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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소리]진정한 의미의 고통분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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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의 고통분담은?

 근자에 경남의 시각장애우 복지단체에서 주최한 장애체험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눈을 가리고 밖으로 나가 시각장애우들이 겪을 불편함을 직접 체험하게 한 이 행사는, 비록 일면이나마 이들의 문제를 느껴보고 건강의 소중함을 확인할 기회로 삼게 하고 지역사회에 이들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려는 데에 목적을 둔 것이었다.
 3년 전부터 해마다 한 번씩 실시해 온 행사인데, 그동안은 참가자들을 위한 강의만을 해왔으나 체험에 동참하지 않는 구두선의 한계를 스스로 부끄러이 여겨왔던 터라 이번에는 잠시나마 함께 참여하여 직접 느껴보기로 하였던 것이다.
 불과 두 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여러 가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지하도를 계단으로 오르내렸는가 하면 인도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좁은 2차선 도로를 걷기도 하고, 시내버스를 타 보았는가 하면 상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사기도 했다. 또 음식점에서 점심을 주문해서 먹고 계산을 해보았으며, 자동판매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먹고 공중전화를 걸어보기도 하였다. 맹인용 흰 지팡이와 안내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청각과 촉각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어렵사리 이런 일들을 "치뤄냈다."
 굳이 직접 체험을 해보지 않아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몇 가지 문제점들이 여실히 확인되었다. 유난히 많은 보도상의 돌출물, 고르지 못한 도로, 허다한 계단들, 안내방송이 없는 버스, 안내자 없이는 선택한 수 없는 자동판매기, 신호음이 없는 횡단보도와 시간이 짧은 보행신호 등등. 관공서를 비롯한 몇몇 공공시설에도 가보고 싶었으나 미리 정해진 다른 약속 때문에 시간이 모자라 이 부분은 앞의 경험에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정부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장애우 복지관련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장애우를 위한 편의시설 확충이다. 편의시설에 관한 범위, 방법, 기준 등을 설정하고 관계 법률로 내년까지 제정하겠다고 한다. 각종 보도매체를 통해 접한 이런 정도의 정보만으로는 그 구체적인 계획을 알 수 없지만, 일단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우리는 그동안 알맹이도 없고 구속력도 갖지 않은 복지 관련법들을 많이 보아 온 터이라 그런 전철이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장애체험 행사의 범주를 좀 더 넓혀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감상적인 것일까? 사실 확인은 못했지만 이번 행사를 주최한 측의 얘기에 의하면 이런 행사가 경남에서 먼저 시작된 후 다른 몇몇 시도에서 유사한 행사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지역적으로도 확산되고, 장애체험의 종류도 다양화하며, 참여의 폭도 넓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잠깐동안의 체험으로 어떻게 평생을 생존과 직결된 절박한 문제로 안고 살아가는 장애우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겠는가마는 이것이 장애우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인식의 공유나 확산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 해 보는 말이다.
 그것이 이른바 "고통분담"을 위한 작은 출발점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고통분담이란 것이 결코 매출부진으로 겪는 기업주들의 고통을 노동자들이 나누어 갖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그런 형태일 수는 없다. 국민경제의 총량적 성장을 위해 불평등과 비복지를 감내해야 했던 구태를 연장시키는 그런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못 가진 사람과 불편한 여유 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건강한 사람과 여유 있는 사람들이 나누어 갖는 의미의 고통분담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구호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의식의 질적인 변화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두 가지 상반된 내용의 뉴스가 생각된다.
 하나는 서울 구로구의 한 마을에서 장애인 복지관 건립을 둘러싸고 일어난 주민과 건립추진자측과의 마찰 소식이다. "정신적, 물질적 피해가 옴은 물론, 자녀교육에도 지장이 있고 집 값이 떨어진다"는 것이 주민들이 복지관 건립을 반대한 이유란다.
 이런 류의 일이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천편일률적인 이유들이 이번 경우에도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이런 일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음은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결국은 행정당국의 중재에 의해 해결은 되었다지만, 장애우들의 고통을 배가시키는 이런 일은 이제 사라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다른 하나는 경기도 부천시의 개인택시 운송사업조합에서 장애우 무임승차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는 소식이다. 장애우들에게는 요금을 받지 않고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뜻인 것 같다. 물론 이 같은 일이 장애우들의 생활조건을 의미 있게 개선시켜줌으로써 이들의 복지를 눈에 띄게 향상시켜 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택시업자들이 지니고 있는 태도이다. 합승과 승차거부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회에서 이처럼 자신의 몫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일이 바로 고통을 나누어 갖는 바람직한 모습의 한 다면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산업재해 발생률과 교통사고율을 보면서, 그리고 심하게 오염되어 가는 환경과 많은 선진적 장애에 관한 얘기들을 들으면서, 장애가 멀찌감치 떨어진 남의 문제만은 아님을 느낀다.
 지금 건강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장애우들의 고통과 불편함을 좀 더 가까이에서 느껴보고 나눠보자는 마음을 기울일 줄 아는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정책결정권자들에게 현실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제도로써 구체화시키려고 하는 개혁적 자세일 것이다.

글/감정기(사회복지학·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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