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셰계와 인간을 보는 새료운 눈 > 대학생 기자단


[붓소리] 셰계와 인간을 보는 새료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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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세계는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향해 새로운 전황을 꾀하고 있다. 이 세계사적인 전환의 성격은 여러 측면에서 분석되어 질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방의 전환"이냐 "지배의 재편"이냐 하는 데 있다. 어떻게 보면 인류의 역사는 지배의 재편과 해방의 전환과의 투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미국을 포함한 서구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세계평화를 깨트리는 "인류의 적"을 공산주의로 규정했다. 그런데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주의가 사라져버린 지금에 와서는 또 다른 "인류의 적"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과 서구가 "적"을 전제로 한 지배체제였기 때문에 그들이 전제한 그 "적"이 사라져 버리자 그들의 지배체제도 해체되거나 붕괴될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적"들이 사라졌으면 "적"이 없는 세계를 위해서는 "적을 전제한 지배체제"에서 "진정한 공존의 함께 사는 가치관과 체제"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들은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양식으로 자기전환을 하지 않고 기존의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적을 찾고 또 필요하면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지배체제의 재편적 전환에 맞서 새로운 해방의 전환을 하고 있는 가치관과 삶의 양식을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중심의 세계관에서 자연과 우주를 포함한 세계관으로의 전환이다.
  지금까지 서양의 세계관은 철저한 인간중심적이었다. 이에 의해 인간은 자연을 필요에 따라 악마화하거나 또는 신이 인간을 위해 만든 것으로 소유물화 하여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이 선이며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따라 자연의 정복과 착취는 정복과 착취가 아니라 인간다운 진취적 이상의 실현이 되었다. 우주의 문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인간중심세계관으로 인간이 잘 살 것 같았지만 이것은 세계의 파괴는 물론 인간마저도 파멸시키는 것이기에 인간중심에서 자연과 우주를 포함한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보고 자연과 우주가 정복과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공존해야 할 유기체적인 생명의 관계임을 깨달아야 한다.
  둘째는 "북의 세계" 중심에서 "남의 세계"를 포함한 정의로운 세계체제로의 전환이다.
  북(백인, 제1세계)의 세계가 오늘날처럼 세계를 지배하고 그들 중심의 세계역사와 문화를 만든 것은 그들이 남(유색인, 제3세계)의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기 시작한 소위 근대역사 이후이다. 실제로 남의 세계는 북의 나라들의 식민지 지배를 받기 전에는 그렇게 빈곤하지도 않았고 문화와 문명이 없는 야만인이 아니었다. 도리어 북의 나라들이 자연적 조건으로 볼 때 자급자족을 할 수 없고 또한 문화와 문명이 없는 미개한 사람들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연조건이 좋고 자원이 풍부한 "남의 세계"를 정복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남의 세계"가 겪고 있는 빈곤과 독재 그리고 인종분쟁 등의 근본원인은 모두 "북의 세계"의 지배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에 오늘날 "북의 세계"가 누리고 있는 부와 문화는 전적으로 "남의 세계"를 지배하고 착취한 결과이다.
  그런데 근대역사 이후 "남의 세계" 사람들이 "북의 세계관"에 의해 길들여졌기 때문에 "북의 세계"를 흠모하고 자기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와 삶을 부정하였기 때문에 "북의 세계"는 잘난 세계이고 "남의 세계"는 못난 세계처럼 된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에 와서 "남의 세계"도 서서히 의식의 각성을 하면서 자기들의 역사와 문화를 되찾고 자주적인 삶의 추구를 위해 일어서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서의 화해가 아니라 남북의 진정한 공존과 화해가 모색되어져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불의한 지배체제였던 남북의 관계를 정의로운 남북의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는 비장애인 중심의 세계에서 장애인을 포함한 전인적 세계로의 전환이다.
사람이 장애를 입는 것은 불의한 사회체제와 환경 때문인데도 지금까지는 그것이 장애를 입은 개인 또는 가족에 대한 부정한 운명, 또는 신의 저주 등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였다. 그 결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정당화 되고 장애인 스스로도 그러한 부정한 의식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장애인 문제는 더 이상 "부정한 운명"이거나 "신의 저주"가 아니라 불의한 사회체제와 환경이 빚은 죄악임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그대로 있는 것은 지금까지의 잘못된 편견 때문이고 새로운 세계와 사실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장애를 입어 불편한 것은 장애 그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장애인 중심의 가치관, 사회시설, 삶의 양식이 더욱 장애를 느끼게 한다. 사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시설이나 생활양식을 장애인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꾼다고 해서 비장애인이 불편하거나 장애를 입을 이유는 전혀 없다. 도리어 비장애인 중심의 생활양식에서 계속 장애인이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는 이 "허위의 능력" 평가에 따른 것이다. 남성은 능력이 있고 여성은 능력이 없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정당하게 평가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마찬가지로 비장애인 관점에서 장애인을 포함한 전인적 삶의 양식으로의 전환은 장애인 문제만의 해결이 아니라 비장애인 곧 인간을 차별화하는 잘못된 능력의 가치기준을 인간다운 가치에로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세 가지 "해방의 전환"적 관점에서 "지배의 재편"적 가치의 허위의식을 깨치고 함께 사는 사회를 건설하여야 한다. 이 새로운 눈을 가진 사람이 인간다운 인간이며 그가 바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주역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장애인 운동의 역사적 당위성이 되어야 한다. 

작성자김성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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