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소리] 탈 폭력문화의 도래를 위하여 > 대학생 기자단


[징소리] 탈 폭력문화의 도래를 위하여

본문

  서울의 한 남자 중학교의 음악선생님이 숙제를 안 해 왔다는 이유로 따귀 여섯 대를 때렸다. 못해온 이유는 주번이라 음악실에 안 가고 교실에 남아 있다가 몰라서 안 해온 것이다.
  이러한 학교가 있는 사회는 어떤 곳인가?
  박종철 고문사건과 권양의 성고문 사건과 그에 대한 도도한 항거가 있었다. 장애인 수용시설 기관에서 정신지체 여학생에 대한 성폭행이 일어나며, 남녀노소 관계없이 인신매매나 어린이 유괴범의 위험은 바로 우리 옆에 있다. 물론 일부 국회의원들의 몸싸움과 언어적 폭력은 TV화면을 통해 익숙하다. 덧붙여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는 경우가 있으며, 부모들이 자식들을 때려서라도 또는 정신적 독재로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고자하는 일방적 의지의 표현을 보고 있다. 물론 그에 항거하는 어린 세대의 늘어나는 자살사건의 신문보도는 더 이상의 특종이 아니다. 집단적 공공 시위행위나 그 제재행위 때 꼭 있어야만 되는 것처럼 고정화되어버린 화염병과 몽둥이질의 난무!
  자! 이 정도면 우리의 폭력 문화의 심각성에 대해 무언가 근원적 해결책을 추구하는 노력을 보일 때라고 생각한다. 이 폭력의 사슬을 근원적으로 끊어버릴 원초적 개혁의지보다는 폭력의 희생양들이 영웅이나 열사로 미화될 수 있는 뭔가 문제가 있는 사회분위기에 무력한 우리들!
  이 사회에 만연한 폭력문화에 대한 근원적 반성을 하며, 이 폭력문화가 초보적으로 잉태되는 가정과 학교 내의 폭력성을 생각해 보자.
  첫째, 학교문화 속에서의 폭력성을 생각해보자.
  우리의 어린 세대를 길러내는 초, 중, 고등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된다고 논의를 할 때 언제부터인가 대학입시제도의 문제가 교육에 관련된 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답게 대우받는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학교 안에서 교육이란 미명 하에 묵인되는 폭력적 문화만큼 심각한 것이 있을까? 물론 교사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만이 아니라 학생과 학생사이의 폭력도 있었고 학생이 교사에게 폭력을 행한 경우도 있었다.

우리 부모님, 교사들이 어린 세대의 자존심과 인격에 상처 주는 일의 엄청난 결과를 두려워해야 한다. 짓밟힌 자존심과 인격 관계의 파괴, 개개인 인간성이 말살되는 일방적 수직 관계에 대한 불만과 억울함의 결과가 없을 수 있을까?  이 사회의 폭력문화의 근절을 위해 그리고 인간성이 존중되는 세상을 위해, 가정과 학교 내에서 존속하는 폭력성의 사슬을 한 고리 한 고리씩 과감히 끊어나갈 것을 다짐, 또 다짐할 때이다.

  문제는 이 폭력적 문화에 제동을 걸만한 장치가 없다. 우선 부모들이 학교 내의 폭력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안다 하더라도 그것을 항의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사회·문화적 여건이다. 우선 교사의 체벌에 대한 찬반 여부 논란이 공적으로 이루어지기가 여태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섬세한 문제였다. 깊은 유교 문화의 전통에서 기존의 권위를 갖고 있는 교사의 행위에 도전하는 소수의 부모는 엄청난 외로움을 겪어야 하고, 후유증에 대한 대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교사가 학생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어서 또는 공부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해 때렸다고 하면, 그 말의 진실성이 충분히 의심되는 확증이 있어도 그에 대한 항의는 매우 힘들다. 교사 체벌의 정당성을 항의한 부모는 아주 잘 정제된 민주적인 분위기와 교사와 학생의 언권(?)이 존경되는 교육론을 제시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자기자식만 감싸고돈다는 상투적 논리 아래 신랄한 비판을 받기 일쑤이다. 반면교사의 체벌은 쉽게 미화될 수 있는 분위기이다. 양호실이나 병원에 갈 정도의 체벌행위도, 자로 손바닥 몇 대 맞은 벌과 동등한 훈육행위로 버젓이 "보장"된다.
  단순한 체벌이 아니라 싸구려 권위를 유지시키기 위한 구라에 가까운 체벌이었어도 그것을 가늠하기에는 교사의 교육적 의지나 원형적 권위를 침해했다는 몰지 각성으로 매도되는 부모 쪽의 심리적 부담이 너무 무겁다, 교사의 원형적 권위를 운운하며, 옛 조선 대학자들의 서당에서 행해졌던 따끔한 종아리의 신선한 효험으로 때리는 행위의 정당성을 찾기에는 요사이의 학교 문화의 폭력성은 너무도 변질된 것이어서 설득력이 미약하다. 그런 와중에 교사들의 항변은 이런 것이다. "요사이 아이들 그 정도 심한 방법 아니면 말을 듣지 않는다." 이 항변의 실체를 해부해 봄직하다.
  두 번째로 가정 안에서의 폭력성을 생각해보자. 학교문화의 폭력성은 가정의 폭력성 없이는 유지되기 힘들다.
  어린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이나 입학 후에도 학교 외의 가정생활 문화권 속에서 접하는 폭력성을 생각해 보자. 집에서 매를 맞고 자라는 아이들, 언어적 폭설에 휘둘린 아이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보고자라는 아이들, 부모에게 체벌로서 길들어진 아이는 학교에서의 폭력성에 둔감해 질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체벌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아주 경미했던 폭력은 계속해서 인플레이션 되기 마련이다. 또한 집에서 자녀들을 체벌하시는 부모님 중에는 학교 문화 속에 건재하는 폭력성을 지적하고 제동을 걸 자신 있는 부모님 숫자가 매우 적다. 학교 내의 폭력성에 무반응한 부모님이 계신가 하면 폭력을 양산하는데 직접 참여하는 부모님도 계시다. 또래 친구한테 매를 맞고 온 자녀한테 하시는 말씀이 "네가 때리면 때렸지, 절대 맞고 오지는 마라" 또는 "남이 때리면, 너도 때려라" 등의 최신세대 어머님도 계시다.

  이런 극이기주의 부모님의 자식사랑으로 우리 어린이들의 가치체계에서 폭력의 씨앗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이런 극이기즌의 부모 중에는 자기 자녀가 남에게 가하는 행위는 폭력이 아니고, 남의 아이가 자기 아이를 때린 것과 교사의 체벌 행위만이 참을 수 없는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다.
  이런 부모님이 많이 계시는 한 정신지체 여학생을 성폭행하고도 안마를 시킨 것이라 고발하는 어느 시설장의 얘기가 사실처럼 둔갑하는 사회분위기는 존속한다.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하겠다는 부모님 의지와 교사 체벌행위의 근속성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한다. 교사나 부모님 모두 물리적 힘을(고통) 가해서 말을 듣게 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목적하신 바를 "가장 빠르게 비인간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이루겠다는 것인데 이방법의 문제점의 심각성을 꼭 알아야겠다. "가장 빠르게 비인간적인" 방법을 가정에서 학교에서 애용하는 한 사회전체 안에서의 폭력문화는 절대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 교사들이 어린 세대의 자존심과 인격에 상처 주는 일의 엄청난 결과를 두려워해야 한다. 짓밟힌 자존심과 인격 관계의 파괴, 개개인 인간성이 말살되는 일방적 수직 관계에 대한 불만과 억울함의 결과가 없을 수 있을까?
  이 사회의 폭력문화의 근절을 위해 그리고 인간성이 존중되는 세상을 위해, 가정과 학교 내에서 존속하는 폭력성의 사슬을 한 고리 한 고리씩 과감히 끊어나갈 것을 다짐, 또 다짐할 때이다. 

작성자박승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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