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학회] 문학적 장치로서의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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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매드아이 |
문학 세계에 빈번히 등장하는 장애인
데이비드 미첼(David T. Mitchell)과 세론 스나이더(Sharon L. Snyder)가 그들의 저서 서술 보정 장치(Narrative Prosthesis, 2001)에서 지적했듯이, 역사적으로 장애를 지닌 인물들은 문학 작품에 다양하게 등장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자면, 많은 어린이들이 접했고 지금도 접하고 있는 피터 팬에는 후크 선장이라는 장애인이 등장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해리 포터 시리즈의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는 왼쪽 눈을 상실한 마법 방어술 교수 매드아이가 등장하고, 미국 소설의 고전으로 소개되는 백경은 고래에게 다리 한 쪽을 잃은 장애인 선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국 문학에서도 이 같은 예를 확인할 수 있다. 심청전에는 시각장애인이 핵심 인물로 등장한다. 대표적인 현대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1925),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1935), 김동리의 무녀도(1936), 채만식의 탁류(1938), 이청준의 서편제(1976),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78)과 유익서의 비를 타고 오른 망둥이(1980)에는 청각, 시각, 언어, 성장, 지체 장애 등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가 등장한다.
이와 같이 문학 세계에 장애인이 자주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문학 속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폴 에버리(Paul Abberley)는 장애인 집단이 다른 소수 집단과 공유하고 있는 특징들로서 경제적 불이익, 사회적 멸시, 정치적 차별, 그에 동반하는 심리적 상처 등을 열거하면서, 장애인 집단도 인종이나 성을 근거로 한 다른 소수 집단과 같이 억압받는 집단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사회적 장애 이론’을 제시했다. 즉 장애인도 육체적 또는 정신적 다름(difference)을 확대해 차별과 배제의 담론으로 만드는 자들에 의해 경제적 차별, 사회적 열등화, 정치적 억압을 경험하고, 주변화를 강요당하는 집단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에 등장하는 다른 사회적 소수 집단에 대한 관심과는 대조적으로 문학에서 제시되는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이 같은 문학과 관련된 장애인에 대한 미약한 관심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다행스럽게도 1990년대에 이르러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장애학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문학에 등장하는 장애인도 마땅히 받아야 할 관심을 받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저서 서술 보조 장치에서 미첼과 스나이더는 ‘장애학’을 육체적, 정신적 다름을 열등함의 근거로 간주하려는 예술과 정치를 포함한 모든 문화적 믿음과 태도의 본질을 드러내고, 그에 대한 대안을 추구하는 다양한 노력과 시도의 집합을 일컫는 것으로 정의했다.
재현(representation)과 문학의 영향력
후크선장 |
장애인과 관련된 문학은 대체로 장애인 본인에 의해 생산된 자서전, 타인에 의해 생산된 장애인의 전기, 장애인 작가에 의해 생산된 문학 작품, 그리고 비장애인 작가에 의해 생산된 문학 작품을 포함한다. 이 모두가 우리의 깊은 관심을 요구하지만, 이중에서도 특히 비장애인 작가에 의해 생산된 문학 작품은 재현 문제와 수사적 이용 문제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문학적 재현이란 넓은 의미에서 ‘이미지 만들기’ 그리고 ‘제시’의 문제와 연결된다.
장애학적 시각에서 장애인의 문학적 이용을 관찰한 학자들은 주로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우선 장애의 문화적 현장들(Cultural Locations of Disability)에서 스나이더와 미첼은 독자관객은 주로 “직접적인 장애 경험 밖에 머무는 자들에 의해 생산되어 온 장애인들의 삶과 경험과 몸의 문학적 재현”을 통해 장애인을 접하게 되는데, 이러한 비장애인들이 생산해내는 장애인의 이미지가 대체로 부정적이거나 제한적이라는 것이 첫번째 문제다. 문학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의 주요 일 중의 하나가 등장 인물들을 통한 이미지 생산이고, 이렇게 생산된 이미지는 독자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때문에 문학이 제시하는 장애인과 관련된 이미지, 특히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한 관심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접해 온 장애인의 문학적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많은 문학 작품들이 피터 팬이나 백경처럼 장애인을 악이나 위험의 상징으로 사용해 왔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할지라도 다수의 작품들이 장애인 자신의 장애나 다른 사람의 장애와 관련된 경험을 잘못 재현했다. 나아가 장애인의 내재적인 인간적 복잡성을 무시하거나 축소시킴으로써 장애인의 삶을 평탄화시켜 일차원적으로 제시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장애인들은 자주 그들이 지닌 장애가 그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그려져, 장애의 다양성과 장애와 장애를 지닌 사람 사이의 관계의 다양성을 무시하거나 간과해 단순화시키는 경향을 보여왔다.
장애학적 시각에서 장애인의 문학적 이용을 관찰한 학자들이 지적한 또 다른 문제는 폴 로빈슨(Paul Robinson)이 관찰한 것처럼 “다른 모든 사회적 소수 집단처럼 장애인도 (중략) 예술의 주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술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장애인의 신체적 ‘기형’이나 행동적 ‘기행’이라는 특성을 등장인물의 차별화에 이용해 왔다.
뿐만 아니라 레너드 데이비스(Lennard J. Davis)가 주장한 것처럼 작가들은 흔히 장애 인물을 “‘정상’ 인물의 삶에 있어서의 어떤 문제점에 대한 균형으로서” 작품에 등장시켰다.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흔히 작가들이 오로지 은유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장애인을 이용해 왔다는 것이다. 조슈아 루킨(Joshua Lukin)을 말을 빌리면, 많은 작가들이 장애인들의 존재 그리고 그들의 삶과 경험을 은유로 압축했다.
이 문제에 대해 미첼과 스나이더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문학적 담론에서의 장애를 지닌 인물들이 갖는 주요 기능은 두 가지이다. 장애는 첫째, 흔히 사용되는 성격 묘사 요소로서, 둘째, 기회주의적인 은유의 장치로서 문학적 서술에 넘쳐나고 있다.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장애인들은 대체로 중심보다는 주변에 머물며, 작가가 의도하는 수사적 효과를 생성해 내는 기이한 모습의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2007년 드라마로 방영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이 두 가지 문제점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연작 단편 소설은 자본주의가 사회적 정의를 파괴하고, 인간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며,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제적 분배 제도로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 많은 독자들의 평가다. 그와 같은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성장 장애를 지닌 아버지와 그의 가족을 핵심적인 수사적 요소로 사용했다. 이것은 장애(인)의 기회주의적 이용이다.
나아가 작가는 성장 장애를 지닌 아버지와 그의 가족을 자본주의라는 주류에 밀려나 고통받는 무능력한 인물들로 그려냈다. 그 결과 장애를 지닌 아버지는 거의 구경거리로 전락했고, 때문에 이 연작 단편 소설을 접하는 사람들은 사회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작가의 주장에 공감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장애인 아버지에 대한 동정심과 혐오감이 뒤범벅된, 결코 즐겁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부정적인 이미지와 그에 따르는 불쾌한 감정은 작품 밖에 있는 (성장 또는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에게로 연장돼 그들의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장애인의 문학적 이미지에 대한 관심과 도전
문학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이제 우리는 장애인의 문학적 이미지 구성과 그에 따르는 사회적, 정치적 여파에 대해서 보다 더 크고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부정적인 이미지는 장애인의 삶, 그리고 그가 속한 사회의 다른 영역에까지 영향을 주는 심각한 현실적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세심한 관찰과 강력한 도전의 대상이 돼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장애인의 문학적 재현에 있어서 장애의 기회주의적 이용을 지적하고, 동정의 수사학을 비판하며, 잘못된 재현이라고 할 수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도전해 해체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이미지 생산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작가의 장애인에 대한 시각과 자세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여러 학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장애에 접근하는 모형이 있다. 이 모형을 간략히 소개하면 첫 번째로, 장애를 신비한 능력이나 악에 연상하여 생각하는 전통적인 접근 모형이 있다.
두 번째는 장애를 구호 단체나 자선 사업의 동정이나 호의, 또는 법적 조치를 통해 보상되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보상 모형이 있다. 세 번째는 장애를 병적인 현상으로 파악하면서 숨기거나 고쳐야 할 것으로 제시하는 의학적 모형이 있다. 이 모형에 기댄 사람들은 장애를 ‘개인적 비극이나 문제로 취급’하면서 장애로부터의 탈출을 강조하고, 소위 장애를 ‘극복’해 비장애인처럼 된 자들에게 갈채를 보내며,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동정이나 구호 또는 외면이나 경멸을 보낸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제시된 문화적 접근 모형이 있다. 로즈머리 갈랜드 탐슨(Rosemarie Garland Thomson)의 설명에 따르면, 문화적 접근 모형은 “장애를 인종, 성, 사회 계급, 민족, 그리고 성적 취향과 함께 숙고되어야 하는 또 하나의 문화적으로 구속된, 육체적으로 정당화된 다름으로서 재해석함으로써 몸과 정체성의 문화적 구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하려는” 접근법이다. 이 모형은 장애란 문화적 해석과 사회적 구성 과정을 통해 형성된 다양한 다름 중의 하나이므로, 사회는 이 점을 인식하여 다름을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장애인 이미지 생산에 관여하는 작가들에게 적극적으로 주문해야 하는 것은 문화적 접근 모형이다. 문화적 접근 모형의 자세는 장애를 인종, 성, 사회 계층 등과 함께 고려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장애인을 비정상적 또는 열등한 상태로 간주하거나, 동정이나 호의의 대상으로만 파악하거나, 기회주의적인 수사학적 이용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시각과 태도에서 비롯된 장애인의 부정적인 또는 잘못된 문학적 재현을 지적하고, 그런 재현이 독자들에게 주는 파괴적인 영향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나아가 흑인과 백인의 피부색 차이를 그저 다름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장애인도 그저 또 하나의 다름을 가진 존재로 수용하는 문학과 그런 문학을 생산할 수 있는 작가의 시각과 태도를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손홍일
대구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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