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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노래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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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에서
김종철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노래를 좋아하는 겨레가 있을까? 어떤 회사에서 신입사원 환영회가 열리거나 승진 축하모임이 벌어져서 술이 몇 순배 돌아 거나한 기분이 되면 누군가가 반드시 노래 부르기를 제안한다. 대학생들의 미팅이나 아주머니들의 계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들놀이에서 노래가 빠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한국에 오래 머문 외국인은 이런 노래문화에 익숙하겠지만 여행길에 잠깐 들린 이들은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노래에 미쳐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한국은 참으로 노래의 나라이다. 외국인이 굳이 어떤 모임에 가보지 않더라도 요즈음 몇 걸음 가면 하나씩 나타나는 노래방 간판을 보면 갈수록 뜨거워지는 노래열풍을 실감할 수 있다. 몇 해 전부터 드문드문 생겨나기 시작한 노래방은 이제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는 물론이고 지방의 소읍에까지도 침투해 들어갔다. 장사가 짭짤해서, 문을 닫는 데가 많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개업이 꼬리를 문다는 소식이다.
 오는 3월이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나의 아들은 오래 전부터 노래방에 가자고 졸라댔다. 그 아이는 지난해 봄이던가, 어느 친척의 회갑잔치가 끝난 뒤 노래방에 함께 간 적이 있다. 잔치가 파한 뒤 중학생부터 할머니까지 "노래방에 가자"고 한입이 되어 주장하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방을 하나씩 얻어 마이크를 잡다가 서로 왕래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모두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아들의 유일한 노래방 경험이었다. 얼마 전에 우리 부부가 기념할 만한 날이 있어 저녁에 노래방에 가기로 결정을 했다. 아이는 친구한테서 들었는지 "LDP가 설치된 데를 가야 노래부를 맛이 난다"고 귀띔을 했다. 나와 아내와 아들은 동네의 이 노래방 저 노래연습장을 기웃거리다 LDP가 있는 곳을 발견하고 적은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런 저런 기회에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에 가본 적이 더러 있어 시큰둥하게 앉아 있었지만 아내와 아들은 노래번호 책을 열심히 뒤적인다.
 아내는 주로 "천둥산 박달재" 나 강승모의 "무정 블루스"같은 뽕짝을 부르고 아들은 신승훈이나 김건모, 서태지와 015B의 최신 유행곡을 1차가 아깝다는 듯이 계속 이어나간다. 나도 현인의 "서울야곡",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조용필의 "친구여" 같은 곡을 불렀다. 아들은 뽕짝이 나올 때는 시큰둥하게 앉아 있다가 제가 부를 차례가 되면 그야말로 온 힘을 다 쏟아 마이크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런데 그 노래 말 들이라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깊이가 있기는커녕 가벼운 감동조차 주지 못하는 것들뿐이다. 어떤 노래는 아예 문법이나 어법을 무시하고 있다.
 나는 열곡 스무곡을 불러대는 아들의 입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요즈음 청소년들의 음악적 감수성은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인가? 그들과 삼십대와의 차이는 무엇인가?
 문득 지지난해 여름 우리 산악회 가족들이 보길도로 여름휴가를 갔던 때 일이 떠오른다. 저녁을 지어먹은 뒤 예송리 남쪽 언덕 너머에 있는 바닷가 자갈밭에 모닥불을 지피고 어른들과 아이들이 둘러앉았다. 거세어지는 불길과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어 노래판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저마다 독창을 한 뒤 합창으로 들어간다. 그때 한창 유행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라는 노래를 부르자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한 여나믄 명의 아이들의 율동과 함께 노래를 시작한다. 제일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고 맨 위는 대학생이다. 그들은 그 빠른 노래를 그야말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합창을 한다. 하도 신기해서 노래가 끝난 뒤 아들에게 들어보았다. "너 저 노랫말 외우는데 얼마나 걸렸니?" 몇 번 듣고 알았다는 게 대답이었다. 친구들도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었다. 나는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특수한 기억능력, 아니 초능력을 갖고 있는가?
 이야기를 요즈음 일로 돌려보자. 나의 아내가 "애모"의 노랫말을 외우느라고 테이프를 수십 번이나 돌려 대는 것을 보았다. "하여가"에 비하면 단순하기 짝이 없고 짧디 짧은 그 노랫말을. 아들은 옆에서 제 엄마의 그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싱긋이 웃고 있었다.
 LDP노래방의 한 시간은 잠깐이었다. 아들은 시간을 알리는 빨간 숫자가 0을 가리키자 쩝쩝 입맛을 다신다. 하도 딱해서 내가 "좀 더 할래."하고 물으니 눈이 반짝 빛난다. 5천원을 주고 30분을 더 시켰다.
 며칠 뒤에 아내가 말한다. "쟤가 너무 스트레스에 눌려 있었나봐요. 보름에 한번쯤 노래방에 데리고 가는 게 어떻겠어요?" 노래방에 다녀온 뒤 아들은 기분이 개운하고 화장실에서도 배설이 잘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날 못 부른 노래가 아직 수십 곡이나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노래방이 대변하는 조선사람의 노래사랑은 이제 도도한 물결과 같아서 그 흐름을 막을 수가 없다. 이런 문화적 현상에 대한 학문적 판단은 뒷날에 시도할 일이다. 단 하나, 나는 노래방을 쾅쾅 울리는 그 곡들이 거의 모두 서양의 발라드, 팝송, 댄스뮤직, 그리고 이름은 우리나라 가요지만 뽕짝이라고 통칭되는 트롯 계열의 노래들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도 뽕짝을 즐겨 부른다면서 무슨 소리냐"고 꾸짖으면 할 말이 없다.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뽕짝과 서양풍의 가요, 그리고 노랫말이 아예 외국어로 된 것들밖에 없다"고, 나는 정말 육자배기나 판소리를 부르고 싶다. 그리고 꽹과리와 장구를 두드리고 날라리를 불 줄 알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내가 우리의 전통음악이나 민족음악을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육자배기를 듣고 있으면 몸이 천길 땅속으로 꺼지는 듯한 비애를 느끼고 어깨가 들먹여지는 신명도 맛본다. 판소리도 풍물도 그 흐드러진 날라리 소리도 나의 피를 끓게 한다.
 그러나 참으로 불행하고도 비참하게도 나는 그것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올해에는 꼭 육자배기 몇 곡이라도 배우겠다고 결심하고 있다. 올해나 내년에도 안되면 아들이 더 커서 문화적으로 철이 들어 우리 음악을 함께 배우자고 내 손을 끌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작성자김종철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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