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박씨의 죽음과 다시 생각해 보는 참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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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장사에서부터 염소·개·뻥튀기 장사에 이르기까지 20여 년 동안 노점으로 생계를 이어왔던 지체장애인 박승학씨가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신문의 한 귀퉁이에 보도됐다. 30여 년 동안 장애우라는 주위의 온갖 눈총과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가족의 생계에 대한 책임감을 불편한 온몸으로 떠 안으며 모질게 지켜온 삶을 박씨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역시 지체장애우로 나물·인삼 등의 노점을 하며 남편을 내조해왔던 부인과 세 딸을 위해 남겨 둔 것은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유서뿐이었다고 한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30여 년 동안 지켜왔던 한 많은 목숨을 박씨는 어떤 기막힌 사연 때문에 스스로 포기한 것일까. "노점을 해서 먹고사는 데 단속이 심해서 못살겠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만 못하다"는 유서내용으로 봐서는 서울시의 계속된 노점 단속 때문에 전 같지 못한 수입으로 인해 비관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울시의 단속이 박씨를 죽게 한 직접적인 원인은 될 수 있겠으나 제 2, 제 3의 박씨를 만들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뿜어대는 싸늘한 냉기가 박씨의 주검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생활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외부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사회로부터 버려진 채 거리에나 앉아 있는 모습을 우리는 지하철에서 육교에서 거의 매일 목격하고 있다. 더구나 신체의 일부가 제 기능을 상실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남의 도움 없이 사회구성체의 일원으로 꿋꿋하게 살아보려는 의지마저 꺾어버린 이러한 사회적분위기는 박씨를 포함한 지체장애우들은 물론 가난한 삶을 어렵게 꾸려 가는 모든 이들에게 그 무엇보다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막노동판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구걸 아니면 행상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장애 우들의 절박한 생존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서울시의 무책임한 단속은 이런 사회분위기에 편승한 것으로 보인다. 30여년 동안주위의 편견과 억압에 맞서 싸워온 박씨에게 아마 서울시의 단속은 마지막까지 버텨온 기력마저 소진하게 했을 것이다. 인간적인 소외와 패배감,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압도된 좌절감으로 깊어진 정신적 상처가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된 박씨를 서울시가 마지막 벼랑으로 몰고 간 것이다.
지난 7월 8일 민주당에서 노점상강제철거진상조사단을 구성하여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이던 노점상들을 방문하는 자리에 조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적이 있다. 이 조사단에 참석하면서 얻은 결론은 서울시가 노점문제를 장기적인 계획 없이 간헐적인 단속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그것도 폭력적인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서울시의 자세는 노점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정책의지에 기초하기보다 노점 상인들의 생존권은 아랑곳하지 않는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에 다름 아니었다. 특히 노동력을 상실하여 생계가 어려운 장애 우들의 경우 생활비를 지원해 주어도 부족한데 스스로 생계를 위해 벌이에 나선 이들의 건강한 자세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파괴하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행정기관이 누구를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인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점상인의 30%를 차지하는 장애우 노점상들에게는 도로교통법이라는 단순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차원에서 장기대책을 세워 그들에게 건전한 삶의 의욕을 고취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장애인복지법에 "공공단체가 설치 관리하는 매점이나 담배 홍삼류 우표류의 판매점을 위탁할 때는 장애우의 신청이 있는 경우 우선적으로 반영토록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강제규정 아닌 권고조항을 신설했다하여 이들에 대한 대책이 충분히 세워졌다고 주장하며 거리에 나온 장애우들을 무조건 때려잡겠다는 식의 행정으로는 결코 문제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비록 몸은 불편하나 외부의 도움 없이 사회구성원의 하나로 삶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꺾고 한 인간을 파괴해버린 서울시의 정책과,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나만 잘살겠다는 이기적 무관심이 초래한 박씨의 비극은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얼마든지 재현될 소지를 안고 있다.
사회 제 분야에서 자기의 몫을 누리며 서로가 의지해 더불어 살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의 본질이라면 이들에 대한 구성원들의 매려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몸이 불편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인간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아니 생존권은 천부적 권리이기 때문에 이들의 자리는 이미 마련돼 있는 것이다.
이들이 사는 삶의 자리를 사지 멀쩡하게 잘 사는 이들이 뺏으려드는 사회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며 정의와 평화는 공염불에 불과한 헛구호로 그칠 것이다. 더구나 국민의 공복인 행정기관이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정책을 펴기보다 가진 자들의 이해를 대변해 그들의 자리를 빼앗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면 문제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서울시의 노점문제에 대한 현재 정책은 전면 재검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초선의원으로 국회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짧은 기간동안 이런 문제들과 맞부딪치며 느낀 점은 이웃의 자리를 존중해줄 줄 아는 참된 공동체 사회가 하루속히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불편한 몸을 가진 이들에 대한 배려는 물론 모두가 더불어 산다는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가치관의 확립 역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모두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작성자제정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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