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내가 새롭게 사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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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는 해가 바뀌면서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가짐과 새로운 삶의 태도로 창조하는 것이다. 실제로 내 삶의 새로운 변화가 없다면 새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해서 "내가 새롭게 사는 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새해"다.
특별히 1993년에는 그동안 30여년간 한국사회를 지배해왔던 군사정권이 물러가고 문민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한국사회의 새로운 변화이다. 그러나 정말 새로운 변화가 한국사회에 이루어지려면 새로 출범하는 문민정부가 군사정권의 병폐를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
그동안 군사정권이 저지른 병폐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것들 중에 첫째는 군사정권이 물리적 힘의 논리를 가지고 한국사회를 지배해왔기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가 물리적 힘을 가진 자만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사회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올바른 사회를 가늠할 법의 제정은 물론 법의 집행에 있어서도 물리적 힘을 가진 자들의 필요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무법사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 법의 정신은 사회적 평등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사회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약자를 보호하고 그의 권익을 증진시키고 강자의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 법은 바로 이 정신에 의해 만들어질 때만 정당한 법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법은 강자는 더욱 강해지고 약자는 더욱 약해질 수 밖에 없는 법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법의 논리는 경제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빚고 말았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인권이 유린되고 짓밟히는 현상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지금도 역시 계속되고 있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인간의 사회가 아니다. 이렇게 물리적 힘의 논리가 한국사회를 지배해가 되고 보니 특히 힘이 없는 장애우들은 더욱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사회의 일반적 차별은 물론 법마저도 장애우의 차별을 정당화했다. 장애우의 권익을 위해 어렵게 만들어진 장애인복지법과 고용촉진법 등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물리적 힘의 논리가 아닌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본질적인 의식의 전환이 없으면 "한국병"을 치유할 수 없고 새로운 한국사회를 열 수도 없다.
의식의 전환은 새로운 정부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장애우들에게도 요구된다. 그동안 우리도 알게 모르게 이 물리적 힘의 논리에 사로잡혀 왔다. 그래서 조금 힘이 있는 장애우는 힘이 없는 장애우를 무시하고 장애우와 연대하여 살기보다 비장애우 강자들의 대열에 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반면에 많은 장애우들은 힘이 없다고 부끄러워하고 체념하여 자신을 포기하고 살아왔다.
새해에 우리 장애우들은 누구보다도 힘의 논리에서 해방되어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찾는 새로운 삶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가 힘이 없다고 자신을 포기하면 장애우의 인간다움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둘째로 군사정권은 적대화의 논리로 한국사회를 지배해왔기 때문에 적들로 가득찬 증오와 갈등의 사회가 되었다.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군대사회의 이분법적 사고와 체제가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남북한간의 적대화는 물론 지역간, 계층간의 적대화가 심화되었다. 심지어 학교 교실 안에서도 친구보다 적이 많다. 아니 친구도 적으로 생각하도록 교육되어지고 있다. 따라서 국민적 화합 또는 화해는 단순한 감정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적대화의 논리를 제거해야만이 가능하다.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편당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장애계에도 있다. 장애계 안에 있는 적대화의 논리와 감정이 새해에는 극복되어야 한다.
새해는 물리적 힘의 논리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사회, 증오와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한 적대화된 관계를 청산하는 사회, 정당한 절차와 수단·방법이 존중되는 사회, 그러한 사회로 가는 길목이 되어야한다. 그 사회야말로 차별과 편견이 없는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사회일 것이다.
글/김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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