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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 가까이 온 지구에 종말과 인간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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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의 리우 데자네이로에서 열린 UN의 "환경과 발전 협의회"가 주최한 지구 정상회의가 끝났다. 북아메리카 정부의 집요한 방해와 소극적인 태도, 결의된 사항들이 얼마만큼의 구속력을 가지고 실천될 수 있을지 등의 여러 문제를 안고 회의는 끝났다. 인류의 역사상 세계의 거의 모든 정상들이 함께 모여 미래를 염려하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지구 정상 회의의 배경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파괴되어 가는 환경이 초래 할 지구 파국에 대한 공동의 의식이 놓여 있었다. "지구는 하나뿐인데 세계는 하나가 아니다"라는 UN의 환경과 발전 위원회의 보고는 지구와 인류의 미래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해온 분열된 세계의 현실을 잘 나타내 준다. 분열된 세계 안에서 매시간마다 1,500여명의 어린이들이 굶주림과 영양실조에 따른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매일같이 동·식물의 한 종이 멸절해 간다. 매월 750억불씩의 세계외채가 급증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한국의 사분의 삼 크기의 원시림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지금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이런 사태는 왜 일어나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이런 파국에 책임적으로 대응해야 하는가.
  오늘의 환경위기의 뿌리에는 "발전 자체를 위한 발전"의 추구를 정당화해온 "인간중심적 세계관"과 17세기 근대 과학의 탄생이 놓여있다. 근대 과학과 함께 자연의 엄청난 변형과 지배의 형태를 촉진시키는 역동성이 고삐에서 풀려나게 된 것이다. 기술과 자연과학이 인간을 자연에 의한 지배로부터 해방시켜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지배하게 한 것이다. 인간의 자연지배의 성취는 물론 간과될 수 없는 인간 삶의 진보를 가져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진보의 결실을 인류의 소수, 즉 제1세계만이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1세계의 발전과 번영을 위하여 제 3세계의 민중과 자연이 억압받고 착취당한다는 것이다. 사정은 한나라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의 일방적인 편재와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 투쟁 역시 한 보기이다.
  광범위한 환경의 파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 과학적 대안모색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대안은 또 다른 자연의 파괴를 대가로 치르거나, 값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데 문제가 있다. 많은 이들은 인간의 "자발적인 절제"만이 문제해결의 가능성이라고 지적한다. 인간이 스스로 자기의 자유와 욕망충족의 욕구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와 욕구를 체제 안에서 통제해 온 사회주의 국가 안에서의 광범위한 환경파괴 현실은 우리를 회의적으로 만든다. 자본주의적 자유 시장 경제체제 안에서 자유와 욕망의 절제 요구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또 절제해야 할 것도 없는 생존권을 박탈당한 제 3세계 민중들은 "배부른 후에야 도덕이 온다"는 브레히트의 지적대로, 환경위기 논의자체의 계급성을 폭로한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을 각성시켜 공동의 대응을 모색하도록 강요한 것은 언제나 지구적 차원의 대 파국이다. 인도 보팔시의 가스 폭발사건, 체르노빌 원전 파괴, 오존층 파괴에 의한 피부암 발생 등이 그것이다. 인류를 각성시키기 위해서라면 그런 재난이 계속 일어나야 하겠는가? 또 그런 재난이 일어난 후, 지금 체르노빌을 기억하는 이들이 거의 없듯이 인간은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유럽의 전투적인 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는 이렇게 말했다. "지구 위에 남아있는 마지막 나무에서 마지막 잎이 떨어질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돈을 먹고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은 언제나 막다른 골목에서 되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배우고, 그 때는 이미 늦었다는 많은 냉소적인 주장이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누가 그러면 지구와 인류의 미래에 책임을 지는 결단과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성서는 우주와 피조물이 신음하며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인간은 누구인가. 새로운 인간은 소유에서가 아니라, 존재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 가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추구되어야 한다.

  새로운 인간은 가능성과 기회 때문에 행동하지 않고 의무와 책임 때문에 행동하는 사람이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무를 심는 사람이다.
  이 새로운 인간들의 지구적 차원에서의 연대가 더욱 절실하다. 이 연대는 새로운 정보교환을 강화하고, 기층 운동을 서로 지원하고,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상할 과제를 가지고 있다. 이 연대는 각국의 각 정부와 기업들로 하여금 인간과 지구의미래를 위하여 일할 수 있도록 강요하고 견제할 수 있을 만큼 함께 성장해야 한다. 인류의 희망은 대재난으로부터 시작되지 않고, 새로운 인간들의 보이는 연대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작성자채수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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