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마당]없었던 일
본문
우리 속담 중에 "방귀 귄 놈이 되려 성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잘못을 한 사람이 그 잘못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엉뚱하게 큰소리를 쳐 잘못을 벗어나려는 행위를 빗댄 것으로 곰곰이 되씹어 볼수록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표현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엄숙한 자리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오는 방귀소리에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쏠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상황이 이쯤 되면 막상 방귀를 뀐 사람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그러나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난처한 순간을 벗어나는 방법이 솔직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성을 내는 정반대의 방법을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속담에 나와 있는 것처럼 "방귀 뀐 놈이 되려 성낸다"는 핀잔까지 받고 말아 "방귀를 뀌었다"는 단순한 실수가 그 사람의 성격과 품성으로까지 확대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이처럼 짧은 속담 한 구절에도 뜻밖의 깊은 의미가 숨어있는 것이 바로 우리말의 맛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없었던 일로 하자"는 대목에 이르면 가히 철학적인(?) 경지까지 느낄 수 있다.
이 말은 분명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도 "못본체" 고개를 돌리는 뻔한 짓거리와는 달리 사실 자체를 아예 "없는" 것으로, 즉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고개를 돌려 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행동인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수도 없이 주고받았던 "없었던 일로 하자"는 말은 대개 어려운 상황에서 말을 꺼낸 당사자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입게 되는 "상처"와 "피해"를 최소한도로 줄이기 위한 강력한 "보호본능"의 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실을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 "그 일"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눈 상대가 있어야 하며 상대도 나처럼 철저하게 그 일을 "없었던 것"으로 여기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둘째, "그 일"이라는 것이 얘기를 나눈 몇몇 사람 외에는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스런"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 일"이 끝내 알려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최근 벌어진 한 "행사"를 통해 "없었던 일"의 세 가지 조건이 주는 교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달 모 장애우 단체에서는 수백 명의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대대적인 행사를 치른바 있다.
정책토론회와 촛불잔치 등 천만 원이 넘는 돈이 든 것으로 알려진 이 행사 준비과정에서 주최측은 모 당에 정책토론회의 연사로 참석해 줄 것과 함께 "몇 백 명분의 숙식비"도 함께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런 "황당한" 요구에 불쾌감을 느낀 당에서 이를 거절하자 주최측은 "없었던 일로 하자"고 요구했으며 행사는 "잘 놀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무사히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그 행사는 "무사히" 끝난 것일까.
이 말은 잘못을 한 사람이 그 잘못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엉뚱하게 큰소리를 쳐 잘못을 벗어나려는 행위를 빗댄 것으로 곰곰이 되씹어 볼수록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표현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엄숙한 자리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오는 방귀소리에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쏠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상황이 이쯤 되면 막상 방귀를 뀐 사람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그러나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난처한 순간을 벗어나는 방법이 솔직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성을 내는 정반대의 방법을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속담에 나와 있는 것처럼 "방귀 뀐 놈이 되려 성낸다"는 핀잔까지 받고 말아 "방귀를 뀌었다"는 단순한 실수가 그 사람의 성격과 품성으로까지 확대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이처럼 짧은 속담 한 구절에도 뜻밖의 깊은 의미가 숨어있는 것이 바로 우리말의 맛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없었던 일로 하자"는 대목에 이르면 가히 철학적인(?) 경지까지 느낄 수 있다.
이 말은 분명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도 "못본체" 고개를 돌리는 뻔한 짓거리와는 달리 사실 자체를 아예 "없는" 것으로, 즉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고개를 돌려 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행동인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수도 없이 주고받았던 "없었던 일로 하자"는 말은 대개 어려운 상황에서 말을 꺼낸 당사자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입게 되는 "상처"와 "피해"를 최소한도로 줄이기 위한 강력한 "보호본능"의 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실을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 "그 일"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눈 상대가 있어야 하며 상대도 나처럼 철저하게 그 일을 "없었던 것"으로 여기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둘째, "그 일"이라는 것이 얘기를 나눈 몇몇 사람 외에는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스런"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 일"이 끝내 알려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최근 벌어진 한 "행사"를 통해 "없었던 일"의 세 가지 조건이 주는 교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달 모 장애우 단체에서는 수백 명의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대대적인 행사를 치른바 있다.
정책토론회와 촛불잔치 등 천만 원이 넘는 돈이 든 것으로 알려진 이 행사 준비과정에서 주최측은 모 당에 정책토론회의 연사로 참석해 줄 것과 함께 "몇 백 명분의 숙식비"도 함께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런 "황당한" 요구에 불쾌감을 느낀 당에서 이를 거절하자 주최측은 "없었던 일로 하자"고 요구했으며 행사는 "잘 놀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무사히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그 행사는 "무사히" 끝난 것일까.
작성자전흥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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