싱턴에서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대중집회를 구경하다 제니는 만나게 된다. 그러나 가수가 되어 환락에 빠져 사는 제니는 포레스트의 사랑을 뿌리치고 방황을 계속한다. 포레스트는 이번에는 탁구선수가 되어 70년대의 그 유명한 "핑퐁외교"의 일원으로 나선다. 거기서 세계적 스타가 된 포레스트는 광고회사들이 억지로 안겨주는 거금을 받아 버바의 유족을 돕는 한편 새우잡이 배를 사서 바다로 나간다. 두 다리를 잃은 그의 소대장이 함께 배를 탄다. 처음에 실패를 거듭하던 그들은 마침내 새우떼를 거듭 건져 올려 거부가 된다.
 이런 저런 기업을 차려 모자람 없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된 포레스트는 제니에 대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고 인생에서 뚜렷한 의미를 찾지도 못해 무조건 미대륙을 달리는 일을 시작한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시작한 그 일이 다시 그를 미국언론의 초점이 되게 만든다.
 그가 미국의 동쪽에서 서쪽까지 달리면서 많은 추종자들까지 생겨나게 한 뒤 집으로 돌아와서 지내던 때 제니로부터 편지가 온다. 어느 도시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제니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다. 제니는 그 아이가 포레스트와 동침해서 태어난 아이라고 고백한다. 포레스트는 제니에게 결혼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제니는 고칠 수 없는 바이러스병(에이즈인 듯)에 걸렸다면서 사양한다. 포레스트의 끈질긴 구혼 끝에 두 사람은 결혼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제니는 세상을 떠난다. 제니가 포레스트 검프라고 이름 지은 아들은 아버지와 달리 아주 총명하다. 그 아들이 아버지가 타고 다니던 학교버스에 오른 뒤 깃털 하나가 하늘로 솟아오른다. 아버지는 그 깃털을 바라보면서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이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포레스트 검프>는 단순히 장애우의 "인간승리"를 그린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영웅의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나는 그 영화는 온갖 계산과 욕심과 다툼으로 얼룩진 세상에 보내는 한 맑은 인간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를 바보 또는 "병신"이라고 조롱하는 친구들이나 이웃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는 끊임없이 시달림을 당하면서도 자신을 저주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곧은길로 달려간다. 포레스트 검프의 이 순결한 정신과 행동은 그 앞에 나타나는 모든이들을 감화한다. 만신창이가 된 제니를 너그럽게 받아들여 사랑을 쏟는가하면 장애우가 되어 비뚤어진 길을 가는 소대장까지도 마침내 건강한 삶을 돌아오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포레스트를 더 이상 장애우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그는 그 어떤 "정상인"보다도 인간적이며, 보통 사람들이 권모술수와 기교로 이루려 드는 것을 순수한 마음과 행동력으로 성취하는 능력을 보인다.
 포레스트가 간호사 제니를 찾아가기 전에 버스정거장에 앉아 옆자리 사람들에게 고백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곳곳에서 보는 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게 하다가 그가 그 어느 천재보다도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비범한 인간으로 발돋움하면서 사랑으로 세상을 껴안을 때는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4백만 장애우들을 생각했다. 그들 모두가 포레스트처럼 놀라운 삶의 길로 뛰쳐 오를 수는 없겠지만, 그와 같은 마음으로 위축되지 않고 살아간다면 어떤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포레스트 검프는 아주 따뜻하고 겸허한 장애우로서 그들에게 빛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모자람이 많은 글을 읽어 주신 장애우들과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지난 1년동안 함께걸음에 좋은 글을 주신 김종철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작성자김종철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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