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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희망찬 새해를 염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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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새해를 염원하며
이천재/민주주의 민족통일 서울연합 상임의장

 1993년 1월 1일 7시 몇 분이던가!
 그 준엄한 북악성상에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새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많은 젊은이들에 둘러싸여 더듬더듬 산을 오르면서 천만년 변함없는 태산의 의연함을 보면서, 사람이 모여사는 사람세상에서도 천만 년을 두고 변할 수 없는 평화의 질서가 어떤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늙은 사람의 부질없는 한담같지만 의욕으로 가득찬 당태종이 변방 정착촌을 지나다 한 농부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네가 생각하는 소원이 무엇이뇨" 하고 묻자, "예. 소인의 소망은 별것아니올시다. 그저 저의 늙은 애비가 소매가 긴 비단옷을 입고 늙음을 즐기고, 소인의 아내가 베틀에서 베를 짤 수 있고, 어린 자식이 닭싸움을 즐길 수 있으며, 소인은 건강하게 밭을 갈 수 있으면 그뿐이올시다." 했다. 무한탐욕, 무한권력으로 밤낮을 지새웠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였던, 다만 이 한 토막의 우문현답이 시사하는 의미는 오늘도 유효하다.
 이를 소위 문명시대에 대입을 해보기로 하자. 대통령이 묻기를 "농부여 귀하의 소망을 알고 싶소." "글세 올시다. 대를 이어 농사나 지은 사람에게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그저 병이 나면 걱정없이 병원에서 치료를 맡아주고, 자식의 싹수를 알아 가르쳐주고, 산골 다랑이 천수밭을 짓는 자에게는 적절한 보상이라도 주시어서 쌀 한톨이라도 더 증산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만 있다면, 이에 더 큰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하기사 그렇다. 권력이라는 것이 필요악이라는 철벽같은 인식의 강제가 천하를 지배하는 세상에서 웬 잠꼬대같은 소리냐고 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권력이 종교보다 순결하고 도덕적이기를 기대할 수 있다는 백성들의무한이상은 필요악이 아니라, 필요선으로서의 권력을 개대하기 때문에 해볼 수 있는 소리이다. 격을 훨씬 낮추어 생각해본대도 무방하다. 근현대 서양사람들 사상에서는 정치를 통치와 상호계약 형태로 생각하는 것이 지배적인 것 같은데, 본래 계약이라는 것이야 계약당사자간의 신의성실이 지켜지지 않으면 한낱 휴지쪽에 불과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그 계약이라는 것이 불특성 다수와의 공계약일 때는 그 사회에 미치게 될 파문은 종국적으로 누구의 피해로 돌아갈 것이냐는 점이다.
 표를 모으기에 바빠 말탄 강아지 뛰 듯하는 소위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이 "나는 대통령직을 걸고 쌀 수입을 막을것이요." 했다거나 "나는 떠나는 농촌을 돌아오는 농촌으로 만들겠소." 했다면, 그것은 이미 거둬들일 수 없는 계약이요, 그렇게 믿고 표를 찍은 사람은 그 성실이행을 요구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계약한 한쪽의 당사자에게 있어 그것이 생존의 조건일때야 목숨을 걸고 요구해올 것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인 것을 충분히 예견하면서도 표를 받기 위해 한 약속이라면 그것은 그 효력의 원인을 인정할 수 없는 사술이요, 협잡이다. 그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면 수치를 들어 설명해 보자. 6백만 농민유권자가 오랫동안 불안해하던 쌀 시장의 마지막보루가 혹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으로 가득 찼다고 했을 때, 대통령직을 걸고라도 쌀 개방을 막겠다는 약속을 믿고 표를 찍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이 비록 100%가 못된다 하더라도) 지금 분노에 찬 6백만 농민이 계약행위의 무효를 선언하고 6백만 표를 되가져 간다면 오늘의 김영삼 정권의 통치기반은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기초농산물을 비롯한 쌀 시장의 개방이 더욱 옥죄이는 상황을 보면서, 농촌의 파국이 우리모두의 파국이기에 국외자가 있지 않다는 데서 같이하는 분노이지만 사실 내면의 깊이를 생각하면 모골이 오싹해지는 불안과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주체적으로 개방이 준비되지 못한 봉건통치배들이 백성이 무서워 밀실음모의 차원에서 제국주의 열강에게 금을 내주고 벌채권을 내주고 철도부설권을 내주고 항만을 열어주더니 급기야는 나라를 팔아먹던 한세기 전의 망국과정이 어쩌면 지금의 현실과 그렇게 비슷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무리 그 추한 피가 전해졌기로서니 말이다.
 농업기반을 내주고 공장건설의 실익을 몽땅 내맡기고 유통시장, 서비스시장, 건설시장, 금융시장, 심지어 교육시장까지 몽땅 들어내주고 그도 모자라 안방까지 내주고 마누라까지 내주고 나서 소수의 매판재벌은 공룡처럼 키워내고 절대다수의 민중은 총파탄을 만들어내는 게 차마 못할 일이어서 밀실음모의 차원에서 쑥덕거리거나 하는 이 정권의 앞이 어두운 것은 그들의 문제이지만 천파만파의 민중적 수난을 어쩔 것이냐 걱정이다.
 만에 하나라도 오늘의 이 정권이 제국주의 외세에게 바칠 것을 알아서 상납하는 뜻이 분단을 보장받자고 하는 데 있다면, 이야말로 제 2의 매국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다. 전통있는 민족의 역사라는 것이 늘 그 고유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사실을 말이다.
 외세가 침범하면 떨쳐 일어나 나라를 지켰고, 위난에 처하면 단결된 힘으로 극복하지 않았던가. 또 한가닥의 믿음이 있다면, 오늘의 대통령도 분명히 어떤 우방보다도 민족의 이익이 중요하다고 천명한 점이다. 유한한 정권이 무한한 민족사에 미치는 무한책임의 의미쯤이야 헤아릴 줄 알기에 가히 대권의 야망을 키워왔을 것이라는 평범한 상식을 좀 더 믿어보고 싶을 뿐이다. 백성의 권력만이 백성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평범한 진리와, 예속과 수난의 현실 사이에서 책임있는 정권의 정직한 자세가 보여지지 않는다면 정말 큰일이다.
 새해 새 아침에 7천만 온 민족이 한번 활짝 웃을 수 있도록 자정과 복원의 선언을 한번 해주었으면 한다.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더욱 주눅이 드는 농민, 노동자, 철거민이 웃고 핵전쟁 놀음에 얼어붙은 북의 형제들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선언말이다. 이렇게 새해의 문이 열리지 않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반민족, 반민주의 준엄한 우과가 동학농민항쟁 1백주년의 또 다른 역사적 의미로 다가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이 정권은 그 일차적 책임으로 역사 앞에 정직한 선언을 해야만 한다.

작성자이천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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