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합치지 못해서 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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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모래알 같아서, 한 사람 한 사람은 똑똑하나 단결하지 못해서 손해본다" "일본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은 별 수 없으나 단결력이 있어서 강하다" 어릴 때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어온 말이다. 이런 비교는 일본인들이 한국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다분히 감정적인 애국자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단결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인의 근본적인 약점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선조 후기 사색당쟁 때문에 나라가 극도로 약해졌고 백성이 도탄에 빠진 것이 사실이며, 해방 이후 강력한 지도자가 없을 때 우리나라의 정당들이 온갖 내분으로 제 기능을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해외 교포들이 만들어 놓은 한인회 가운데 패다툼을 하지 않은 곳이 몇 있으며, 교포 교회 가운데 갈라지지 않은 교회가 몇 있는가. 물건을 만들어 외국에 수출할 때도 한국 업체끼리 경쟁해서 결과적으로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수출업자들은 자기들끼리 단합해서 비싼 값을 받아낸다고 한다.
합치지 못하는 기질은 단군의 피속에 이미 들어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디를 가나 어떤 상황에 있는지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왜 합치지 못할까? 역시 합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기 때문이다. 감정에 거슬리면 자신과 전체에게 손해가 되어도 다른 사람과 손을 잡으려하지 않는다. 훗날의 이익보다는 우선의 기분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자기만 잘났고, 자기의 주장만 옳고, 자기와 자기 단체의 이익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눈앞의 작은 이익, 작은 명예, 하찮은 기분 때문에 전체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고 결과적으로 자기도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인간은 물론 감정적 동물이고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그리고 과거 사회에서는 감정에 따라 행동해도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창과 칼로 전쟁할 때는 용감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보다 더 강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결코 강할 수 없고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선진사회가 될 수 없다.
항우와 조조가 어느 날 따듯한 양지에 앉아서 속옷을 뒤지며 이를 잡고 있었다. 이를 한 마리 발견한 항우가 자기의 피를 빨아먹는 놈이 너무 괘씸해서 그놈을 바위 위에 얹어 놓고 힘센 주먹으로 갈겼다. 바위는 산산조각이 났으나, 이는 틈 사이에서 여전히 고물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조조가 손톱으로 눌러 간단하게 이를 죽였다. "감정만 가지고는 이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강자들끼리는 단합하지 못해도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혼자서도 자기 귄리를 유지하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자들이 권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그 약한 힘을 합치는 길 밖에 없다. 목소리도 합쳐야 사람들이 들을 수 있고, 투표권도 합쳐야 사회세력이 된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보면 강한 나라들끼리는 단합이 잘 되고 약한 나라들끼리는 각각 따로 논다. 물론 강자들이 약자들의 단합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고, 약자는 급한 것이 많으니까 단결할 만큼 신뢰할 수가 없는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약자들은 계속해서 강자들에게 이용만 당한다.
장애우들은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약자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정치풍토 속에서는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애우가 따로 나서서 자기의 권리를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뭉쳐야 한다. 뭉쳐서 하나의 사회적 세력, 정치적 힘이 되어 당연히 향유해야 할 권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장애우는 4백만에서 5백만명 정도다. 가족, 친족, 친구들까지 합치면 막대한 숫자가 된다. 만약 이 숫자가 힘을 합칠 수 있다면 대통령 선거 같은 때는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우들을 위하여 가장 좋은 정책을 세우고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후보자에게 표를 몰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제까지 한국인의 장애우들은 합치지 못했다. 너무 많은 단체로 갈라져 있고, 단체들끼리도 연합해서 일하지 못하고 있다. 장애우언론도 장애우들의 하나된 사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적어도 전국장애인연맹 같은 것이 하나 있어서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 단체를 만들고 힘을 합치려면 도덕적이고 능력 있는 지도자의 헌신적인 봉사가 있어야 하고 상당한 재정적 뒷받침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장애우 가운데 이런 지도자와 헌신자가 나오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비장애우에 비해서 그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하기에 유리한 조건도 없지 않다. 뭉치지 않으면 당연히 향유해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기관이나 비장애우 단체나 개인이 장애우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장애우 자신들만큼 절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는 의지도 그렇게 강하지 못하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라도, 그 권리를 실제로 누리기 위해서는 뭉치지 않으면 안 된다.
뭉치기 위해서는 모두가 성숙해져야 한다. 하찮은 감정, 조그마한 눈앞의 이익을 넘어 전체의 이익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전체가 덕을 봄으로써 자신도 덕을 본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알아주고 그런 사람을 지도자로 뽑을 수 있도록 모두가 합리적이 되어야 한다.
하찮은 감정 때문에 전체의 이익을 방해하는 사람을 견제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전체에게 손해를 끼칠 사람에게 힘을 갖도록 하는 것은 자해행위다.
글/손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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