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비정규직, 장애인이라는 삼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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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부산인권센터(이하 센터)로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병원 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딸이 병원 측과 싸우고 있으니, 딸을 좀 도와달라는 어머니의 전화였다. 그 간곡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딸이 혼자가 아니라는 말이라도 해달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연락을 취하고, 그날 저녁 바로 면접 상담을 진행했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은 실장을 비롯해 총 13명. 이중 비장애인 직원은 6명, 장애를 가진 직원은 7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장애인 직원 중 한명이 사표를 쓰며 퇴직 사유에 ‘부당한 대우와 차별’이라고 적었더니, 병원 측에서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았느냐고 했고, 그것을 계기로 다른 장애인 직원들도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을 적고, 함께 연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 직원들이 겪었던 부당하고, 차별적인 대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양쪽의 다리 길이가 차이가 나서 특수화를 신는 장애인에게 병원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이유를 들어 특수화 착화를 금지시켰다. 또 점심 시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쉬라고 했다는 것이다. “환자가 몸이 아파 병원에 왔는데, 장애인을 보면 여기 직원들이 몸이 아픈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는 이유였다.
매년 진행되는 직원 야유회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 2012년에는 야유회가 산행으로 진행되어 장애로 인해 참석이 어렵다고 하자 “멀쩡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 하면, 2013년에는 다소 평평한 길을 걷는다고 해 장애인 직원 전원이 참석 의사를 밝히자 오히려 “어떤 산인지 아느냐? 등산을 해보긴 했느냐? 성한 사람도 가기 힘든데 그 몸으로 가겠냐? 같이 가는 사람 부담스럽고 신경 쓰인다.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참석해서 잘 걸어가면 인간승리지만 못 따라오고 쳐지면 민폐다”라고 참석을 직‧간접적으로 거부했다.
또한 업무나 병가 사용에 있어서도 차별은 비일비재하게 이뤄졌다. 장애인 직원들은 아무리 오래 일을 했어도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비정규직으로 근무를 했다. 하지만 실상은 정규직에서 받는 콜까지 받도록 해 헤드폰을 두 개씩 끼고 근무하는 날이 많았다. 비슷한 시기, 같은 의사에게 받은 진단서(눈병)를 제출해도 비장애인 직원만이 병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장애인 직원은 병가 사용이 반려되곤 했다. 팔에 화상 흉터가 있는 화상 장애인 직원이 1층 원무과로 자리를 옮겼을 때는 긴팔 유니폼을 입는다는 이유로 하루만에 다시 지하에 있는 콜센터로 돌아왔다. 실장은 메신저를 통해 장애인 직원에 “내 옆에는 오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과연 이 모든 일이 작년에 일어난 것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다. 센터는 이 당사자들과 50차례가 넘는 상담을 진행했다. 병원 노조에 항의를 하고, 인권위 진정, 언론보도 등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그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국가인권위의 중재를 통해 병원 측의 사과가 있었고 실장의 인사이동이 이뤄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진정을 냈던 직원들은 당시 무기계약직 시험을 앞두고 있었는데, 시험을 통과한 직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이 사례은 2013년부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게 된 의료기관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또한 당사자들이 대표적 사회적 약자인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이들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때문에 센터는 권익옹호에 더 큰 필요성을 느끼고 지원을 했다. 또한 다수의 상담 당사자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문제를 적극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노동조합이나 병원장과의 면담, 인권위 진정 등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힘썼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경우, 주요 가해자 직원이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단순한 사과로 마무리 하려 한 점에 대해 깊은 실망을 안겨줬다. 그리고 국가인권위 장애차별에 대한 진정이 지역 사무소에서는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 조사관 개인의 성향 및 업무 파악에 따라 그 결과가 많이 달라진다는 점 등을 이번 사례 해결 과정에서 알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준비 미비로 당사자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다. 국가인권위 등 타 기관, 조직과의 연계 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상담 과정에서 더욱 긴밀한 협조와 연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퇴사까지 마음 먹고 일을 진행했으나 인권위 중재에 그친 점이 안타깝다. 비정규직으로 무기 계약직 전환 시험을 앞두고 있던 당사자들 대다수가 이 상담의 마무리 과정에서 계약 만료가 됐다. 많은 수의 장애인들이 비정규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환경에서 그 대우가 차별적임에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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